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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는 나를 더 사랑하며 살련다..(첫번째 별지)      "반디의 홈페이지"
    


                  

『가을이면 앓는 병』




   가을이 되면 앓는 병이 있다. 한바탕 열병(熱病)을 앓고 일어난 후,  그 창백하지만 순수(純粹)했
던 얼굴에서  그녀만이 가진 '가을여행(旅行)'의 광기(狂氣)를 왜 이제서야 느낄 수 있었을까...라는
가슴 아픔으로.

   최근 메스컴에서 피천득(皮千得: 1910~2007) 선생님의 인연(因緣)을 누군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 수필을 읽은 이에게는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대명사가 된 이름 '아사꼬',  가을의 문턱에서 모
처럼 가슴 속에 묻어둔(?) '아사꼬'를 떠올리며 '인연'을 꺼내 읽어보면 어떨까. 무작정 감상파가 되
자는 얘기가 아니라,  일상(日常)의 행복,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아보자는 얘기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대명사가 된 이름 '아사꼬'...

   내게는 '수미'가 있다.

   늦가을...1984年의 일로 생각된다.  대학 국문과 1학기만을 마친 채 꿈처럼 사랑한 전혜린(田惠麟
: 1934~1965)을 좇아 방황하던 그녀였다.  현실을 사랑한다면서도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저주해 자살
길을 가려던 그녀였다. 주위 그 어느 누구도 자기를 살펴 주었던 사랑이 없었거늘,   그 죽음을 향한
여수 신덕길에서 겨우 건질 수 있었던 한가닥 생명의 끈으로... 그녀는 다시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로
했었다.

   그토록 전혜린을 닮고 싶어했던 수미.지금은 독일(獨逸)에 가 있을까...  아니면 단명한 혜린처럼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인가.

   나에게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읽게한 그녀...  수미.17
年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 좇았던 삶은 찾아 갔는지.   어쩌면 지금도 그 '가을여행'의 여정(旅程)에
서 끊임 없이 자아를 갈구하고 있을 수미가 가을이 되면, 내게도 전염(傳染)이 되어 그립고, 보고 싶
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
도 한다.  아사꼬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
천에 갔다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피천득 선생이 그의 수필 '인연'에서 한 말이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 그래서 난 수미를, 일생(一生)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사는 쪽으로 하고 싶다.  <<세월(
歲月)>>이 흐를수록 그 그리움이 더욱 가슴을 저리게 하겠지만  첫사랑의 아름다움이란 원래 가슴 속
에 곱게 여며 둔 채, 그냥 소중히 간직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아서다.  그것이 곧 일상의 행복, 일상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해서다. 




- '01년 늦가을의 어느날
<'08년 가을에 새로 고침>


                  

『우의(雨衣)』




   '장교라고 해서 다를 게 뭐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저 사병으로 3년 때우고 말면 될 것을, 좀 편해 보겠다고 대책 없이
지원해서 남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ROTC도 아니고 기술사관이라는, 임관
전에 6개월, 임관 후 3년... 또, 지원 전에 6개월 기다렸으니 결국 근 4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군생활
로 썩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군에 올 것이었다면 처음부터 ROTC를 지원해 훨씬 실속을 챙길 수 있었
지 않은가! 게다가 앞으로의 미래 설계도 분명히 서 있지 않다. 과거 수년 간 실속 없이 보낸 자신에
대한 밋밋한 질책 뿐...

   지금쯤 의기양양하게 병역 특례로 대우를 받으며, 으스대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을 거다. 4년의
대학생활 동안 줄곧 장학금을 챙겨준 K항공사가 병역 특례로 1순위 취업을 보장했었다.  그런데 졸업
당시에는 세상이 모두 자기 맘대로 될 것처럼 작아 보였고,  그저 노력하면 안될 것 없다는 자신감으
로 꽉 차 있었던 그에게 K항공사행 티켓은 그리 매력적인 것이 아니었다.

  1984년 10월, 
아직 겨울의 문턱이라고 하기엔 이른 계절이었다. 군생활도 그럭저럭 1년 남짓 남았다.

   '제대하면 무얼 해야 할 것인가. 그땐 괜히.., 
그냥 K항공사에 들어갔으면 지금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잘 풀리고 있을 건데...' 

   대학을 졸업하던 1982년엔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불황 속에서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냥 자신이 있었다.

   '취직 시험이야, 뭐... 보면 되지 뭐...'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실속도 챙길 줄 모르는 자신의 어리석은 자화상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그때는.

   밤 10시 50분..
여수로 향하는 서울발 통일호, 밤열차는 텅 비어 있었다. 새로 5시를 넘겨야 순천에 도착하리라.  이
추운 밤기차에 몸을 싣고 거길 또 가야 하는가...

   '그땐 분명히 뭔가 씌웠었어...  K항공사행... 그걸 버려선 안 되었던 건데..'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옛날 아버지 따라 시골 할머니 댁에 가던 경부선 통일호는
아주 고급스럽고 으리으리했었는데... 전라선이라서 그런가... 내가 커서 그런가...  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가 탄 전라선 통일호는 어둡고 칙칙하고, 그리고 추웠다.  

   차 안엔 아무도 없었다.  휘황찬란한 서울의 밤거리,  헤어지는 아쉬운 작별들이 왁자지껄 오가는
대합실 진풍경 뒤로 서울발 여수행 막차는 적막하다 못해 차라리 썰렁했다. 또한 수많은 사람의 가슴
을 거침없이 받아들이는 밤의 한강은 여전히 느낌 없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소리 없이 흐르던 기
차가 잠시 멈추더니 영등포역을 출발한다는 시그널이 울렸다. 이제 밤새 달리겠지... 길고 지루한 이
밤에... 그래, 그만 자두자... 어리석은 자화상아... 이제 와서 뭘 어쩌랴...  내일 부대에 올라가면
할 일도 많은데.

   갑자기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무슨 소린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는 화들짝 놀
라 잠에서 깨었다. 황망히 밖을 내다 보았다. 뭘 잘못 들은 것인가…  1달에 두어 번의 상경길, 그리
고 밤차로 가는 귀대길… 이젠 밤눈도 제법 밝아져 있다. 열차는 아마 천안쯤 가는 것 같다. 많은 시
간을 더 가야 하는데, 벌써 잠을 깨었으니 큰일이구나. 다시 잠을 재촉해 보지만 잠이 오질 않았다. 
책이라도 꺼내 읽을까?

   '아, 참! 그렇지.. 우의(雨衣)를 꺼내 덮어 보자...'

   그는 007가방에 습관처럼 넣고 다니는 우의(雨衣)를 꺼내어 덮었다.  이제 영어회화 공부도 좀 해
야지... 제대하는 이 중위를 보니 정말 보통이 아니던데...  참, 다음주에 대대 체육대회 8Km 완전군
장 달리기가 있지?  

   '어휴, 그 또한 내 몫이군... 포대장이 난리겠군...'

   10월 초의 기차 안은 정말 매우 추웠다. 대전을 좀 지났을 뿐인데 그는 또 잠에서 깨었다. 내리는
사람도 타는 사람도 없는 기차는, 정거장마다 거르지도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섰다 달리고,
또 섰다 달리곤 했다. 어디선가 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차 안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는데... 고양
이 소리 같기도 하고...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다. 무슨 소리일까?... 궁금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다.  소리가 나는 곳...  저 앞
으로 가 보았다. 그리고 그는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교 1~2학년이나 되었을까? 어처구니
없게도, 계집아이 하나가 온몸을 떨며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것도 따뜻한 봄에나 입을 듯한 하얗고
얇은 원피스 차림에! 이런 세상에...

   "얘, 너 어디 가니?"
   "...."

   아이는 대답 없이 그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다. 

   "...."

   그는 뜻밖의 상황에 매우 당황했다. 그러나 특별히 뭐랄까, 어찌 할 도리는 없었다. 제 자리로 돌
아 와 잠을 청했지만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저 애는 왜 저기서 저러고 있을까?'
   '옷은 왜 저런 걸 입고 있지? 이렇게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에... 그것도 밤차를... 혼자서?'
   '얼어 죽지는 않을까?'

   아이의 떠는 소리가  간간히 귓가에 진동했다. 굳이 외면하며 자는듯 말듯 기차에 실린  시간들이
아주 느리게 달려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례와 곡성이란 시그널을 들은 것 같았다. 

   '제법 많이 왔군...  아까 그 애는 내렸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왠지 가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추워서 떨었던 얼굴은 없었다. 뜻밖에도 아이는, 마치 포근한 엄마품
의 아기처럼 너무도 천진스러워 보였다. 티 하나 없는 맑은 얼굴에... 글쎄... 순수, 그 자체라면 설
명이 될까? 그는 자신이 덮었던 우의(雨衣)에서 철제 계급장을 떼어냈다. 그리고 조심스레 덮어 주었
다. 아이는 좀 뒤척이긴 했지만 이내 우의(雨衣)를 끌어당겨 얼굴까지 푹 뒤집어 썼다. 뭔가 물어 볼
듯한 표정의 그가 머뭇거리다가 제 자리로 돌아갔다. 왠지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괜한 걱정이었나?'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순천역... 그를 떨군 여수행 밤기차는 쿠르릉 소리를 남기고 내달려갔다. 
그 애를 깨워 우의(雨衣)를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얘, 난 내려야 하거든. 우의를 가져가야 하는데..."
   "..."

   하지만 아이를 감싸고 있는 우의(雨衣)를,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에게서 뺏을 순 없었고, 그냥 플
랫폼을 밟고 만 그였다.

   "우의(雨衣) 따위야, 한 장 다시 사지 뭐..."

   뭔가 잃어 버린듯 허전하고, 기분 나쁜 꿈이나 병을 앓고 난 것 같은 느낌... 그래, 그런 것이 있
었다.  하지만 희뿌연 동녘을 뒤로 털털거리며 달리는 통근 트럭은 '밤이란 원래 그런 거야'라며, 늘
보던 얼굴과 늘 대했던 나뭇가지 사이를 따라 킬킬거리는 통념의 멋쩍은 너털거림과 함께  함몰하듯,
그를 부대의 일상으로 싣고 가 버렸다. 벌교 포대의 새로운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었고,  포대장의 잔
소리가 쏟아졌고, 일상적인 조회가 언제나처럼 행해졌다.



* * *

   "김 중위님, 오늘 꼭 오셔야 합니다"

   벌교 포대에서 온 전화였다. 어떤 아가씨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벌교로 와야 한다는 교
환병의 신신당부다.

   '왔구나… 결국…'

   어제 대대 체육대회에서 그는 8Km 완전군장 달리기로 팀원 30명을 이끌고 우승을 했다.  이래저래
안달하던 포대장은 좋아서 싱글벙글했다.   툭하면 포대장들끼리 권총 들고 한바탕 난리를 떠는 것이
대대 체육대회의 의례였던 만큼 그는 인솔 작전장교로서 적지 않은 부담을 갖고 있었다. 다행히 팀원
들이 잘 따라 줘서 우승을 따 냈으니 당분간 포대장으로부터 큰 잔소리는 안 들어도 되겠구나… 그냥, 
그런 마음으로 홀가분했다. 거기다가 오늘 5Km 오래달리기에서도 준우승을 안겨 주었지 않은가!

   양산 대대에서 벌교까지는 꽤 멀었다. 다른 부대원들은 부대 수송차로 이동하기로 했고,  그는 교
환병의 당부대로 먼저 귀대를 서두르고 있었다. 포대 2호차는 인심쓰듯 내뱉는 포대장의 허락 하에서
만 그가 이용할 수 있었다.  모처럼의 휴일에 하숙집에서 늦잠이라도 자려 하면 시샘하듯 꼭 불러 깨
우곤 하던 2호차가 오늘만큼은 이렇게 좋은 이동 수단으로 내게 제공되고 있다!  아무튼 싸움은 이기
고 봐야 하는 거야...
 
   '그런데... 정말 수미가 와 있는 걸까?'

   수미(首美)는 지난주에 처음 그의 집을 들렀었다. 그는 대대 출장 중이었고, 아무도 없는 총각 집
에 불쑥 찾아와 넉살스레 몇 밤을 자고 간 그녀를 보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참으로 당혹스러웠던 모양
이었다.  이번엔 작정하고 아주머니를 구슬리어 부대 전화까지 챙겨서, 교환병에게 당부까지 해 놓고
그를 기다리는 거란다.

   2호차는 늦가을 남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맞으며 남해고속도로를 세차게 달렸다.  아무리
밟아도 고작 시속 90Km밖에 나가지 않는 지프였지만 덮개가 벗겨져 날아가도록 힘차게 달렸다.  그날
전라선 기차에서 본 그 애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아기처럼 청순하고
가녀린 인상이었다는 것밖에는...

   벌교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그가 머무는 하숙집은 벌교 읍내에 있었다.  총각 장교에다가 서울에서 내려왔다니 유난히 극진한 대
접을 해 주시는 아주머니와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둘 있는 집이었다.  한 두세 평이나 될
까? 책 몇 권, 그리고 늘 쓰는 일기장... 그리고 붙박이 옷걸이... 그게 그의 방에 있는 전부였다.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 앞 뜨락에 자그만 여자 힐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순간, 뭔가 잘
못 되었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달려올 때까지의 그 단순한 설렘은 어디로 가고.

   "수미?"

   문을 살짝 두드렸다.

   "아저씨?"

   기차에서 만났던 그 아이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언뜻 그때 그 아이가 아닌 것도 같다...

   "아니?  네가 어떻게?..."
   "들어와요, 아저씨..."

   그녀는 정말 미안해 했다. 우의(雨衣)에 적어 놓은 부대명과 이름을 보고 수소문해서 찾아왔노라,
그때는 정말 고마웠다,  죽으려고 여수 신덕 앞바다에 가는 중이었는데 아저씨를 만나 다시 돌아오게
되었노라..,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자기를 무시하고, 더군다나 부모도 자기를 버리고 아무도 사랑해
주지 않았는데, 기차 안에서 아무런 바람도 없이 자신에게 따뜻함을 주던 아저씨가 좋아,  무작정 아
저씨가 보고 싶어 왔노라.., 그런 사연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와 아저씨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 그렇지만 갈 데가 없다.., 갈 데가 생길 때까지 아저씨 집에서 신세를 져야겠
다.., 그런 얘기였다. 참으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고… 또 두렵기까지 한 일이었다.


   우의(雨衣)를 돌려주러 왔다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말 한 번 나눠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그것도 작정하고 두 번씩이나 찾아와 이러쿵저러쿵 자
기 얘기만을 재잘재잘 이야기해대는 이 아이는 도대체 누굴까, 무엇일까? 그것도 마치 제 집인 양 천
연덕스럽게 누워서 말이다. 도대체 뭐냔 말이다!  그는 뜬눈으로 밤을 새워야 했다. 체육대회로 지친
몸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그는,

   "돌아가거라! 
돌아가지 않으면 난 안 올 거야"

   그러고는 부대로 올라가 버렸다. 정말 두려웠고, 꼭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 같았다.

   "아주머니, 미안해요... 그 아이 갔어요?"
   "응… 아니, 아까까진 있었는데...  근데 그 아가씨 누구야?  애인이야?...  김 중위가 그런 줄은
몰랐어."

   며칠 동안 아주머니를 통해 아이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었던 터였다.

   "아까, 그 아가씨 서울로 간다며 갔어"

   그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서 그는 부대에서 내려왔다.  H대학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쳤다고 했다. 
아버지가 구미시청에 다닌다고 했는데 얼마 전에 엄마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
도록 밉다고 했다.  자기는 그런 엄마 아빠의 피를 받아  배가본드(Vagabond)적인 운명을 타고났다고
했다. 그리고 단명한 작가 전혜린을 꿈처럼 사랑한다고 했다.  자신도 전혜린과 같은 삶을 살기로 했
다고 했다. 그는 그런 수미를 그냥 맥놓고 쳐다볼 수 밖엔 없었다.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환경의 그
런 상황에 어떤 조언도,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증폭이 그를 위협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만을 어떻게든 지워 버리고 싶었
다. 며칠을 하얗게 지내고 있었다.

   '내게 우연히 나타난 아저씨.. 난 아저씨가 좋아... 1주일 후에 짐 챙겨서 올게요. -수미- '

   그녀가 문턱에 던지고 간 메모는 간결했다. 수미.., 1주일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주일 후에 오겠다던 수미는 2주가 넘어서야 벌교에 나타났다.  그쯤에 그에게는 작은 생활의 변
화가 생겼다. 어쩌다가 한 번 부대에서 내려와 자던 그 하숙집에 매일 내려와 잤으며,  또한 밤 늦게
까지 자지도 않고 기다리고 있었고,  작은 소리에도 자다 깨어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습관 아닌
습관이 생겼던 것이다. 기다림일까? 걱정일까?... 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아무튼 그녀를 기다렸
던 것이다.

   '왜 안 올까?'
   '혹시 다시 자살길에 올랐나?...'
   '어디에 있을까?'

   2주가 넘어 나타난 수미는 상상 외로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도 기뻐했다.  벌교에서 그런대
로 깨끗하다는 한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도 함께 먹었다. 여기저기 짧은 여행도 했다. 조잘조잘... 수
미는 말이 많았다. 정말 예뻤다... 맑았다. 처음엔 그녀가 그와 함께 같이 살고 싶다고 했다. 아저씨
랑 함께 살게 되어 걱정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다가 이내, 그저 '계약결혼'으로 살다가 헤어지자고도
했다. 그녀의 말은 제 하고 싶은 대로였다. 그런 얘기를 듣는 그 역시 같이 웃기도 했고 결혼도 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나 끝내 서로 그렇겐 할 수 없다고 했다.  학교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을 때도
걱정이 없었던 수미는 국문학과 전공의 학생이었다. 엄마 얘기를 하며 울먹였고 혜린이 얘길 하다 웃
었으며, 'J에게'와 '갯바위' 노래를 불렀다. 그녀는 그렇게 며칠을 그의 하숙집에 머물렀다.

   사실 그런 그녀가 특별히 그를 동화시킬 매력은 없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일찍부터 세상에서 막
굴러 자란 탕아와 같이 지저분하다고 느꼈다. 그게 그를 두렵게 했고, 한편으론 어린 나이에 그런 환
경에서 참 힘들고... 안됐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를 지금의 이런 굴레에서 구해주고 싶
었고 정상적인 가정으로 되돌려 주고 싶었다. 구미시청 새마을과장이라는 그녀의 아버지, 유부길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도 해 봤다. '그런 년과 상대해 봤자 너나 다친다'는, 참으로 어이 없는 충고만 들었다. 
어떻게 아버지란 사람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점차  그도 그녀의 아빠란 사람을 미워하게 되었고
또한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깊고 깨끗한 그녀의 눈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

   가지 않겠다고 우기던 수미가 마음을 바꾸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방을 하나 구
해 주겠다고 했다. 그것으로 그녀는 여수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얼마 만큼의 돈을 그녀의 손에 들려
주었다. 헤어지던 날 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새 그녀는 뾰로통했고, 어느 순간부턴가 울
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해 주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뒤척이는 가
운데, 그녀의 살결이 스칠 때마다 억누를 수 없는 욕망과 이상한 감정이 혼합되어 복잡했다. 주체 없
이 그녀의 몸에 묻히고도 싶었다.

   역시 그렇게는 할 수 없었다.  복잡한 번민이었다.  괴롭고 힘든 밤이었다. 섞일 수 없는 불순물,
혼합물과 같은 뭉클거림만을 뇌리에 남긴 채,  수미는 밤새도록 울었고 그 또한 뜬 눈으로 새벽을 맞
아 부대로 향했다.



* * *

   수미가 떠나고 그 다음 1개월이 지났다. 그녀가 여수 앞바다가 보이는 2층집에서 기거한다는 연락
이 왔다. 아저씨의 그 따뜻함을 정말 무엇으로 갚을까.., 수미는 나쁜 아이다.., 그래도 그림도 그리
고 시도 쓰면서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 언제 벌교에 놀러 가겠다.., 그런 편지가 서너 번 왔다.

   "한 번 초대하면 놀러 갈게"

   그는 부대 일로 바빴다. 이 중위 선배가 제대할 때가 되었다. 그 동안 이 중위가 사귀었던 혜진이
가 찾아왔다. 요즘 이 중위가 자기를 멀리한다며 울고 갔다. 그는, 내가 뭘 어쩌란 말인가 하며 씁쓸
해 했다. 갈 때가 되니 사람도 잘 정리하는구나 했다. 아주 냉정하게... 버릴 건 버리고...  실속 있
게! 간단했다. 어떤 의미에선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헤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기야,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하지만, 그는 순수...  그런 게 좋다
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 어떤 순수를 갖고 싶었다.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수미는 어떻게 하고 살까?'

   이삿짐을 옮긴 후 놀러 오겠다고 했던 수미는 두 달이 지나도록 오지 않았다.  산다는 그 여수 주
소로 찾아가 보고도 싶었지만, 끝내 않기로 했다. 다만 그녀가 와 줄 것으로 믿었다.  사기를 당했다
고 하숙집 아주머니가 핀잔했다. 포대장과 윤 중위,  그리고 그 느긋느긋한 이 중위 의견도 그랬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그녀가 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그녀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었다.  헤어
지던 날 밤의 그 불순물같은 흐릿한 잔영이 그저 부끄러울 뿐... 진정 따뜻하게 보듬어 줄 것을...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샀다.  무엇이 그녀의
가슴을 송두리째 빼앗았단 말인가... 도대체 꿈같이 사랑한 전혜린의 삶이란 어떤 것이란 말인가...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끝없는 방황과 죽음에의 열망으로 사랑하게 했던가...   죽어도 평범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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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 세 사람과 나 외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남김 없이 행복할
 것이다. 우리를 방해하고 화(Unheil)만 끼치는 다른 사물이나 인간들이 너무도 많다.  만일 내가 도
박(Toto)을 걸어 이긴다면 이 세 사람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한 번 해보고 싶다! 오, 그것은 얼마나 멋
질까? 적어도 그런 꿈 정도는 꿀 수가 있다. 그러나 유감히도 나는 도박을 싫어한다. 그것에 맞는 소
질이 내게는 정말 없다. 게다가 나는 낙천주의자(Optimist)가 못 되고 나의 성향(性向)은 검은색이다. 
반대로 철수는 상당히 낙천적이고 모든 것을 상당히 파랗게 그린다. 그 때문에 나는 그를 사랑한다. 
미칠 듯이,  그의 혈기 왕성(血氣旺盛)한 무구속(Unbefangenheit)과  오만(Ubermut)을 진정 사랑해야
한다. 나는 그와 같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나에게 매혹적인 것이다. 
                                                           -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전혜린) -


    ---

   죽음을 씨(種)로서 속에 지닌 과실로의 삶을,  우연적(偶然的),  일회적(一回的)으로 주어져 있는
우리들 누구나의 공통 운명이고 괴로움인 죽음을 갖고 사고(思考)의 거리에 놓고 거기에서 파생한 모
든 허무감을 나누어 느끼고 동정하는 것  ― 이것은 약(弱)함은 아닌 것 같다. 이 공감(共感)에서 우
리는 서로가 서로의 실존에의 돌입을 용이케 하도록 도와주고 계기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식하는 나와 생활하는 나, 내 손의 상부 구조와 하부 구조, 내 의식 속의 남의 의식, 남의 의식
속의 나의 의식, 커뮤니케이션의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짧은 데서 오는 단절감(斷絶感),  비애, 영혼
과 영혼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맞부딪치는 해후(邂逅)만이 진실한 것인  타자(他者)와의 관계(Bezog)
의 어려움, 쉬운 길, 만인(萬人)의 길,  자기를 내던지고 유한성과 탁월성에 눈 감는 길의 크나큰 유
혹, 나만이 어떤 오식 활자같이 거꾸로 박혀 있는 것 같은 콤플렉스......  기타 삶의 메카니즘이 요
구하는 의무(Devoir)반감(反感) 및 무력(無力)이 모든 갈등(Konflikt)에 넘친 가시밭 같은 길이 우리
의 삶의 길이다. 매일 우리는 그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땀과 피를 흘리는지 모른다.
   공동 사회는 우리의 의식이 실존하는 것에 반대밖에 되지 못하고  세계는 개체(個體)와 분쟁 상태
로 대립해 있는 것이고  또 우리는  타자 존재(他者存在)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세계 속의 존재인
것이다.                                                    -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전혜린) -



* * *

   1984년 말, 
수미가 벌교에 마지막으로 다녀갔다. 그때도 그는 포항으로 파견 근무를 가 있었을 때였다.  며칠 후
그가 돌아 왔을 때 그의 작은 방에는 그때까지 가시지 않은 그녀의 체취와 한 통의 편지가 조용히 놓
여져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녀가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 줄 것이라는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뭐라 할 수 없는 아쉬움, 답답함, 그런 것이 있었고... 그리고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그녀가 남겼던 몇 통의 편지를 다시 꺼내어 읽어 봤다. 가슴이 아팠다. 알 것도 같았지만 정말 알
수 없었고, 오히려 뭔지 알 수 없는 자신의 허상만을 보는 것만 같아 괴로웠다. 그는 그 작은 공간, 
그 방에 누워서 그 동안 그녀와의 경위를 곰곰이 돌이켜 봤다. 한차례 꿈이었던가... 도대체 무엇이
었던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한꺼번에 몰려와, 산산이 부서지는 자신을 감내할 수 없었다.


    ---

   아저씨께 수미가 보내는 메세지.
인연이란 묘한 것인가 봐요. 남자내가 폴폴 풍기는 작은 방안에 누어 혜린의 글을 읽었어요.  일주일
후에 온다는 아저씨를 기다리며 한 일주일 죽칠까도 했지만,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허락칠 않아
상경합니다. 무작정 방문한 게 잘못이었어요. 추운데 바란 것은 따뜻함, 情, 그것은 따뜻한 것이지요. 
고마웠어요.
   솔직히 저를 말 할게요.
그날 아저씨를 만난 날, 나, 여수의 신덕 앞바다에 죽으러 가던 길이었어요.  대학생활 9개월에 종지
부를 찍고 저주하는 아버지를 괴롭히려 내 인생을 포기하려 했었어요.  난 버림 받은 외동딸이었거든
요.
   하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차가운 냉혈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삶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나는 다시 상경했다가 우의 갖다 드리려 온 거예요. 하지만 안 계시더군요. 주인 아줌마네
신세 져서 미안해요. 대신 사과해 주세요.
   이젠 여행을 떠나야 되겠어요. 끝없이. 울 엄말 동정해 가면서 여행할 거예요.  난 배가본드的 기
질을 타고난 에뜨랑제. 어차피 狂끼 있는 女子아이였으니까. 또다시 내 삶과 生을 사랑하러 떠나야겠
어요.
   내년 가을 학기면 독일로 떠나요. 거길 가기 전에 난 나대로 살고 싶었어요.  열심히 생을 사랑할
게요. 그래서 아저씨께 와서 몇 주 죽칠려고 했었는데... 안녕 아저씨-- 
                                                                    84. 10. 11        - 수미 -
  P.S: 16일날 오신다구요. 22일경 다시 들를지도 모르겠군요.


    ---

   받음 : 아저씨
수미는 지금 슬퍼.
아까, 아까, 울었어요.
내가 왜 자꾸 남에게 도움과 해를 끼치고 다닐까요.
이건 내가 생각한 의도의 삶이 아니고 인생이 아닌데.
생은 내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지 멋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왜 삶은 내가 원하는 데로 따라오지 않을까요.
하기야 내가 원하는 데로 살아지기야 한다면 그 삶에의 고난과 피곤함이 없어지겠죠. 산다는 게 맨숭
맨숭할거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너무 산다는 게 조물주의 일방적인 통고인 것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지요.
나같이 엉망진창으로 뒤 섞여진 인생 스케줄을 가진 아이가  그 속에서나마 희망을 끄집어 내려고 안
간힘을 쓰는걸 보노라면 새삼 평범 속에 날카로운 칼이 들어 있나 봐요.
역시 난 凡人일 수 밖에 없어요.
평범하길 원하면서도 속으로 평범해 지기 싫다고 아우성 쳤으니까.
한마디로 산다는 게 위선이예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나 혼자만 삐죽이 돌출되어 있으니 둥글둥글 살아야 할 세상에 부딪치는
건 당연하죠.
Vagabond적인 기질로 항상 떠돌아 다니는 수미.
정상이 아니죠.
아저씬 정상아가 아닌 아이하고 같이 있으면 아저씨도 비 정상적이 되고 말아요. 멀리 가세요.
되도록 멀리, 빨리, 멀리 아주 멀리 가세요.
내가 그랬잖아요.
난 혜린의 광기가 닮고 싶다고.
그래서 난 지금 연습하는 거란 말이예요.
바다에 가서 혜린이 보지 못한 그 찬란함이 바다를 음미한 채 제 5차원의 세계로 가서
이 3차원의 세계에서 본 바다를 혜린에게 이야기 할거예요.
그리고 그 아이에게 말해 줄 거예요.
나 때문에 괜히 희생하지 마세요.
난 투자 가치성이 전혀 없는 아이예요.
희소 가치성이란 말이예요. 지금도 토요일까지 돌아다니다 차비만 달랑 들고 내려왔다고.
우리 아버지가 이 다음에 우리 딸 거둬줘서 고맙다고 치사하지도, 아저씨가 나랑 결혼할 것도 아닌, 
우리집은 감사라곤 모르는 무뢰한의 소굴.
그냥 그냥 그런 색깔의 관계로 남아 있으려면 더 이상의 희생은 하지 말아야 해요.
아저씨가 가엾어져요.
사람은 누구나가 다 타산적이고 자기 계산적이기 때문이예요.
아저씬 아무 조건 없이 수밀 날개 잃은 새로 가둬두고 싶어 하지만,  새가 새장 속에 있게 되면 날고
싶어하고 주인은 그 새를 소유하고 싶어하죠.
당연한 거예요.
난 아직 날개가 덜 자란 새이니까, 아저씨 희생 마세요.
근무 조퇴까지 하면서 자그만 공간을 마련키 위해 바쁘신걸 보면 슬퍼져요. 
난 많은 사람을 거부하고 가슴 아프게 해왔어요. 죄가 많아요.
정 아저씨가 수미 헤매는 거 안타까우면, 여수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면  수미는 1달이나  2달이나
거기서 살 거야. 우린 사랑해져도 안되고 사랑하려고 해서도 안돼.
난 나쁜 아이고 역마살 끼인 아이니까.
그냥 아저씨와 수미는 이 중간색의 관계로 남아 있는 거야.
보봐르도 아니고 사르트르도 아닌 우리가 뭘 이 차가운 세상에서 하겠다고.
우린 윈저공도 아니고 허트슨 부인도 아냐.
그런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위대한 Life에 참가할 수 없어.
별 수 없는 人間, 평범한 凡人 속에 사는 우리니까.
아저씬 아저씨의 生과 愛와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하고,
수민 수미대로 내 愛와 혜린과 여수 앞바다를 위해 살겠어.
우린 10년이 가도 20년이 가도, 색깔이 변치 않는 하나의 유화가 되야 해.
서로의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주 보며 대화할 수 있는 관계.
잡티가 섞이지 않은, 순수.
首美는 그게 좋아.
                         - 안개초 -
    

    ---

   아저씨 받아볼래요.
지지리도 아저씨께 실망과 사기 감정과 배신감 만을 안겨드린 수미입니다.
화 나시겠죠. 얼만큼 내가 아저씨께 실망을 가져 주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예요.
하긴 내 자신도 내가 싫어요. 환멸이 일고 증오가 솟구쳐요.
만나서 알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모든 인간의 슬픈 이야기라고 S.J.콜리지라는 사람이 말했죠.
   그래요. 우린 만나서 알고 실망하고 헤어지는군요.
이 도시, 여수, 지독하게 이국적인 감성으로 와 닿던 도시에 아저씨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
그 지난 여름날, 죽음의 빛깔로 마주 대했던 여수 앞바다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빛깔을
찾으려고 몸부림쳐도 파아란 비취 빛깔 바다는 침묵만이 지키고 있을 따름입니다.
수많은 갈등과 좌절, 고통, 키위새처럼 내 고통을, 내 상처를 스스로 쪼아대며 신음을 해 댔듯이, 난
이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요. 아니 나와야겠죠.
입이 열 있어도 변명할 수 없는 처지에서, 다시 서울로 갑니다.
제가 빌린 돈, 홧김에 12월말 경에 갚는다고 소리쳐 놓고  나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못해 죄송합
니다. 또 12월 31일이 계약 마감날이기도 합니다.
제 능력껏 갚아 드리겠습니다. 아저씨 제대하시기 전까지요. 맹세할게요.
울 아빠나 집에는 연락하지 마세요. 여수에서 산 사실도, 아저씨 돈 꾼 것도 모르실테니까요.
안다면 난 초지박살날테죠. 서울에 있는 거로 알고 있을테니까요.
   이사 가는, 마지막 날 밤입니다. 어수선한 짐들 사이에 엎드려 편지 드립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단 말 드릴께요. 내가 한 짓거린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짓이지만 용서 바랍니다.
   아저씰 놀리려고 한 게 아니었어요. 진짜 남자랑 같이 사는 게 겁이 났어요. 안녕 
                                                                         - 수미-
   P.S: 서울 가서 연락 드릴께요. 

 

* * *

   그는 85년 12월을 꽉 채우고 제대를 했다. 장교라고 해서 다를 것이 무언가...  그저 세월만 흘려
보냈을 뿐... 인생에 있어서 좀 편하게 생활하고, 조금 따뜻하게 잠자고 잘 먹는다고 해서,  뭐가 다
르단 말인가.  이 중위, 그 선배는 끝까지 S사만 고집하고 몇 번의 낙방 끝에  결국 S사에 들어갔다. 
그가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뭣 때문에 S사만 그렇게도 고집했던 걸까?... 그래... 그는 실속이 있는 사람이야...'
   '난 어떻게 하지?... 이제 제대도 했는데.. '

   대기업 공채 시험도 모두 끝난 후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했을 뿐이다. 괜히 부산하게 왔다 갔다만
했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뾰족한 결론을 얻지 못한 그였다. 결국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그 긴 3년, 
아니 4년 동안 무얼 얻었단 말인가... 아니, 뭘 준비했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슬펐다. 참 이
상한 일이었다. 그렇게도 자기 자신에게 투철하고 매사에 꼼꼼하고 완벽하고...  학창 시절엔 그렇게
도 엘리트적이었던 그가 왜 그렇게 자신에겐 방관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학 졸업 때도 그랬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적어도 제게 굴러온 것만이라도 철저히 챙겨야 했
지 않는가 말이다.  적어도 이 중위만큼만 냉정하고 실속을 챙기고 목표 의식을 갖고 준비를 해 왔어
도... 말이다.  그랬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쓸데 없이 수미란 애를 만나서 또
그런 일로 세월만 낭비 했구나... 헤어지는 정돈도 제대로 못하면서... 생각해 보면, 수미도 다만 자
신의 生과 愛를 자각하기 위해 그토록 광적으로 빠져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러나!
그렇게 일상에 널려진 그저 잡다한 번민의 그로서,  어떤 한 순간에,  아주 짧은 순간에, 그도 알 수
없는 밀물과 같이 몰려오는 감정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향한 그 그리움이 어쩌면 그것일 것
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랬다.
수미(首美)는 자신의 본질적 존재를 좇기 위해 그렇게 헤매고 다녔는지 모른다.  여성이라는  자신과
어머니를 동정하며, 아버지라는 남성주의 사회의 그 비본질적 가치를 저주하면서 말이다.  본질적 가
치의 부재, 또한 거기서 오는 고독, 지독한 가치관의 상실에서 오는 에노미에(Anomie)...  결국 혜린
처럼 '가을 마다 찾아오는 狂끼'로 그 신비의 끝, 자살이란 '가을 여행'의 극단적 치유에의 몸부림에
나섰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전라선 그 여수행에서 만난 그, 우연히 부딪친 한 남자...  그에게서 그
어떤 情, 그 어떤 純粹를 그렇게 갈망해 찾아 봤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깊은 광적 삶의 눈빛을 보지
못했는가?  그렇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그가,  결코 혼합물의 원천일 수 밖에 없는 그가 얼마나
어떻게 그녀에게 본질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겠는가.  회색 생활을 거듭하고 있는 미래가치가 없는
그로써 말이다. 오히려 그녀가 그토록 미워한 그 일상의 삶,  凡人으로서 느끼고 싶었던 꿈과도 같은
이상에 얄팍한 애정과 미천한 동정이나 제공한,  그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사치,  그 반복만을
제공한 방해꾼 밖에 되지 아니했는가 말이다. 공허와 권태만을 상기 시켜준...


    ---

  가을이면 앓는 병.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이다.
가을처럼 여행에 알맞는 계절이 또 있을까?
모든 정을 다 결별하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엷어진 일광과 냉냉한 공기 속을
어디라고 정한 곳 없이 떠나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난다.  매일 매일의 궤도에 오른 
생활이 뽀얀 오후의 먼지 속에서 유난히 염증 나게 느껴진다.
여름의 생기가 다 빼앗아가 버린 나머지의 잔해처럼 몸도 마음도 피로에 사로 잡히게 되고 生 전반에
대한 지긋지긋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럴 때 어디로 떠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출발을 생각하
며 자기의 정해진 궤도 밖으로 튀어 나갈 생각에 몸부림 친다.
이 결별과 출발의 집념은 매년 가을이면 나에게 다가오는 병마(새로운 빛과 음향 속으로서의)로써 그
생각 끝에 결국 '죽음'이라는 개념에 고착해 버리고 마는 까닭에 몸부림치는 것이다. 긴 여행 - 돌아
오지 않는 여행, 깨어남 없는 깊은 잠, 이러한 것들이 가을이면 매년 나의 고정 관념으로  되어 버린
다.
여행의 모든 색채와 열기가 가고 난 뒤의 냉기와 검은 빛과 조락은 나에게는 너무나 죽음을 갈망하는
자태로 유혹을 보내온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몇 주일이나 학교에도 못나오게 되고 앓아 눕게 된다. 
의사는 신경의 병이라지만 나 자신은 내가 '존재에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절실하고 긴박
하게 生과 死만을 집요하게 생각하고 불면 불식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생과 사에 대한 생각이라기보다는 사에 대한 생각이 나를 전적으로 사로 잡아 버린다. 가을은 토카이
의 詩 속에처럼 저녁 노을에 박쥐가 퍼덕거리는 숲을 지나서  오솔길을 한없이 걸어다니다가  길목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어린 포도주와 파란 호두'를 먹고 죽음 속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버리기에
꼭 적합한 계절인 것 같다. 괴로워하고 모든 것에서 공허와 권태와 몰락만을 발견하게 되고 죽음에의
항로에의 유혹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받고  생의 의지가 거의 마비되어 버리는  몇 주일을  꼭 겪어야
하는 것이 나의 가을이다. 그래서 나는 가을을 무서워한다. 그리고 싫어한다.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어둡고 무겁고 괴로운 몇 주일을 올해도 얼마 전에 보내고 났다.   매일 커튼을
검게 방 둘레에 치고 어스럼한 박명(薄明) 속에 누어있었다.  아무 말 소리도 내지 못하게 집안 식구
에게 이르고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이 조금이라도 짙은 날에는 두꺼운 검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열흘쯤 이렇게 앓고 나니 다시 일어나서 사물을 예전과 같은 각도에서 볼 힘이 어디선지 솟아났고 가
을은 깊어져 있었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 -


    ---

   죽음에 관하여

   집착 -  어느 사항이나 인간이나 생명에 밀착해 있는 상태는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때로는 취한
느낌,
숨 막히는 압박감을 우리에게 준다.  영원히 안 팔릴 열쇠의 꾸러미를 방탄 조끼처럼 걸치고 팔러 다
니는 노인, 내일이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 회색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수많은 생활인들. 
내일 지구가 파괴된다는 것을 통고 받는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다만 아연히 입을 열고
앙천탄식(仰天嘆息)할 뿐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 - 우리의 대부분이 그 중에 들어가는  -에게는 죽음
이란 다만 우연한 불상사 이외의 다른 의의를 갖고 있지 않다.  일회적인 생을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신비한 끝인 죽음이 이렇게 등한시되어 버릴 일인가는 한번 고려해 볼 문제가 아닐까? 죽음에 무관심
하기 위해(내심 우리의 의식은 누구나 그로부터 놓여있지 않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를 기만하고
의제나 거기에 다른 무엇이 섞인 혼합물, 때로는 대체물 만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우리의 고독은 그러니까 '영혼의 전달'이 불가능한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지속이 불가능
한데 기인하는 불안과 회의에서 싹트는 것이다.  전달(또는 사랑)이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고  우리는
'실존'과 마찬가지로 매 순간마다 선택되고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받아들
임, 선택함에 있어서의 결단성이 우리를 결정하는 전부라는 것을 안다면  사랑이나 기타의 대인 관계
가 얼마나 투명하고 맑은 관계로 될 것인가? 우정이나 사랑은  그것의 본질에 있어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방향으로 나의 의식을 나날이 선택하는 나의 태도,  즉 나의 의식의 의도에 의해
서만 그러한 것들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결정으로 승화된 순간을 말하는 것이며 가득 찬 순간,  자기 의식과 타의 의식이 완전히 하
나가 된 순간을 말할 것이다. 순간을 포착되어 응결시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 '순간'들이 생의
가치의 전부인 것을 생각할 때, 그리고 그것이 없다면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어떤 허망하
고도 엄숙한 감동을 갖게 된다.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 -



* * *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눈 앞에 놓여진 수치와 부끄러움을 감추어 보려고,  나름대로 세상에 밉보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면서
세월을 흘려 보냈다. 좀더 따뜻하고 안락할 것 같은 곳을 좇아 방황도 했고,  남들의 잘난 모습을 보
며 질투도 하고 분노도 했다. 그것이 때로 가슴이 아팠고 실망이 되기도 했다. 잘났다고 뻐기기도 했
었다. 
그렇게 말초적 오감의 지탱으로 그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당당하게!! 아니, 범인으로서. 비범할
수 없는 그이지 않은가!

   수미는 결코 되돌아 오지 않았다.  그도 그녀를 가맣게 잊어 버렸다.  하지만 17년이 훌쩍 지나간
지금, 1984년 그녀의 '가을 여행'은 '작은 그리움'으로 아직 그에게 고스란히 남아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진정 평범하기를 거부했을 그녀와,  취직 따위와 같은  그저 입에 풀칠이라는 코 앞의 일상
앞에서조차 전전긍긍하기만 했던 그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과분한 만남, 그리고 부끄러운 결별...이었
겠지. 지금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던, 아니면 죽어서 한줌의 흙이 되어 있든... 과 관계 없이.

   지나간 일을 다시 되새긴들 무엇을 하랴...  남은 건 다만 꿈같은 그리움일 뿐...  하지만 잊혀진
추억을 가슴에 안고 그 그리움을 뒤로 달려가 보면  또 다른 형태의 그리움이 늘 그렇게 덩그렇게 앉
아 있는 걸 발견한다. 그는 아직 그렇다. 아직도 그녀가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
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이제 방황의 끝, 신비의 끝에서,  그녀가 다시
한 번 꼭 찾아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을 것 같다. 아니 할 수 있는 말 아무
것도 없다.  일상의 번뇌를 뒤로 한 여수행 밤기차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 시그널과도 같은 아련한
그리움 뿐이랄까... 밤의 한강처럼 느낌 없이 받아들이는 거침 없는 손짓 같은 거...  그러한 그리움
인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하여도, 그와 함께하는 어떤 존재나 의식이 무엇이라 하여도,  그것은 그만의 아름다
운 한 폭의 유화가 되어 있다고...  불현듯 그녀가 나타나  배시시 웃으며 손을 뻗어 준다면  잡티가
섞이지 않은 순수...였던 그 그리움 덕분에 난 아직 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무엇 하나 딱 부러지게 맺어 놓은 것 없이,  불투명한 미련 투성이로 살고 있지만,  변치
않는 색깔의 순수라는 그리움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썩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다고...  예전에도 그
랬던 것처럼 아직도 그렇게 말이지. 그리고 헤어질 줄도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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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혼자 낳아서 혼자 죽어가는 것이다.  고독이야말로 본연의 生의 자세다. 허위와 無理에 넘
친 불안한 존재의 사회 습관적인 의무 같은 것은  우리의 영혼을 무시한 자의(恣意)의 습성이라고 밖
에는 생각이 안된다.  자학과 또한 거기서의 도피, 고립된 과정의 실천과 희열, 말 그대로 추위를 느
끼다 심장이 얼고 그래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의 희열을 위해 산다.  그리고, 그것의 持續을
위해 살고 싶다.                                                 <그의 일기장 1984年 11月 29日>
 
   온갖 불순과 기형에의 상상, 소리 없이 침투하는 友緣的 테러의 횡포  - 추한 몰골을 보이는 고통
과 아픔을 수반한 채,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이상적인 죽음, 혹은 무언의 영원한 잠, 또는 사회
와 멀리하여 혼자서도 언제든 思惟와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신의 베품,  더러운 육체적 욕망,  그리고
등등 -, 이 테러의 횡포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내 삶을 영위할 방법이란 없는 것 같다. 
                                                                <그의 일기장 1984年 11月 30日>



* * *

   2001년 가을의 어느 날,
그는 인터넷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렇게 글을 써 올렸다.

   ‘늦은 가을... 1984년 전후의 일로 생각된다. 
H대 국문학과 재학 중 1학기 만을 마친 채  꿈처럼 사랑한 전혜린(1934~1965)의 삶을 좇아  방황하던
그녀였다. 현실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저주해 자살의 길을 가려던 그녀였다. 주
위의 그 어느 누구도 자기를 살펴 주었던 사랑이 없었거늘,  그 마지막 죽음을 향한 여수 신덕길에서
겨우 건질 수 있었던 한 가닥 실같은 생명의 끈... 그녀는 다시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로 했었다.

   그토록 전혜린을 닮고 싶어했던 수미... 지금은 독일에 가 있을까...  아니면 단명한 혜린처럼 이
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인가...

   나에게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를 읽게 한 그녀... 유수미.
.. 1965년 8월 19일생...

   17년이 지난 지금, 나름대로 좇았던 삶은 제대로 찾아 갔는지... 어쩌면 지금도 그 '가을 여행'의
여정에서 끊임없이 자아를 갈구하고 있을 수미의 병이 매년 가을이면 내게도 전염(傳染)되어, 그녀가
그립고, 보고 싶다.


혜린의 어렸을 적 소원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
수미가 말한 그녀의 소원은, 「죽어도 평범하지 않을 것」




-'01年 가을 어느 날
<'09年 6月 12日과 11月 29日, 그리고 '14年 8月 9日에 일부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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