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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는 나를 더 사랑하며 살련다..(둘째 페이지)      "반디의 홈페이지"
    
               


『우정』




촛불 친구들아
하늘 없는 밤에 만나자
정전 되어 만나자
별 보지 않는 비오는 밤에 만나자

하지만 우리
만나서 이야긴 말자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
사랑만 만나자


봄비 내리는 이 밤에
진달래도 만났다




-'76年 5月의 어느날 밤에.


                  


『무제』




이 세상 만물이
자연의 법칙으로 만들어질 때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당신께
이쁘고 고귀한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 떨어진 가지에서 가을은 떠나갔지만
당신이 가르쳐준 그 고운 사랑은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잠재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바보였습니다.
나는 너무도 몰랐습니다.
이제는 철 없이 보내는 아기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한가지,
당신이 제 곁을 떠나갈까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76年 12月 10日 
 <복희(가명/별당아씨)가 쓴 글>


                  


『젊음, 그 밑으로 흐르는 계절』




우리는 백설로 출렁이는 은빛 물결을 따라 삶의 봇짐을 둘러매고 아득한 설원의 안식처를 향하여 한마
리의 철새가 되어 고운정을 남기고 설운잔을 남겨야 한다.  창밖에 흰눈이 쌓여가고 눈보라 치는 언덕
에서 모든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만 남긴채 체온을 빼앗기고 서있는 긴긴 겨울밤,  밤새 우리는 마디마
디 잘린 생의 헤진 부문을 메우며 고독의 현장, 부서지고 파손된 꿈의 조각을 줏어 모아야 한다.

2月, 이제 우리는 겨울의 마지막 의미를 들고자 하는 훵한 벌판에 와 닿은 것이다. 노 없이도 잘도 흐
르는 세월은 계절을 낳고,  계절은 해를 낳고 해는 숱한 연륜을 남긴 채 젊음의 순간을 한움큼씩 훔쳐
달아나고 만다. 가는 세월을 두고 한탄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과, 무쇠라도
녹일 수 있는 뜨거운 피의 젊음이 있다.   바위라도 뚫을 수 있는 통찰력과 원대한 예지의 상상력으로
욕망의 그릇을 채울 수 있으며,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시련을 견디고 스스로 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얀 겨울의 눈 속에 우리의 조잡한 오물과 망상은 묻어버리자.  태양은 이미 솟아 올랐다. 우리의 삶
의 경주는 또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해에 이루지 못한 매사를 다시 점검하고,  설정된 좌표를 위해 포
기하지 말자. 나아가자.. 주저하지 말고 앞만 보고 나가자.

홍수환 선수의 분투를 기억해 보자. 인간의 투지란 최후의 순간에서 얼마나 위대한가! 힘찬 일보를 내
디디자. 창밖엔 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펑펑 내린다..  우리의 지난 날들이 아픈 추억의 주마등으로
동공을 메우는 그런 밤이라도 좋다. 이밤에 긴긴 내일의 이야기를 쓰고 있으면 된다.

그리움이 차마 눈 뜨고 있는 이 밤에 젊은 우리들은 무슨 생각이 그리도 많은가.  좋다.  내일을 향한
설계와 꿈의 실현을 위한 밤을 앓고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헛된 망상을 위한 노예는 되지
말자. 유행에 민감하고 호기심에 젖더러도 방종에 빠지지 말고 자만과 위선의 통속에 빠지지 말자. 현
실을 직시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면서 뛰는 우리의 나날을 만들어 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한해, 이 하루가 알차고 충실한 결실로 충만하게 하자.  너무 욕심 부리지도 말고
서둘러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치밀하고 추진력있는 젊은이가 되어가자.  창을 열고 바깥을 본다. 얼마
나 청결하고 깨끗한가.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78년 3월12일>




- '78年 2月 어느날에 쓰고, '09年 7月 23日 새벽에 읽어보다.


                  


『병들지 말아야 한다』




기분 나쁠 정도로 규칙적인 시침소리
사람 눈에 충혈을 일으키는 돈다발
문명이 낳은 잔해를 캐리커쳐하는 활자들
영원히 죽지 않을 듯 살아가는 인간들
그 속에서 오가는 시커먼 교제.

무슨 얼어 죽을 세상살이가 이렇게 뒤죽박죽인가?
쓰레기통을 뒤져봐도 이렇게 어지럽지는 않을텐데.

도루코 면도날로 발기발기 찢기운 세상
일회용 반찬고로 얼버무린 세상
언제까지, 멍들고 피 흘리고 신음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개뼉다구 같이.

하수구에 처박혀 미나리 같이 뿌리를 내린자들
소외된 자들
멈췄던 수레바퀴가 서서히 움직이는
힘에 벅찬 출발점에서 산모의 진통을 안고 태어난 자들
포르노 필름을 보듯 호기심과 흥분에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자들
바로 우리들.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으면 안되는 우리들
눈을 가리우고 귀를 막힌 우리들
원격 조정되는 로보트에 지니지 않는 우리들
그러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제작년 동짓달에 먹은 팥죽마저 토해내야 할 세상
너무나 건조한 세상
화냥년 같은 세상
불 지르고 싸대기 한차례 올려 붙여야 시원할 세상
지린내 나는 오줌을 깔겨야 후련할 세상.

하지만 외면 하기엔 한 많은 세상
서러운 세상
그래서 우리는 절름거리며 오늘을 가고 있다.
탓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기형아로 만든 작자들.

그래
더러운 냄새를 풍기면서까지 탓하지는 말아야 한다.




-'79年 12月 17日
 <中學친구 범진(가명/Wildtree)이 써온 글에서..>


                  


『존경하는 대장께』




어디서부터 왔을지 모를 당신의 생각으로 지금 어둠이 멀리서 내곁에 오는 생각에 이처럼 글을 쓰고 말
았습니다.

대장!
진실로  당신은 이제껏 내 삶의 온 기둥이었으며  모든 것은 당신으로부터 빚어지고 연결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이제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소한 느낌을 어쩌지 못하고 찬비에 젖은 작은새처
럼 싸늘한 대지에 홀로 서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난 모든 생에 대한 환희와 행복 그런 단어들은 너무
도 낯설고 어설픈지 모릅니다. 요즘은 왠지 그 노랗고 뜨거운 햇살이  나와는 전혀 무관한 자연의 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날마다 이어지는 매초, 매분, 매시간  그런 이어
짐이 더러는 무료하고 슬픔 만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게도 그 누구를 지극히 순수하고
소박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는 기억이 눈물 겹도록 아쉽고 슬픔에 휘감기게 합니다.

하지만 난 요즘 지극히 덤덤하고 조금은 권태롭고 허무스러운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별을 위한 아니, 당신과 나와의 결별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그 모든 것입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유치
한.. 그러나, 진실로 절실히 잊으라 하신다면 잊어 버려야 하겠지요.  그래요, 열심히 당신의 환영을, 
추억까지도 차라리 잊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고 또 실연을 맛보아야 만이 절실하고 진실
한 야성의 순박함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한 누군가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진정, 사랑의 의미는 달콤한 행복과 함께 또 다른 아픔과 폭풍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이별을 위한 만남을 시작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그 어떤 결정체를 이루고자 손을 잡은 것도 아
니었어요. 다만 진실로 순수하고.. 그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 부딛쳤었던 것 뿐입니다.

이제 당신의 차가운 의식 앞에  나의 사랑이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초라한 그림자가 되고 말았
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빛나는 아픔이 있기에 진실로 당신을 사랑했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고독한 허한 영혼 앞에 서로의 등불이 되어 저 혼미한 오솔길을 끝까지 가고 싶어했죠.  당신의
그 거대한 가슴에 나는 조그만 나비가 되어 훨훨 평화롭게 날고 싶어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허한 나에
게도.. 내 곁에 누군가가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랑의 눈길로.. 내겐 저 슬픔의 강물을 건널 자신과 굳굳
히 설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난 다시금 나를 돌아보니  내겐 짧짜름한 눈물과 엷은 우수, 
그 잿빛 풍경들 만이 덩그마니 나를 감싸고 있었네요.

당신을 열심히..  병적일 정도로 열심히 사랑한 나의 잘못이 당신에겐 짐이 되었고,  내겐 스스로 아픈
상처를 만든 결과가 되었는지도 모르는군요.

대장!
당신의 나의 이런 처참하리 만큼 지친 영혼에  한줄기 사나운 바람을 몰고간 한사람으로 사라져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한 여름의 짧은 불꽃처럼 이렇게 엷은 미소를 안
고 스러져 가야 만 하는 걸까요.  그러나 아직도 문득 문득 흰제복을 입은 그네들을 볼 때마다 나의 눈
동자는 힘 없이 아픈 기억 속에 젖어 들고 맙니다.  차라리 그런 추억을 만들지 않았만 못합니다. 날마
다 날마다 당신의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그래도 못다한 가슴의 말들이 많아 눈물 짓습니다.

대장!
가슴에 새겨진 저 지울 수 없는 사랑의 모습은 결코 당신이 떠났다고 해서 지워지지는 않습니다.  아침
이 오면 맑은 공기가 새로운 듯 당신의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사랑은 진정 나에게
있어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노래인지도 모르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일생에 짧고 긴 여러 사랑을 하고 살아 간다지만  진정으로, 가슴으로, 영혼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단 한번 뿐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내게 남은 단 한마디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말
은 진실로 내 의식이 이어지는 날 아니,  그 순간까지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집착에 어느 때는 생이 실로  당신이란 한사람으로 가득찬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장!
언젠가 당신이 불쑥 내 앞에 나타나 먼 여행에서 돌아와 반갑고 눈물겨운 해후를 할 날을 위해 나는 날
마다 새옷을 입고 깨끗한 거울 앞에 앉아 조용히 머리를 빗습니다. 당신이 항상 나의 뇌리 속에 가득차
있어서 모든 생활의 끈을 쥐고 있음을 오늘 나는 더욱 더 절실히 느낍니다.

비가 오는 날,  젖은 몸을 움츠리고 걸어가는 그런 날이면 물방을 방울마다 당신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
워집니다. 거리의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  유독 당신과 나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참으로 오묘하고 알 수
없는 생의 끈을 의식합니다.

당신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결코 한 여름밤의 짧은 축제처럼 그저 스쳐가는 한마리
파랑새였노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이젠 만남, 모든 만남으로 해서 번뇌는 끝났어요.  문득 문득 가슴을 저며오는 통증을 느끼지만
나의 허한 영혼의 여백은 이제 잊혀져 가도록 노력합니다. 더 진한 더 아픈 나의 상처는 예술로 환원되
어 우울한 나의 영혼은 조금씩 슬픔과 함께 늙어갈 것입니다. <'78년 7월19일. 복희 드림>




-'78年 12月 24日에 옮기고, '09年 7月 23日 새벽에 읽어보다.
 <'대장'이란 어린시절 친구인 '범진(가명/Wildtree)'을 말하며, 이 글은 그의 여친 '복희(가명/별당아
   씨)'가 그에게 표현 못한 사랑을 내게 호소해 보내온 편지글임>


                  


『내 격에 맞는 술』




나는 남들이 술먹고 춤추며 몸을 뒤흔들어서 스트레스를 解消한다는 思考를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나
는 그런 자리, 그런 분위기에 끼어 도리어 스트레스를 잔뜩 안고 돌아오게 된다.

내 格에 맞는 술이란, 어쩌다 한번 혼자이고 싶을 때.. 혹은 맘에 맞는 상대와 둘이서 조용한 소줏집에
서 生을 吟味하는 對話로 한잔의 소줏잔을 기울이는 것, 아니면 조용한 音樂이 흐르고 아름다운 風光이
있는 곳에서 칵테일 한잔을 나누는 것이다. 




-'87年 6月16日(月曜日)


                  


『넥타이를 바꾸지 않는 이유』




언제나 새로 산 넥타이는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두번 매다보면 차츰 정(情)이 들게 되고, 그것 아니면 다른 넥타이는 맬 수가 없게 된다.
휘어지고 해져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까지 나는 단 한번도 그 넥타이에 대해 실증을 느끼거나 짜
증을 내어 본 적이 없다. 

그것이 바로 나의 屬性이다. 나는 우정(友情)을 포함한 사람과의 關係도 마찬가지로 여긴다. 

「정(情)이란 흐르는 물과 같은거야. 한 곳으로만 줄곳 흘러 내리는...
  그 흐름을 억지로 막아 버리면 옆으로 터져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래도 결국 그 물은 아래로 흐를 수
  밖에 없는거야 -조문경(1961~ )의 <눈물 빛깔의 꽃>中에서-」




-'87年 7月 8日.
 <나는 최근까지도 한번 매기 시작한 넥타이는 끊어지도록 한가지만 고집했다 -'09年 7月23日->


                  


『신륵사』




실바람 나룻배는
푸른 물결 실려 가고
은모래 눈부시다.

노 잡은 친구 팔
짓궂은 동동주 걸쳤는데
그대 어이 唐突한지.

一生에 없는 魅力
必然 맡겨 소리하니
남한강이 흐른다.




-'87年 9月 6日 
<당신을 처음 만난 날.. 神勒寺에서>


                  


『거침없는 밤의 질주』




「나는 사람으로서, 사람의 집에서 대접 받고 살고 있다. 나에게 밥을 먹게 해주는 源泉은 純粹愛로부
터이다」 마음이 肉體 보다도 충분히 환영 받을 경우에는 자질구레한 苦痛쯤은 거뜬하게 견뎌낼 수 있
다. <'87년 7월10일>


가슴 속 파고드는 음악을 밤새워 들었어요.
幸福합니다.
이것이 내 感覺의 源泉인 것입니다.

강해지겠습니다.
줏은 靈魂으로 사는 그에 주눅들지 않겠습니다.
볼륨을 크게 올리고 내 노래를 듣겠습니다.
-이하 본문 일부 삭제-



-'09年 7月 23日 새벽에 <아내와 함께 밤새워 音樂을 얘기함>


                  


『미친 여름밤』




드라마 「사랑」의 主演으로 
그대가 TV에서 웃는다.
오라, 오라며...
내 마음 미어지게도

연극 「離別」의 主人公으로
그대는 무대에서 운다.
가라, 가라며...
나의 心臟 터지도록

가위에 짓눌린 그리움이
어제는 미어지고
오늘은 터져서
애절한 사랑이 되고 슬픈 離別도 된다.
여름밤 痛恨에 젖어서.




-'09年 7月 25日
 만난 적이 있어야 그립기를 하지..
 올여름이 미쳤나. 바람이 춥다.


                  


『해원의 커피』




土曜日 나는
아주 特別한 커피를 마십니다.
情에 절인 未練에 걸러
性이 담긴 懷疑로 마십니다.

소나기 흩은 한여름 새벽
차가운 공기
冷情의 本然 위기(委棄)하고
해원(解寃)의 知性  渴求합니다.

土曜日 커피는
탐욕(貪慾)의 一週, 餘毒 하얗게 씻어내고
幸福의 歡喜 찻잔에 담는
丁寧 씻김굿 그대롭니다.




-'09年 7月 25日
 올해는 옥수수가 맛있다. 
 淸州고을 플라타너스(platanus)는 
 손등 아래 고개 숙였다.


                  


『행복이란』




행복(幸福)이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長點)과 우위(優位)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발전(發展)과
성취(成就)에 기여하고자 하는 희생적(犧牲的)  보호 본능(保護本能) 및 보전 의지(保全意志)의 자주적
(自主的) 자각(自覺)을 말한다.

예를 든다면,  아내가 운동 지각능력이 뛰어나 골프를 나보다 잘 친다든지 기억력이 우수하여 과거사를
통한 경험적 사리에 밝다든지 할 때, 그리고 아이가 나와 아내를 교차로 닮아 우성의 요소를 지니고 있
다는 것을 발견할 때,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장래를 지향하여 지원 방향을 함께 설계하고  이의 이행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며 얻는 자주적 자각을 말하는 것이다.




-'09年 7月 26日(日曜日), 모처럼 파란 하늘이다.


                  


『온도에 민감하지 말라』




얼마 전 高校時節의 친구가 나에 대한 유년(幼年)의 이미지를 '별난 아이'로 기억(記憶)한다고 말해 준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별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나는 할 이야기가 한가지 더 있다. 나는 中學校 時節 이후 지금까지 平生을,  한결
같이 제복(制服)을 입고 살아 왔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겠지만, 이를테면 나는 한여름에도 제복(制
服)으로서 '긴팔의 옷'만을 고집(固執)해 입었다.

내가 그 뜨거운 여름에 땀을 찔찔 흘리면서도 '긴팔의 옷'을 고집(固執)하는 것에는  분명하고 많은 理
由가 있다.  勿論 이 固執은, 처음에는 온도 변화(溫度變化)에 민감(敏感)하여 수시(隨時)로 옷을 갈아
입는 변덕(變德)스런 젊음의 경망성(輕妄性)을 거부(拒否)한 것에서 비롯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덧 이 固執은 하나의 내 '緣'的 트레이드마크(Trademark)로서,   스스로 나 自身을 상징(象徵)하고
드러내는 자존적 습관(自尊的習慣)으로 고착(固着)된 것은 엄연(奄然)한 事實이다.

내가 여름에도 '긴팔의 옷'을 입는 것은,  정신적(精神的) 육체적(肉體的)인  동질성(同質性)을 모으는
정돈감(整頓感)의 표상(表象)이다. 외부(外部)로부터의 방호(防護), 내면(內面)의 것에 대한 보존(保存
), 심지어 온도(溫度)에 둔감(鈍感)한 편협(偏狹)과 고지식,  그리고 한번 시작하면 영원(永遠)히 그칠
줄 모르는  연속성(連續性)과 지속성(持續性)에 대한  極한 차별화(差別化)의 추구(追求)를 옹립(擁立)
함이다.

몇년전에 죽은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난다. 나의 단아(端雅)함을 느끼고 싶다고...  차라리 그 어떤 괴팍
성(乖愎性)을 나무란 얘기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폐쇄성(閉鎖性)이 아니라면 오히려 한便의 외향적(外向
的) 괴팍성(乖愎性)을 흠모(欽慕)해 지향(志向)하고 싶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아직도 유년시절(幼年
時節)의 그 '緣'的 트레이드마크(Trademark)에 젖어 산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高校時節의 그 친구가 말하는 그 '별난 아이'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09年 7月 26日, 마음을 다잡고..
 <'사랑'이란 相對가 事物이든 사람이든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知識의 持續性'을 말하는 것이며,
  '그리움'이란 이 知識의 '連續性이 斷絶'된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이 글은 운영상의 이유로 삭제 하였습니다..




                  


『청주에 살다』




하얀 아침
淸州가로 플라타너스는
설렌 가슴 열어준다
넋 둔 처녀 
숨 쉬이 트이도록.

놀 진 저녁
淸州시골 플라타너스는
굳은 팔짱 끼워준다
곤한 아낙
품속에 스미도록.

영근 달밤
淸州고을 플라타너스는
수줍은 손 잡아준다
그린 임
고운 눈에 젖도록...




-'09年 8月 3日
 한여름의 淸風明月..
<청주 街路樹길에서>


                  


『망상』




단편적(斷片的)이고 천편일률적(千篇一律的) 일상(日常)의 한 要求로서, 3단론적(三段論的)이고 흑백논
리적(黑白論理的)이고 또한 이데올로기的 사고(思考)로 점철(點綴)되어 사는 나와 같은 인간이  어느날
갑자기 떠밀리듯 갖게되는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 망상(妄想)이라는 것이 있다.
녹색(綠色)이면 綠色의 다채로움과 갈색(褐色)이면 褐色의 다양함과 같은 일탈(逸脫)로서의 나의 이 妄
想은 이와 같이 불시적(不時的)이고 비자율적(非自律的)인 돌출(突出)로만이,  자연(自然) 앞에 서서야
비로서 피부로 그 感을 인정(認定)하고 굴복(屈服)하게 되는 유형(類型)의 것이다.
때때로 이와 같은 妄想이 나의 숨을 고르게 한다.




-'09年 8月 7日 속리산 비로산장에서


                  


『粉靑茶器』




티 있어도
꼭 갖고픈 너

보기 前에는
만지지 않고는

色感에 質感
節制美까지도

어이 말로,
글로 
품을 수 있겠니

너의 姿態..




-'09年 8月에


                  


『소슬구름』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씩 너를 보게 되었다.
파란 하늘에 소슬구름.

여전히 너는 虛하다.
가슴을 여민 채
팔다리 名分으로 떠 있지만
정녕 心臟은 얼었구나.

어디로 다닐 것인가.
언제까지 너 혼자 갈 것인지.
終着은 없을까.

네 心臟 그리 차도
한番 녹여줄 수 없음이,
닫힌 가슴 열어서 溫風 줄 수 없음이
나를 아프게 한다.

너 채울 重心을 본다.
아무리 숨겨도 알게 되었다.
우선 따라라도 나선다.




-'09年 8月 13日
 파란 하늘에 구름이 있다.


                  


『오는 가을에는..』




입추 지나고 말복 보낸 8月 15日, 오늘은 내 토요일..
백지영의 '사랑이 죄인가요' 들으며 호수변길 따라 외곽도로를 타요.

무궁화꽃길 지나 코스모스꽃길 지나면 가을이 온데요.
아침에 나팔꽃은 서슬 파랗게 꾸짖어 대고, 멀리 풀벌레 비웃고 있어요.

이제 내 가슴에 가을 내리면
마디마디 눈물 머금은 달맞이꽃 하얗게 질식되어 노란 손짓도 하지 못하고
안개속 포위되어 저 들녘 한모퉁이 무심코 서 있지요.

「안된다.. 안된다고 해도
 어쩔수가 난 없네요.. 그대 얼굴만 또 보네요.. 다시..
 눈물로 젖은 가슴이 찢겨도
 고갤 돌릴 수 없네요
 그댈 원하는 내 마음이 묻네요.. 사랑이 죄인건가요..」

소양강 가을경치 보다도, 청주 우리동네 명암호수 아침안개 보다도..
으례 가을이면 찾아왔던 두런두런 영겁 같던 귓전의 울림이 뭐 그리 좋다고..

통념의 굴레와 미련의 밤 보낸 가로등 밑으로 흙먼지 날리며 사라지는
그 벌교의 통근트럭을..

올해는 아니 봐도 될까요..
숱한 가을을 그렇게.. 순수애의 기다림으로 지켜왔는데.. 
올해는 정녕 아니 아파도 될까요..




-'09年 8月 15日, 출근길의 오창 코스모스 꽃밭에서..


                  


『옛날에 이 길은』




풀벌레 소리 엷어 턱 괴고 앉으면
나른한 여름 텃밭에 다녀와
손 씻으시는 어머니 몸뻬 총총 걷으며
불어터진 국수 오이냉국 말아 주셨다

기적 없는 기찻소리 커졌다 멀어지고
추풍령 증기차 빽빽 고함이 처량해
손잡은 친구랑 뉘 빠를까 뛰어 넘었다
어머니 꽁꽁 싸주신 주먹밥으로

봉숭아꽃 시들어 흰분꽃 소리 튿어지면
황금빛 노을 벽에 걸고 사립문 곁에
죽음결까지도 하나로 걷던 아버지
수수깡에 종이 접어 팔랑개비 해주셨다

식곤에 휘몰린 채 뙤약볕 잦아들고
귀 얇고 약한 정에 창피함도 공포심도
흙째 구어 친구랑 서리 땅콩 그을렸다
아버지 서슬 같은 호통을 켜고

이 길은 아버지 하나에 어머니 하나
재작년 여름 아이들 캠프에 훵하더니
올여름 산행에도 그여이 없이 계시다
골바람 아버지요 계곡물 어머니시니

추풍 고개 너머 황간 할머니댁 가던 길
이 길은 옛날 어머니가 아버지 첨 만나
풀벌레 소리 괴고 봉숭아꽃 물들도록
뙤약볕 사립 곁 지나 울아이 오도록 

기다리시던 길..




-'09年 8月 22日
 <아내의 친구 아버님 조문을 마치고>


                  


『부모님께 기도』




아버지! 
당신께서 흡 하며 숨 놓으셨을 때의 
그 참연(慘然)했던 한(恨)과 미련(未練)의 눈빛을 이 자식은 기억(記憶)합니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죽음의 문턱에서 
절망(絶望)에 찬 그 아픔, 그 슬픔으로 애한(哀恨)의 손짓 하셨던 걸 이 아들이 압니다.

남의 부모(父母)들은 죽음 앞에서, 너무나 평온(平穩)하고 거룩해서 
당연(當然)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 말들 하더이다.
다만 당신들께서만 그리 가신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남들이 모두 죽음에 관해 거짓말을 하였거나, 아니면 
유독(唯獨) 당신들께서만 좋은 곳으로 가시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이 자식은 늘 죄송하고, 아프고.. 그리고 슬퍼해야 하는 거겠죠.
이렇게 짧은 세상(世上) 살다 가시면서
무슨 미련(未練)도, 슬픔도 그리 많이 가지셨답니까.
무엇 그리도 여한(餘恨)을 두고 안타깝게 사시었는지요.

조금만 버리시고, 조금만 저버리고.. 이젠 거두어 가십시오...
당신의 그 눈빛, 어머니의 그 손짓.. 이 자식 잊게 해 주시옵소서, 이젠...
이 자식 당당(堂堂)하게 살겠습니다.
이 아들 행복(幸福)하게 잘 살겠습니다.
그 아픔과 여한(餘恨) 남기지 마시고, 그 슬픔과 미련(未練) 버리시고
부디 좋은 곳에 임하시옵소서.




-'09年 8月 22日, 부모님 무덤 앞에서..


                  


『幸福의 생김새』




김대중 前 대통령 가심에 즈음하여 맑은 고을에도 몇개의 검은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 중에,  '行
動하지 않는 良心은 惡의 편이다'라고 쓴 글귀가 눈에 확 들어 옵니다... 글쎄..  그 분께서 어떤 취지
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감히 그 분의 말씀에 토 달 생각도 없지만.. 일단 단편적
시각에서 내가 거기에 보태어 말하고 싶은게 하나 있습니다.

"良心의 中心에 서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라" 라고...

고교시절이었어요. 
유신정권시절..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모든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완전히 점령 당하던 때였습니다. 동
창회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 반의 한 친구가 나서서 無能과 非理에 젖어 있던 우리 담임선생을 타도 해야겠다는 겁니다.
그 친구는 공부는 못했지만 正義를 가졌고.. 거기에 강한 주먹까지 지녔습니다. 모두가 그 친구의 선동
과 협박에 못 이겨 학교를 뛰쳐나가 농성을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있어 최대의 敵인 나는 그 正義의 良心은 인정했지만 行動의 樣式엔 찬성할 수 없었습니다.
화장실 뒷켵에서, 차갑게 스쳐 오는  제크 나이프의 칼끝이 옆구리에 느껴졌지만.. 분명 그것은 正義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나는,  그 한 친구의 칼끝에 항복해 다리 밑 농성에 참가 했다가 끝내 학교 당국의 회유와 위협에 굴복
하여 하나 둘 제발로 학교로 돌아왔던 대다수 친구들의 그 비굴했던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한 결국 경찰에 의해 제압 당하며 칼 든 그 친구를 비롯한 몇몇 주동자들이  나를 향해 그 혐오의 눈빛
을 날렸던 것도 똑똑히 압니다.

그런데,  그들이 농성하는 동안 나 역시 그들의 正義에 동참을 했었다는 것을 그들은 알리 없을 것입니
다. 또한 나의 동참에 실망한 선생들조차 내가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리 없습니다.  그 때
나는 의정부의 한 도서관에서 혼자 책을 읽고 있었고, 그것은 나만이 아는 事實입니다.

학창시절에 칼을 지녔던 그 친구는 지금도 동창회에서 날 만나면, 도대체 무슨 깡다구로 그랬냐고.. 묻
습니다. (한 때 그 친구는 의정부에서 한 주먹 했다고 합니다.. 지금 그 친구는 내가 제일 예쁜가 봅니
다.. 어쩌다 의정부에 가면 날 제일 환영해 주고.. 선물도 해 주었거든요..^^  물론 그 친구는 돈도 벌
었습니다..)

아!.. 남이 알아주고 아니 알아주곤 간에, 나만의 색깔을 지니고 사는 것...  아주 뿌듯하고 幸福한 일
입니다.  그 때 나는 사회적 孤立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초하여 홀로 외롭다는 것에서 오는 희열을 알았
습니다. 心으로 盲從이란 건 가치 없는 일 같습니다. 세상에 盲從하는 것과 세상에 盲從을 용납하는 것
처럼 딱한 노릇의 自我도 없습니다.

나는 돈 없고 명예도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사는 소시민이지만, 正義를 내세워 불의를 정당화하는 것
에 휘둘리지 아니하고, 또한 비굴하게 제 주장도 없이 칼끝에 허리 굽혀 소신도 채신도 없이 색깔 바꾸
고 되돌아 온 친구들 처럼도 살지 않고자 했습니다.. 살지 않고자 합니다...

계절이 바뀌면 자연도 자연스레 옷을 바꾸어 입습니다. 그러나 못 생겼어도 모과처럼 하늘 향해 堂堂하
게 열매 맺고, 호박처럼 숨어서도 幸福하게 제 색깔 낼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맑은 고을의 한 거리에서 오늘, 김대중 前 대통령의 말을 새겨 나도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行動
하지 않는 良心은 惡의 편이다'... 그러나 거기에 감히 내가 한마디 보태자면, "良心의 中心에 서서 자
기만의 색깔을 가지라"




-'09年 8月 24日, 아이들에게도 이리 살라 할 수 있을까..


                  


『웃기는 국』




맑은 잎새 아침에
우스운 국을 먹었다
아침상 차려주던 아내가 
국이 웃기네.. 
뽀얗게 웃었다

고운 꽃잎 아침에 
우스운 국을 먹었다
아침상 치워주던 아내가
국이 웃겼지..
하얗게 웃었다




-'09年 8月 25日
<된장국이 웃길 리가 있겠는가. 아내의 손길이 이쁜 거지..>


                  


『約束_6』




편협은 나의 전부이다. 
괴팍스럴지언정 나는 그러한 나를 매일 되뇌고 어루만지고 자각하며 산다.
그렇게 해야만이 나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다.

내 사고와 행동 양식의 사회적 성립은 주변과 상대와의 지극히 사소한 몇가지 공통 요소가 교통하여 가능할 뿐 
어차피 그 중심의 절대값은 상대적으로 매우 편협하고 고립된 것에 있다.
나는 그 자체를 존중하며 사랑한다. 
삶을 통해 이 절대값은, 후천적으로 자기계발이나 주변 혹은 상대와의 교류를 통해 보정될 수 있다.
그것이 학습의 과정이다. 다만 나는 이 학습의 한계를 부인하지 않는다. 
내 천부의 것, 그것이 비록 주변 혹은 상대와의 괴리를 포함한 절대값의 절대적 편차, 
즉 편협의 상징일지라도 나는 그러한 나를 사랑한다. 
동시에, 나는 주변과 상대에 관한 절대값을 인정한다. 
다만 신뢰에 인색하고 인지에 미흡할 뿐이다. 나 스스로를 되뇌고 어루만지고 자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이러한 내 사고와 행동의 양식이 주변 혹은 상대에게 있어 어떤 본위에 있는지는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습에는 한계가 있음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사랑이란 나 자신 혹은 주변과 상대의 중심에 존재하는 지극히 지적 요소의 것이다. 
누구의 사고와 행동 양식이든 비록 편향된 절대값의 본질일지언정 존재적인 것이다. 
사랑이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되뇌고 어루만지고 자각하듯이 주변 혹은 상대의 이 본질적 위치의 중심에서
그와 관련한 지적 욕구를 되뇌고 창달해 가는 학습 과정의 인지를 일컫는다.
누차 말하지만 원칙적으로 그 본질의 중심에 선다는 것은 천부의 것이다.
또한 그 학습 과정에서의 열정과, 그 결과로서의 성취는 모방의 투박한 통념일지언정, 
더 알고 덜 알고의 문제일지언정, 매우 숭고하다.
사랑은 자각하고 인지하기 위하여 본질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것이지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러한 사랑을 추구한다.




-'09年 8月 26日, 비맞은 중 중얼거리듯...


                  


『비오는 날의 유리창』




유리창 너머 當身의 잠자는 모습이 너무 예뻐..
손으로 만지려 했지만 참 고와서.. 아름다워서.. 그냥 멀리서 바라만 봤어요..
정 힘들고, 피곤하면 그렇게라도 한번씩 무너지는 당신.. 그래야 살지..

나는 유리窓이 좋아..
透明하고 맑기만 한게 아니고, 가끔은 빨갛게.. 파랗게.. 또 어떤 때는 노랗게도 해주는 유리窓이
이럴 때는 당신을 빨갛게도.. 파랗게도.. 또 저럴 때는 노랗게도 해 주잖아..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이면 유리窓에 당신 얼굴 걸리고
멀리 보이는 아파트 공사장 너머 병풍처럼 늘어진 산과.. 이은 듯 그렇지 않은 듯 들녘 공제선이
당신 어깨 위로 황홀하기도 하고..
그 유리창 손으로 한 번 이쪽으로 닦아 보고, 저쪽으로 지워 보며.. 당신을 그린다는 게..
정말 너무 幸福해서요..



 
-'09年 8月 27日, 비오는 날 창가에서


                  


『窓가에 서서』




하늘 아래 
直立한 父母山이여
뭘 하면 되나요

鐵길 지난
美湖川 頹瀾들이여
어찌 하면 되나요

窓 밖 저만치
팔 끌려 當身 그리 가고
뒷丘陵만 훵한데

손 뻗어 잡지도
부르지도 않는 나는
그냥 웃고만 있지요

窓가에 서서..




-'09年 9月 2日,
 KTX는 잘 달리기도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언제든 휩쓸려 가버릴 삶을 살면서』




삶이란.. 그 자체가 어차피 고행의 길을 걷는 것이고, 투쟁과 같은 거야..
그 일부로서, 사랑이란 걸 한답시며.. 이깟 정도의 아픔에 멍들어 할 필요는 없어.
아픔도 행복이라면 아름답다고 믿으면 돼.. -이하 본문 일부 삭제-





-'09년 9월 8일


                  


『우리 友情은..』




그대 노래 부르는
음정과 박자 나와는 달라
따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대 노래의 음색(音色)이,
음 빛깔이 너무 고와서
반복해 들었답니다.

그대 그림 그리는
구도와 명암 나와는 멀어
다가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대 그림의 채색(彩色)이,
색 여운이 너무 예뻐서
거듭해 보았답니다.


우리 그리 달라도,
멀어도
게서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이만치 예서
듣고
보면서 우리 왔습니다.

오! 강산이 바뀌고
세월이 오랬어도
시간의 성숙(成熟) 만큼
우리 우정(友情)은,
이토록
노래처럼 그림처럼..
아름답습니다.




-'09年 9月 13日
<8年 友情도 아주 조금씩 자라는 것..>


                  


『초가을 동희네』




하루가 멀다하고 꽃향기 전하던 電話도 이제 아니 오고
빨간 모래시계 발에 차여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는데
무엇이 그리운가요.

리트머스 용액에 가슴 풀어 이제는 보일 것도 없고
잠자다 벌떡 일어나 전할 綠煙 고쳐 쓸 인연도 없는데
무엇이 그리운가요.

가을엔 便紙를 쓰고
겨우내 고운 임께 끼워 보낼 꽃잎 나뭇잎 해진 책갈피가 
하나 둘 어루만지며, 보듬어서..
떨어질까 그리운가요.

들판에 머쓱하게 섰던 그린 임 西山에 그늘 어둡고
나락 알알이 도톰 살찌는 어머니 구릉 차분한 해질녘에
아름아름 손 모아 사립짝 밀고 드는데
무엇이 그리운가요.




-'09年 9月 15日, 그리움이 깊으면 곡식이 익는다..


                  


『사랑하니까』




窓門 반틈만 열어도 
당신 노래가 들리구여..
저기 여럿 걸어가는 
코스모스 꽃길에
당신 발소리 또박또박 들려요.

窓門 반틈만 열어도 
당신 그림이 보이구여..
저기 모여 손짓하는 
해바라기 달빛에
당신의 옷소매 또렷또렷 보여요.

행여 당신 노래 멀어지면 
門 조금 더 열고
귀 기울이면 
토닥토닥 멈췄다 다시 걷는 당신의 발소리..

행여 당신 그림 흐려지면 
門 조금 더 열고
밖 내다보면 
아른아른 숨었다 다시 뵈는 당신의 옷소매..




-'09年 9月 16日, 가을에 꼭 사랑하세요.


                  


『널 두고 갈 뻔 했다』




산다는 건 원래 그런거야 하면서
잊은 듯 슬쩍 놔두고 가려 했다

삶이란 본래 그렇고 그런거야 하면서
못본 척 부러 놔두고 가려 했다

나 원래 천부적 사명 안고 나지도
나 본래 존재의 천명 받아 있지도

않았고 그래 잊은 듯 못본 듯 지났는데
그대 기어이 나타나 이리 붙들고

어느 가을 여행의 끝녘 기다리는가
하마터면 널 그냥 두고 갈 뻔 했다




-'09年 10月 1日
<이제부터는 날 더 사랑하련다>


                  


『신뢰와 존중』




당신께서 뜻하시오면
그리 하시오소서
나 죽는 것도 당신 것이요,
사는 것 또한 당신 몫이온데
그저 작은 나의 사랑에
어찌 그리 하오시는지요.

당신께서 뜻하시오면
그리 하시오소서
나 죽는 것도 나의 것이요,
사는 것 또한 나의 탓이온데
그리 크신 당신 사랑에
어찌 그리 못하겠나이까.

아!  날마다 밤마다
당신 그리며 나 이리 살아도,
아니 병 나 죽어도
그저 당신의 뜻 그러하시오면
진정 그리 하시오소서.




-'09年 10月 3日 추석날에..


                  


『혼자서 밥을 먹을 때에는』




먼발치 모퉁이 골목길 지나 빠꼼 보이는
아파트 공사장에는 뻔질나게 인부들이 드나듭니다.
그네들 뭔 이야기 나누든지, 뭔 문제가 있든지
나는 도통 알 수 없고 알 이유도 없습니다.

멀리서 보아 그들은 자신의 일 하고 있을 뿐이고
나는 다만 그중에 한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과 노여움 같이 하고플 뿐입니다.


가을색 흩뿌린 농토길 지나 산뜻 드러난
공사장 한밭집에는 부리나케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그네들 사랑의 말 나누든지, 우정의 말 하든지
나는 도통 알 수 없고 알 이유도 없습니다.

멀리서 보아 그들은 자신의 길 찾고 있을 뿐이고
나는 다만 그중에 한사람,
존경하는 사람의
슬픔과 즐거움 같이 하고플 뿐입니다.




-'09年 10月 8日..喜怒哀樂
  둘째네 학교 특강 나갔다 점심 먹으며..


                  


『너무 힘들 때에는..』




살다보면 못 넘을 것 같던 江도 다 넘었다는 것을 압니다.
지내보니 힘들고 괴롭다던 일도 별 것 아니었다 생각 듭니다.
그래도 언제나
어느 고비에서나, 왜 이리 힘들까 마음 아프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 내 부덕의 소치이고
모든게 내 잘못의 결과이지 하면서도
살 맛이 안나고
입맛도 없고
무책임하게 일에서 훌쩍 떠나 진짜 혼자이고 싶습니다.

살다보면 못 오를 것 같던 山도 다 갔었다는 것을 압니다.
지내보니 나 혼자서 아닌 많은 격려가 있었다는 생각 듭니다.
그래도 언제나
어느 고비에서나, 왜 이리 외로울까 가슴 아프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슬퍼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다 내 역량의 부족이고
모든게 내 능력의 한계이지 하면서도
한번쯤 누군가가
내 앞에 서서
소탈하게 일에서 그저 지금은 꼭 걷어 줬으면 싶습니다.




-'09年 10月 16日
  가끔은 감당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하지 않았던 말』




지금 내 나이의 꼭 半을 살았을 적 이맘때
우리가 만났습니다.
그때 당신은 나를 바보라고 말했었죠.
그래도 나는,
갈색 실 꿴 바늘 하나 꽂아 놓은 당신의 편지..
그 마음.. 책장 속에.. 소중히 간직해 왔습니다.

이제는 색 바랜 당신의 편지에 
흐른 歲月 만큼이나 빨갛게 녹 슨 실과 바늘이
녹아서 하나 되어 있지만
당신이 말했던 바보는 아직도 그대롭니다.

그래서 나는,
갈색 실 꿴 바늘 하나 꽂아 놓은 당신의 마음..
그 사랑.. 가슴 속에.. 죽을 때까지 두겠습니다.




-'09年 10月 19日
<사랑은 그저 오는게 아냐..>


                  


『지금의 너를 믿고 사랑하고 보듬고..』




너 사는 모습 보여 줘서.. 말해 줘서 고맙다..
50년 살아 오면서..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삶이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행복을 찾게 되는 것일테고..
그렇게 티격태격 하며 사는 것 아니겠니..
그래도 살면서.. 가끔 힘이 들 땐.. 친구가 멀리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 내라..

어렸을 적 네가 힘들 때.. 맨날 울고 다녔던 네가.. 
그래도 한번도 자존심 안 꺾일려고.. 나한테 네 맘 온전히 안 보여 줬던 것 다 안다..
50년 살면서.. 
가슴에 묻어 두었던 것, 힘들었던 것, 외롭게 혼자 번민했던 것.. 
아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 나두 참 많다..
그 빛 바랜 옛날 일기 꺼내 읽어 보면.. 참.. 어쩌면 한 없이 유치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지나간 추억들이지만..
그래도.. 그런걸 나름대로 하나의 아름다움, 하나의 소중한 보석으로 지니고 산다..
그게 한번쯤 자신을 돌아 보며 얻는..
힘을 얻는..
나를 지탱하는..
내 가치를 다시 보듬는..
그런게 아닐까..싶다..

너도 그렇잖니..
지금 네가 갖는 현실의 다소 작은 불편도.. 불만도.. 지금까지의 너,  50년 살아 온 너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잖니.
지금의 너를 믿고.. 너를 사랑하고.. 너를 보듬고..
힘 내라.. 친구야!




'09年 10月 21日
<그 자존심 많던 친구도 힘들어, 하소연 할 때가 있구나>


                  


『말은 어려운 거야』




마음이 착찹할 때는
이 생각 저 생각 미치지 못해 거리를 거닐다
혼자 소주를 한다.

술이 술 마시고 
느지막한 시월의 밤 깊어가면
피식 웃기도, 넌덕스레 웃기도 하여
그 좁고 많은 생각을 낙엽 속에 버릴 수 있다.

그러면 다인가.
이튿날 속 쓰리고, 혼미한 정신으로
평생 못 만날 가을 바람 맞닥뜨려 곤욕 치루고
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나서야

그래.. 당신의 말은 다 맞아.
그러나,
다 틀리기도 해.. 혼자 말하고 있다.




-'09年 10月 25日


                  


『이 행복 지키려면』




시월이 가고.. 11월로 들어섰습니다..
작년.. 그렇게도.. 나에게 있어.. 그리도 무겁고, 지긋지긋했던.. 
마치 악령과도 같았던 시월.. 

우울하고..  상실감에 빠져.. 정말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월의 나날들..
오죽했으면 11월이라는  '겨울 문턱'이 그토록 반가웠을까..
어떻게, 칼끝 같은 바람 불고.. 낙엽 휘몰아 쌩 돌아가는 냉냉한 뒷자락조차 숭고하고 존경스럽다고
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찬바람 낙엽 쓸고 간 자리의 11월이.. 
둘러 앉은 낟가리와.. 저 멀리 소담한 감 주렁주렁 열린게.. 뭐 그리 아늑하고 위안이 되었을까마는..
아~!!  밀도 높은 가을 공기에 심취해.. 사회 초년생이 된 느낌으로 책 한 구절 읽어 봅니다..

 *


인생을 두려워하자. 우리의 행복이 아주 작은 것들에 의존해 있고, 그것들은 쉽게 깨질 수도 있다는 것
을 잊지 말자.
행복할 때에는 일상의 작은 소품들을 소중하게 여겨라. 금방 깨질 것처럼 조심스럽게 아끼고 작은 일에
감사하고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것들에 흠뻑 빠져라. 지극한 마음을 다해 그 행복을 지켜 내라.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야 차이를 즐길 수 있고,  마음이 은근해야 그 사랑이 황홀하고, 떨림을 알아야
그 맛이 깊은 것이다. 이것이 행복을 간직하고 음미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때때로 인생이 우리를 겁주더라도 두려움에 지지말자.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
라 그 두려움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다. 두려운 상황에서는 두려움을 느끼되,  마음을 달래 세워 두려움
이 우리를 쓰러뜨리지 않게 하라.
젊음은 단명하기에 아름답고,  인생은 길기에 누구나 뜻을 세워 살고 싶은 삶에 도전해 볼 수 있다. 누
구든 자신의 꽃이 한 번은 필 것이고, 그 때는 그 향기가 진할 것이다. 
                                                   - 구본형(1954~ )의 <세월이 젊음에게>中에서 -




- '09年 11月 1日 < 이 가을 행복을 지켜 내려면.. > 


                  


『회로망 이론(回路網理論)』




사람들이 때로는.. 어떤 행위 귀결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라는 것이 생각 이상의 단순한 것이며,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지극히 당연한 生
의 반쪽이기도 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터득이 주는 미묘한 감정은  토요일과 같은 나의 밀폐된 공간에서 섬광처럼 순식간에 피부에 스
며드는 오한과도 같이 극히 말초적인 것이면서도, 지극히 담담(淡淡)하고 차분한 순리의 길로서,  마치
깊은 산속의 밀도 높은 센물의 빠닥빠닥한 거칠음과 그 정갈하고도 순결하게 느껴지는 정체성..  그 위
를 타고 서서히 저며드는 저녁노을 무렵 죽음의 빛깔과도 같은 것이라 일축해도 전혀 틀림이 없는,  그
런 유형의 것이다.

다만 살아 숨쉬는 나의 주변과 앞으로도 영원할 내 존재에 대한 일말의 자각(自覺) 본능을 위하여 지금
도 나는 이 현실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는 순순한 멍에를 지고 있는 것이다.




-'09年 11月 10日, 우리가 사는 空間은 制限되어 있다..


                  


『더 바랄 게 없다』




琅城골 山城마을 집 누렁이가 
내 모양이다.

양짓녘 너른 마당 처마밑 
비스듬히 눌러 盡終日 졸다가

黃昏 무렵 솟을대문
한잔 술 집주인 삐죽 들어서면

긴꼬리 흔들고 짖어대며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네가.. 천상 나구나.




-'09年 11月 20日 


                  


『이 길은 보랏빛 수채화』




기차 타고 임 그려 가요.. 예전에 이 길은
열아홉살 灰色 그대가 筏橋村 가을 여행 찾았던 길 
내가 오늘 이 길에서 그댈 향해요.

기차 타고 임 보러 가요, 그전에 이 길은
스무댓살 내가 未練의 畵具 들고 주말 서울 오갔던 길
그대 오늘 이 길에서 나를 반겨요.

그간 산다는게 나 스무댓해 이 길 눈 덮혀 지워진 풀섶 지나고
소주 너댓 잔에 손 따스우면
팔 가벼이 짧은 턱 괴고 그대 그리며, 늙어 죽어 오갈 길 보랏빛 새벽 오기를.

油畵는 어떻고요, 水彩畵가 임이예요. 그대 붓의 터치가 
거기 다 담겨 있을테고.. 다만
그대 살아온게 보랏빛 저민 寫眞이라서, 감히 質感과 色感을 볼 수 없지요..라고.

왜 그리 사냐 물으시면 그럴 수 밖에, 그냥 임께서 나랑 살지 않았기 때문일게고
플랫폼 차창 밖 가지런한 하얀 이에.. 얇은 눈꺼풀 어찌나 이쁜지
그저 그대가 보랏빛 이 길에 하얗게 웃고 섰을 밖에요.




-'09年 11月 26日.. <보랏빛 水彩畵의 鑑賞法> 


                  


『정말 긴 편지』
 이 글은 운영상의 이유로 삭제 하였습니다..


                  


『굿』




아무도 내 슬픈 事緣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슬플 일은 왜 했을까 쳐다 보면서 혀끝만 차고 있는게 느껴질 뿐이다.

저 푸닥거리 속에는 내 이야기도 있고
간혹 큰소리가 바람 타고 귓가에 미칠 때에는
허한 가슴 오려 털털 털어 넘겨주고 어디 오늘 실컷 울어보자 하고 싶기도,
뒷짐 지고 슬리퍼 치적치적 끌면서 역성들어 보이다가 혹시 내 事緣은 없나 귀 기울이지만

아무도 내 슬픈 辭緣을 전하는 사람이 없다.
저렇게 아플 일은 왜 왔을까 흘끗 보면서 손사래 치고 있는게 그려질 뿐이다.

저 웅성거림 속에는 내 이야기도 있고
간혹 징소리가 철창 넘어 귓가에 스밀 때에는
갖혀 살아 온 지난 세월 모두 발가벗겨 어디 한번 해보자 끝장 내고 싶기도,
팔짱 끼고 먼 하늘 커튼 걷고 고함 크게 내질러 보이다가 혹시 내 辭緣은 없나 귀 기울이지만




-'09年 12月 11日,  겨울비가 이틀째 내렸다..


                  


『빛의 특성』




가슴이 차가운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은 가슴이 차다.
저녁에
하얀 물결 차디찬 호수에 큰 배 하나 잠기는 것 보았다.

심장이 얼은 사람은 님을 그릴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은 심장이 얼어 있다.
밤에
잿빛 설원의 어두운 산속에 집채 하나 묻히는 것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포근한 가슴을 갖고 있다.
가슴이 포근한 사람은 일을 한다.
새벽에 
진보라 밤새 쉬고 간 실개천 숨소리 하나 둘 헤아리며.

님을 그리는 사람은 따뜻한 심장을 갖고 있다.
심장이 따뜻한 사람은 일을 한다.
아침에
자주빛 영롱한 힘찬 설상에 솔잎 하나 둘 하마 안으며.




-'09年 12月 12日 창가에 볕드는 시간에..


                  


『그들 사는 법』




그렇게 싸웠어도
하룻밤 자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보고 싶고
그리운 

그런 사랑이잖아..

그 많던 투정도
한번 만나 얼굴 보고
손 만지고 나면
모든게 눈녹 듯
사라질

그런 사랑이잖아..




-'09年 12月 16日
-본문 일부 삭제-


                  


『그래, 겨울답구나』




어젯밤 눈꽃 街路燈 불빛 곱던 饗宴도 
밤새 어느덧 이 아침에
마른 눈발 휘몰아 여린 살갗 스치는게
차마 가슴 속 내 님 아니랄까 봐.

未練의 스무댓살 아문 傷處와
純粹 二十五年 기다림 끝 邂逅도
올 가을 아련한 幸福에 한낱 生의 一瞬이려나.

또 하나 招魂 읽을 時 오더라도
내 살을 날 恨 되어 죽지 않아 바랄 뿐...
선채로 이 겨울에 돌이 되어도
丁寧 내 님은 영원히 純粹합니다.




-'09年 12月 18日 <다 感謝합니다>


                  


『이제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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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앓았던 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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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山行의 幸福』




내가 山을 오르는 이유는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잔情 부족하고 이기적(利己的)인 나,  말하지 않아도 내 속 읽어내고 어떤 불손(不遜)도 야욕(野
慾)도 다 걷어채는 山의 카리스마에 짓눌려서이기 때문이다. 늘 올려다 볼 수 밖에 없는 山의 위엄(威
嚴)은 나에게 있어 결코 사랑의 대상은 아니며,  늘 아버지와 같이 복종(服從)해야만 할 절대(絶對)의
존재이다.

나에게 있어 山은 오래전부터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군시절 작전장교로서 전술에 실패해 질책(叱責) 당할 때마다  눈썹과 콧수염에 고드름 달고  팔공산에
뛰어 올라야 했고, 그저 제자리 서있기도 힘든 거센 바람 속에서도 부대장이 부르면 뛰어 올라가 쪼인
트 까였던 곳이 바로 山이다. 병풍에 그려진 금강산도, TV 시작 시간에 애국가 울려 퍼지는 설악산 가
을 절경마저도 내게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만 엄한 山일 뿐이었다. 내 아버지 얼굴처럼...

크리스마스인 오늘도 나는, 일찍 회사 업무를 수습하고 뛰는 듯 속리산을 향했다.

속리산 등산 코스는 다양하지만 뛰다시피 오르면 1시간에도 오를 수 있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코스가
하나 있다. 숨은 턱에 차 폭발하듯 터지고 입안에서 단내가 나와 정신은 마치 일상(日常)의 그 흔하디
흔한 슬픔도 노여움도 기쁨도 즐거움조차도 하얀 노을에 벗겨 던져지고 가슴은 투명해져서  오로지 발
걸음 하나 하나와 그저 위로 향한 절대 복종심에 의지해야 만 할 때 쯤이면  일순간 그 답답했던 하늘
도 통쾌하게 터지고 바람은 순백으로 환해지고 세상이 맑고 밝아지는  절정의 한 순간을 만날 수 있기
에, 그래서 나는 그 수직 오름길을 좋아한다.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한 일기예보가 나를 흥분하게 했다. 잘 하면 몇년전 소백산 山行에서 만났던 그
세찬 눈보라와 거센 칼바람,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그 벅찼던 눈길 山行을 혹시 또 만나 볼 수도 있으
리라는 기대와 옛날 내 아버지의 냉정(冷靜)함과 단호(斷乎)함처럼 겨울 山行에 비라도 맞으면서 그걸
마치 진정한 사랑이라 말씀하셨을 두렵기만 한 아버지의 꾸짖음 아래 흐르는 빗길을 추적추적 오를 수
도 있지 않을까하는 설레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눈도 오지 않았다.
아버지 향해 눈 한번 마주쳐 보지도 못하고 살아온 나의 삶이라는 것의 형태는  속리산 그 오름길에서
처럼 오로지 나는 服從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山은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늘 하셨던 것처럼 오라,
오라고만 부를 뿐 흥분과 설레임은 그저 욕심(欲心)이었을까.. 그런 바램을 뒤로 한 채  비 오지 않은
평온(平穩)함과 눈 오지 않은 포근함만이 나를 응대해 주었다.

언제 그런 인자(仁慈)함과 포용력(包容力)이 있었는가..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져  휘몰아 드는 바람결
에 눈물을 훔쳤다. 아! 이게 뭐란 말인가.. 오늘과 같은 따뜻한 山은 애시당초(當初)에 바라지도 않는
다. 무엇보다 나는 山에 대해 원망하거나 실망해 할 수 없다. 다만 山은 아버지처럼 근엄(謹嚴)하면서
도 이끌리듯 찾아가는 나에게 언제나처럼 턱에 찬 숨가쁨과 입안의 단내를 주면 그것으로 좋고,  탄식
처럼 흘러나오는 그 희로애락의 일상을 하얗게 지우고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일순(一瞬)이라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내 아버지 만큼만의 차고 간결한 사랑이라도 준다면 나는 너무도 감사(感謝)할 따름이
다.

그래서 나는 가끔 속리산의 수직 오름길을 오른다. 아버지가 살다 가신 이 원인 모를 삶의 이유(理由)
와, 또한 아쉬움과 미련(未練)의 죽음 앞에서 체념(諦念)으로 가신  이 세상 살아 계셨을 적 아버지의
그 눈빛과도 같은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말이다..




-'09年 12月 25日
 <聖誕節에 登山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頂上에 올라 숨 고르고 땀 닦으며 뜨거운 커피 한잔과 배춧국
  에 밥 말아 먹을 때의 幸福을 모르기 때문이다>


                  


『산다라고 하는 것』




눈 내리고.. 녹은 눈 얼어 붙어서.. 걷는 사람의 발 밑에.. 빠득빠득 얼음 밟는 소리가 나요.
산다라고 하는 것이란.. 

이토록 차갑고..
딱딱하고 
시리고.. 아프고 예리한 추위라도 발바닥 밑으로부터 느끼며
행복하다고..말하면 되요..

그리고 찬바람 휘몰아 내 여린 볼 스쳐 지나가면.. 아! 겨울이구나.. 차다.. 볼 어루만지면서..
이게 사랑이지요..하며 웃으면 되요..^^




-'09年 12月 28日 <내년에는 다시 살아야...>


                  


『나와 같은 사랑』




우리집에는 20年전부터 나와 함께 살아 온 나무들이 있다.  그중에 벤자민과 관음죽은 천장에 닿을 만
큼 너무 커버려서, 아내는.. 보기에 흉할 뿐만 아니라 겨울이면 힘들게 들여 놓고 봄이면 끙끙대며 내
어 놓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굳이 내년에는 내다 버리자고 한다.

근데, 난 절대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잔情이 부족한 나이지만, 사랑한다 말은 않지만, 내가 걔들
을 얼마나 사랑하고 예뻐하는지 잘 몰라서 하는 말일게다.

처음 손뼘만했던 걔들을 분양 받아와 해를 걸러가며 분갈이 해주고, 때 맞춰 물주고,  매일 아침에 일
어나 들여다 보며 잘 잤냐고 인사하고.. 사람으로 치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걔들 만큼 情들 수도 없었
을 것이다. 당연히 20年간 나 사는 거, 내가 생각하는 거, 누구보다 더 잘 알 애들일거구 말이다.  무
엇보다 걔들은, 늘 푸르듯이 내가 버리기 전에는 결코 날 버리지 않을 것이고 나 역시 걔들을 죽을 때
까지 데리고 살 것이다.

그리고 말이다, 요 얼마전부터는 蘭 한녀석이 꽃대를 쑥 내밀더니 드디어 꽃을 피웠다. 얼마나 대견하
고, 자랑스럽고, 뿌듯한지 정말 모르겠다. 그런 느낌, 기분, 마치 가진자의 幸福 같은 거.. 그대가 알
려나 모르겠다.  고무나무는 너무 웃자라 집안에서 키우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집에서는 조
그맣고 짝달막하게 제 몫 단단히 하고 있고,  선인장들도 김장철이 되거나 겨울 맞이가 시작되면 예기
치 않게도 어찌 그리 화려하고 고운 빛깔의 꽃을 빨갛게 피워주는지, 그 기쁨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
다.

나는 비좁은 우리집에서  평소 잔情도 없으며,  사랑한다는 말 한번도 없는 내가 걔들과 함께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어떤 미묘한 수준의 담담함이 담긴, 일종의 깊은 삶의 幸福을 느낀다.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랑도, 友情도 그렇게 하고 싶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날, 지난 시간을 돌
아다 보면서 서로 마주 보고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을, 멋진 友情을 가꾸고 싶
다.

20年을 나와 함께 살아 온 관음목과 벤자민, 그리고 고무나무와도, 결코 약속은 한 적 없지만 내가 걔
들과 만나 사랑 표현 제대로 한번 하지 못했지만, 한번도 물 안주어 말라 비틀어지게 한 적 없으며 한
번도 겨울에 찬바람 맞혀 여린 잎 시들게 한 적 없게 했듯이,  나는 우리의 사랑이, 友情이, 진정으로
죽을 때까지 마르지 않게, 시들지 않게, 물주고 분갈이 하면서, 겨울에는 들여 놓고,  봄에는 애써 내
어 놓으며... 보면서 느끼면서 대화하면서... 보다 성숙하고 뿌듯하고 자랑스럽고 대견한 결정체로 昇
華될 수 있도록, 오랫동안 그렇게 하며 함께 살고 싶다.

그대가 그런 삶, 그런 나와 같은 사랑, 友情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09年 12月 29日 <우리집 蘭이 꽃을 피웠다>


                  


『내 가슴에 첫눈 내리고』




눈이 그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모든게 靜止하면 좋겠다. 
永遠히 서버리면 좋겠다.

疏通도 交通도.. 어찌 所用 있을까.
이 눈오는 아름다운 날에 그대 없는데
가면 뭘 어쩔거며
온들 무엇 할 수 있을까.

그저 밤새도록 눈 더 오면 좋겠다.
이렇게 죄다 갇혀서 온통 서버리면 좋겠다.
차라리 그대 없는게 좋겠다.




-'10年 1月 4日 새해의 시작
 <내 平生 가장 아름다운 눈>


                  


『우리는 한배를 탔다』




25年前  내가 자란 고향 마을에서 있었던 한 철도 건널목 교통事故가 준 示唆點이 하나 있다.  事故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경찰 2명이 탄 찝차가 건널목 일단정지 규칙을 어기고 횡단하다가 기차에 부딪
친 것.. 그리고 그 2名의 경찰중 1名은 죽고 1名은 거뜬하게 살았다는 것..

그런데 그 사고의 經緯를 들여다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事故를 들여다
보니, 사고를 낸 사람은 운전자인데 정작 운전을 잘못한 운전자는 멀쩡히 살아났고 그 옆에 앉아 있던
선탑자가 애꿎게 죽었다는 것이다. 선탑자는 기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재빨리 뛰어 내렸는데 하필이
면 기차에 부딪쳐 밀려가던 자신들의 찝차에 깔렸기 때문이고,  반면에 운전자는 뛰어 내릴 겨를도 없
이 그저 핸들만 꽉 붙잡고 버텼는데.. 다행히 끌려가던 찝차가 전복되지 않아 정지하였기 때문이다.

준법의 모범을 보여야 했을 경찰이 그런 事故를 낸 것 자체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인데.. 잘못은 없지만
빨리 뛰어 내린 사람은 죽고,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둔하게 한자리에서 버틴 사람은 살았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살다 보니 이러한 비슷한 일들이 우리의 日常에 참 많이 있다는 것이고..  한번쯤은 생각해 봐
도 될 示唆點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보통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意氣投合하여 어떤 일을 함께 圖謀하는 일이 있다. 그런
데 시작할 때와 달리 어떤 긍정적 혹은 부정적 狀況이 到來하게 되면 그중 一員이 처음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게 되거나 중도에 포기하여 길을 달리 하려는 사람이 發生하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한결
같이 '우리는 한배를 탔다.. 죽든 살든 함께 가야한다'라는 말로 서로를 독려하게 된다.  한배를 탔다
는 것은 무었인가?..  뛰어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뛰어 내려 봤자 겨우 물속이라는 것.. 어차피 물
속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는 狀況이라면  한배에 탄 사람들끼리 협력해서 어떻게든 슬기롭게 그 狀況
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빠른 判斷과 決斷力은 현대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德望중 하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잘잘못과 전혀
관련 없이 섣부른 誤判이 주는 일의 그르침은 번번히 우리에게 道德과 倫理, 定義와 眞理의 위에서 사
는 우리들을 매우 안타깝게 하기도 한다.




-'10年 1月 10日 <함께 하는 사람을 믿자.. 그것이 길이다>


                  


『꽃이 핀다』




이제.. 대체로 어수선한 한해의 끝과 시작점을 보내고.. 통상과 같은 일의 틀 속에 들어왔다.
날씨가 어제보다 추워졌고.. 바람이 많이 분다.
파란 하늘에 뜬 하얀 구름이 어디 한번 날 따라와 보렴.. 하는 듯 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주위의 여건과 상황에 지난 몇해처럼 그렇게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올해부터는 따라가는 삶이 아닌, 진정한 내 길.. 내 패이스로 걷는 삶을 만들고자 한다.

책장에 꽂아두지 않고.. 늘 손에 닿을 수 있도록 옆에 두었던 책들을.. 이제는.. 책장 속에 넣으련다.
그 전에.. 
당신이 그리운 건 내게서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이정하 외>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곽재구 첫눈 오는날>中
내 가슴 속에 보랏빛 향기 짙은 아이리스꽃 가득 하다..




-'10年 1月 13日 <다시 시작한다> 


                  


『무제』




世上에 사람이 사는데에 있어
不連續의 槪念은 없다고 
나는 늘 말한다.

하지만 아침에 잠에서 깨어..
눈을  뜨는  매 순간 마다 
섬뜩섬뜩  느끼는..  
그   서먹함과  낯설음은  
과연  뭘까.. 

아주 가끔 나는..
이 차디찬 내 가슴을 
그저 한 순간에 
내동댕이쳐 버리고 싶다.

마치 그 不連續인 것과도 같은 
그 잠..
아니, 차라리 永遠한 잠이라면 
더 받아들이기 낫지 않을까..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10年 1月 14日  


                  


『어제밤 우리집 풍경』




선혜와 동현이가 닌텐도 위 스포츠(Wii Sports)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무슨 할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마치 연인들 사이처럼 소곤소곤.. 히히덕거립
니다.

"동현아! 너 입학하면 이 누나가 군기 확실히 잡아 줄테니 각오해라. 알았지?.." 선혜가 말하자,
"누나,  지난번에 캐드(CAD) 숙제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펑크 났을건데 그 은혜 벌써 잊었어?.." 동
현이가 웃으며 대꾸합니다.
"아! 맞다..  그럼 내가 우리 과 선배,후배,그리고 교수님들께 너 확실하게 소개시켜 줄께.. 자랑스런
내 동생아!.." 선혜가 받아줍니다..

그동안 학교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장학금을 받았던 경험이 많기에.. 아이들은 장학금의 매력을
잘 압니다. 어떻게 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자기들끼리 격론을 벌립니다..이번학기에 장
학금을 받지 못한 선혜의 아쉬운 토로와, 새로운 학교 생활을 시작할 동현이의 각오 섞인 눈빛이 눈에
들어옵니다.

식탁에서 책을 읽다 이를 지켜보던 애들 엄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 오릅니다.

이번에 4학년이 되는 선혜와.. 누나와 같은 학교의 같은 과에 입학하게 될 동현이가 이제 다 컸나봅니
다. 

회사 회식에서 소주 한잔 걸치고 집에 들어서는 아빠에게  선혜가 와서 뽀뽀해 달라고 합니다. 아빠는
다 큰 딸의 볼에 뽀뽀를 해줍니다.
입학을 앞두고  헬쓰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체력을 키우고 있는 동현이가 며칠새에 부쩍 커진
팔뚝의 알통을 꺼내어 아빠에게 자랑을 합니다.  아빠는 큰 소리로 대견하다고 칭찬하고 장가 가도 되
겠다고 말해 줍니다.

"알통만 크면 뭐하냐?.. 고추도 커져야지.. 너 고추 한번 보여줘 봐.."  하면서 선혜가 동현이에게 화
살을 날립니다. 
"누나! 이건 신성불가침이야.. 보고 싶으면 나 잘 때 보시든지.."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모르지만
..? 아무튼 웃깁니다.

아빠가 치킨 한마리 시켜줍니다.
아이들이 그 늦은 시간에도 치킨 한마리를 다 먹어 치웁니다. 
아빠와 엄마도 산삼에 담가 둔 소주 한잔 나누어 건배를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애들은 무슨 할 말들이 그리 많은지 연신 히히낙낙입니다.

아이 엄마가 모든 시름 다 덜은 얼굴로 빙그레 웃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귀밑 흰머리가 눈에 거슬린다
고 한마디 합니다. 아빠가 겸연쩍스럽게 웃습니다.




-'10年 1月 15日.


                  


『지금의 내 모습은..』




새로운 월요일.. 벌써 1월도 후딱.. 중순을 넘기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올해도 벌써 무려 반을 무감각으로 지내 온 느낌이다..
아! 정신을 차려야겠네..

오로지 앞만 보고 살았던 30代를 거쳐.. 
촉수의 감각을 모두 떼어버리고 스스로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며 살았던 나의 40代..
그리고.. 
잃었던 감각을 되찾는답시며.. 
그 고통스럽고 힘들게 지내 온 최근 2년간 나의 50代 문턱..

그런데 과연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10年 1月 18日


                  


『海棠花』




당신께서 여민 저고리는 무슨 색일른지요
분홍일까요
흰색일까
아니면  진홍색일른지요
아침에 점심 저녁 시시각각 소담한 당신 매무새를요

당신께서 감춘 허리춤엔 어떤 꽃일른지요
고울까요
아픈꽃일까
아니면 슬픈꽃일른지요
바위에 등대 나무 여기저기 향긋한 당신 꽃향기를요

당신께서 내 가슴에
찔레꽃 때죽나무 산수유 자운영꽃 사과꽃 연꽃 민들레 배꽃 산당화
보일리 없고
해당화 붉은빛은 슬픈 바다로 보내었으니
나 오직 보라색 아이리스꽃 하나 피울 수 밖에요




-'10年 1月 17日 
 <江陵 鏡浦臺海水浴場에서>


                  


『海風』




바다여!
그대 넓다던 가슴은 무슨 色인가
푸른 色인가
흰色인가
아니면  붉은色인가
아침 점심 저녁 시시각각 변하는 그대 가슴은

바람아!
그대 내밀은 손길은 어떤 感일까
고운 손일까
차가울까
아니면 매몰차울까
서울 강릉 청주 여기저기 펼쳐진 그대 손길은




-'10年 1月 17日 
 <江陵 鏡浦臺海水浴場에서>


                  


『겨울비 내리는 출근길의 일탈』




어둠이 채 가지지 않은 도시의 거리.. 
뽀얗게 짙은 안개에 점령 당한 가로수길에.. 오늘은.. 겨울비가 내립니다..

허공에 걸린 빨간불에 멈춰서 파란불 따라 내닫는 거리의 말 없는 자동차들과..  겨울비에 젖어 점점이
뿌려지는 헤드라이트 전등들..  잔뜩 고개 숙이고 발끝만 겨우 비추는 아스라한 네온등 뒤로..  허락도
없이 들이닥치는 색깔 없는 앙상한 가지의 가로수 행렬들이..
늘 다녀서.. 매일같이 똑같던 출근길에서.. 오늘.. 이렇게도 이국적이고 생소하고.. 차라리 신비스럽게
내게 와 닿는 건.. 아마도 이같은 분위기가 혹시 내 정서와 많이 다르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것 또한 일종의 일탈과 같은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그런 기쁨의 하나는 혹시 되지 않을른지요..

살면서.. 우리의 삶이.. 신선하게.. 오히려 충격적이라 할 만한 이러한 일탈의 기쁨으로.. 때로 우리의
삶을 자극하고.. 감성을 일으키게 하고..
그렇게 장식 되어 질 수 있는 행운이 종종 있었으면 합니다..




-'10年 1月 20日 <비오고 안개끼고 어둠이 걷히지 않은 청주 가로수길 출근길에서>


                  


『설렘』




또 다시 날씨가 추워졌고, 바람이 아주 빠르게 흘러갑니다.
저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와 하얀 눈을 내려 주려나 봅니다..^^ 
얼마전까지는 눈이 오면 西海岸으로 달려가 눈오는 날의 水平線을 봐야겠다고 했고.. 
끝내 그렇게는 하지 못할 걸 너무도 잘 알면서 굳이 그러겠다고 했을겁니다.

지금은.. 저기 저렇게 흘러가는 구름과 번뜩번뜩 새어 나오는 햇빛을 바라보며 하얗게 웃고만 있습니다.
그 뻔한 생각과 그 當然한 狀況에 언제까지 그렇게 憐憫할 것인가..
그렇게 말하면서...

내일.. 아마 오늘부터라도.. 어쩌면 눈이 내릴거라고 합니다.
山行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 엄하디 엄하고 무뚝뚝한 山이 눈을 안고 하얗게 변하면 얼마나 포근하고 아름다운 품이 될까..
한발 한발 디디면서, 혹시 매몰차고 세찬 바람에 얼굴을 맞아 비록 눈물 핑 돌더라도 얼마나 幸福할까...
아버지의 감정 섞인 꾸짖음과 어머니의 애뜻한 속삭임을 긴 밤 뒤로 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堂堂하게 나 서 있음 보여 줄 수 있는 뿌듯한 瞬間을 그립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너무 설렙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山을 생각하고.. 그래서 설렙니다...




-'10年 1月 22日 <長城 白巖山 山行을 앞두고>


                  


『삶의 오직 그리움』




벌교포대의 그해 겨울에는 하얀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주로 나는 비오큐 담장 기울어진 水銀燈 밑에서
그녀를 그렸다. 구례 곡성을 거쳐 서울에서 불어 왔을 세찬 바람이 나의 뚫린 가슴을 메워주면 어쩌면
죽는 날까지도 뭔지 몰라야 했을 그것을 두고 나는 사랑이려니 했다.

그해 그녀는 '서울 가서 연락드릴께요..'라는 便紙 한장 남기고 내게서 떠나갔다. 희뿌연 東녘을 뒤로
털털 거리며 달렸던 벌교의 통근 트럭은 '밤이란 원래 그런거야' 라며 늘 보던 얼굴과 늘 대하던 나뭇
가지 틈으로 킬킬거리는 通念의 빈정거림으로 내 日常을 헝클어 놓았지만, 어쩌면 앞으로도 永遠히 내 
삶의 오직 그리움이 될 그리움이 되어 나를 지탱하게 해줘 왔다.

참으로 歲月이 많이 흐른 지금에도 나는, 보랏빛 그녀 이름 눈 위에 새겨 놓고 기다릴 때마다 어김 없
이 세차게 바람 몰고 와 쓸어가 버렸던 벌교의 눈보라를 記憶하곤 하고 있으며,  그녀 이름 쓰면 지우
고  또 쓰면 지우고 쓰고 또 쓰기를 거듭했던  그해 겨울의 비스듬한 비오큐 담장 밑 水銀燈을 그리곤 
한다.  

아! 이제는 眞正 놓을 수 없는 그녀에의 이 그리움이 어제밤 우리집 앞 네온등 아래로 흘렀던 밤빛 寒
氣처럼 아직도 내게는 외로움과 가슴의 통증을 가져다 주고 있지만, 꿈에서도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녀
의 예쁜 입과 고운 손이 던져준  당찬 波長으로써 내 귓가에 죽을 때까지 맴돌 '서울 가서 연락드릴께
요..'했던 그 나지막한 音聲은 이제부터라도 내가 더욱 살아 갈 내 삶의 한가닥 사랑의 실타래로서 生
의 한 動力이 되어 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10年 1月 26日 <올겨울에도 그해처럼 눈이 제법 왔다>


                  


『웃기는 사랑』




당신(當身)은 나 읽을 때
시간이 없지
읽으려고 않지
당신은 나 속독(速讀)으로 읽을 뿐
정독(精讀)이란 없지
그러고도 당신은 나를 좋아한다네
참 웃기는 당신이지

당신(當身)은 나 아는 것
하나도 없지
알려고도 않지
당신은 나 직관(直觀)으로 대할 뿐
껍데기만 알지
그러고도 당신은 나를 그려한다네
참 웃기는 당신이지


아! 허공(虛空)에 부르짖는 
내 웃기는 사랑...




-'10年 1月 29日 <날씨 흐림>


                  


『내 아내의 두통』




세상에 둘도 없는 아내가 벌써 7년째 많이 아프다..
병명은 없다.. 그저 머리가 아플뿐이다. 
머리가 아플때는..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삶의 의욕을 모두 상실하여 아무 활
동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아프다.
아내는 약간의 무통증이 있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감기도 한번 걸린 적 없고.. 어떤 병도 앓은 적 없다. 
그런 아내에게의 두통은 정말 가혹할 정도로 그 통증이 매우 크다.

다 해봤다..
일반 내과에서는 아무런 원인을 찾지 못한다.
그저 초음파다, CT다 MRI다 찍어 보았지만 전혀 이상 없다는 소견이다.
요즘 아내는 통증을 견디다 못해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처방 받은 특별한 진통제로 버티고 있다. 아프기 
시작한 후에는 진통제도 소용 없다. 하루 종일 죽은 사람처럼 힘 없이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약간의 두통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 진통제를 먹으면 그날은 잘 넘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그 가정의학과 의사의 소견인데.. 진통제를 자꾸 먹으면 습관성이 되서 안좋으니  가능한 한 먹
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먹지 않고는 그 고통으로 하루를 버티기 어려운데 어쩌란 말인가..  어
떤 날은 두봉지나 먹어야 버틴다.

물론, 다른 처방도 받아 봤다.
한방에서는 위장과 장이 나쁘다고도 하고, 위장과 복부 사이에 어혈이 많아서 그렇다고도 하고..  심장
이 나빠서 그렇다고도 한다. 아내는 몸이 차다. 결혼 직후부터도 우리는 같은 이불을 쓰지 못했다.  나
는 발에서 열이 많이 나고, 아내는 추워서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켜고 잘 때가 많았다. 겨울에는 당연히
양말까지 신어야 잔다.. 물론 찜질팩은 우리집 생활 필수품중 가장 사랑 받는 애용품의 하나다.. 
어혈을 줄이는 침과 약을 처방 받기도 했고.. 해당하는 모든 한방 치료는 서울의 모 유명 한방병원까지
가서 다 받아 봤으며 청주의 왠만한 병원은 다 가봤다..
아내는 어혈을 뺀다며 스스로 침을 배워 침을 놓기도 했고.. 딸아이를 시켜 매일 같이 사혈침을 온몸에
찌르며 산다. 호전은 없지만.. 아무튼 혈액순환, 특히 모세혈관계의 장애라고 들 이야기 하므로...

민간 치료로서..어혈 주무르기, 찜질, 사혈, 부황, 반신욕, 족욕..안해 본 것이 없는 듯 하다.. 그러나 
모두 소용 없다.  최근에는 식이요법을 포함하는 체질개선, 다이어트.. 그것도 한다.
그리고 어혈을 풀거나 혈액 순환에 좋다는 한약재를 끓여서 음료수로,  차로,  약으로 먹고 산다. 그런
식의 술도 먹는다. 우리는..
그런데 도대체가 그래도 호전은 없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하루에 3~4시간씩 등산을 하고 있고..
골프도 하고.. 요즘엔 헬쓰클럽에 가서 런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다.  남들은 내 아내의 어디에서 살 뺄
데가 있냐고 하지만 복부에는 적지 않은 지방층이 있다.. 그것을 다 빼야 한다고 목표를 하고 있는데..
조금 열심히 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이 나서 쉬어야만 하게 되고.. 그럼 또 다시 살이 찐다.
그냥 늘 그런 식이다..

신경정신과에서는 우울증 증세도 있고.. 조울증 증세도 있다며 특별한 설명도 없이 약을 준다. 그 약을
처음 먹으면 2~3일간 아내는 하루 종일 잠을 잔다. 한없이 잠만 온다는 것이다. 그 약을 먹으면 통증은
좀 덜하긴 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약 역시 아내는 지속해서 먹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왜 신경정신과
의사는 그 약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는걸까?.. 신경정신과의 견해로는 교감인지 부교감인지.. 아무튼
신경계의 불균형이라고 하며 약을 준다. 메스컴에서는 신경정신과의 우울증 약은 지속해 먹어도 괜찮다
는 것 같기는 한데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도 모를 약을 설명도 없이 마냥 처방해 준다..  그래서 아내는
중간에 병원 왕래를 중단했다. 그런데 그 약을 끊으면 사람이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우울하면 죽고 싶
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약을 먹지 않고 운동을 열심히 해서 겨우 견뎌 내면 또 두통이 사람을
지배한다. 물론 그 약을 먹을 때도 두통은 있다. 다소 횟수가 줄을 뿐이다.
그러니까 아내는 어떻게 해야 자기가 살 수 있는지 답답할 뿐이고.. 어떤 때는 혼자서 많이 운다. 퇴근
해서 집에 들어가면 아내는 혼자 울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정말 같이 죽고 싶기도 한다.

한때 나는 아내의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핀잔을 했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
야기 하면 열이면 일곱은 다 정신력의 문제로 치부한다. 근데.. 난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
내가 너무 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며.. 자기 가슴 속에 품은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고.. 우리집
에 시집 와서 장손으로서,맞며느리로서 고생하고 힘든 것 맞다. 더러 그것을 한방에서는 홧병이라고 한
다. 그래서 홧병도 맞다. 그런데 그것이 정신력이 약해서는 절대 아니다.  지금 나의 아내는 남편인 내
가 무조건 이해해 주고 거들어주고 격려해 주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견해 차이와 성격의 문제
로 가끔 다툰 적은 있지만 크게 싸운 적이 없다. 아내가 일방적으로 착하고 모든 것을 삭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아내의 성격과 행동 양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종용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
면 하고.. 불만 있으면 밖으로 표출할 것이며 때때로 소리도 지르라고 하고 있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요즘 아내는 좀 바뀌었다. 아닌게 아니라 자기 감정의 표출을 한다. 자기가 살기 위
해서.. 근데 너무 어린아이 수준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더러 언성을 올리며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나
는 그런 아내를 이해한다. 그리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나에게 풀었으면 한
다. 물론 나는 감내할 수 있다.

한때는 산속에 들어가 살자고도 했다. 한때는 산장 같은 데에 가서 몇달이고 살다 오라고도 했다. 
그러나 한창 아이들 뒷바라지가 필요할 때고 남편인 나 역시 한창 열심히 일해야 할 싯점에  아내의 결
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듯 하다. 뭐 시험 삼아 한두달 정도씩 실천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것이 꼭 도
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도 서지 않는다.
문제는 벌써 시간이 꽤 흐르고 있고.. 호전은 없으며.. 대책도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에서도 더 이상 조언 하지 않는다.  해볼 것 다 해
봤는데.. 뭘 더 해 볼게 있단 말인가..
두통을 많이 앓으면 뇌의 손상도 빨리 와서,  치매 등 노환도 빨리 올 수 있을 거라는 메스컴에서의 정
보들을 접할 때마다 나와 아내는 가슴이 매우 아프고 절망적이다.  어떤 정형외과에서는 허리나 골반뼈
등의 문제로 그럴 수 있으니 거액을 들여 교정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작년에 아내와 우리 가족이 쓴 의
료비는 가히 어마어마하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는가 하는 희망이며 방법이다..

정말 내 아내는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도대체 그 착하고 예쁘고 여린 아내의 가슴을 왜 그렇게 망
가뜨려 놓았는가.. 나는 참으로 큰 죄인인가 싶다...


**


<혹시 이글을 읽으신 후 도움 주실 분 계시면..좋은 의견 주십시오..>
[ 여기: http://www.bandy.pe.kr/bbs/zboard.php?id=kmyca6 ] 
다만.. 종교적인 접근은 삼가해 주십시오. 참고적으로, 아내는 카톨릭이며 아녜스라는 세례명입니다.

☞기쁜 소식 하나:.. 최근 아내는 '지치(芝草라고도 한다)'라는 한약재를 갈아서 막걸리와 함께 복용하
고 있습니다.  이것을 먹고 나서부터 몸에서 열이 나고 땀도 나기 시작했다고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모릅
니다..  아내는 평소 땀이란 걸 모릅니다. 몸속의 노폐물이 땀을 통해 배출 되어야 한는데 그렇지 못해 
문제라는 진단도 있고.. 위장 또는 뱃속의 딱딱한 덩어리가 문제라는 진단도 있는 만큼.. 이 지치의 복
용으로 좋은 효험을 보고.. 아내가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10年 1月 29日 <http://www.bandy.pe.kr 홈페이지 관리자 드림>


                  


『겨울江』




두말없이 웃고만 살자.
男便으로서
親舊로서
戀人으로서도
그저 사랑일진데
허허허 다 품고서 살자.

토 달지 말고 웃고만 살자.
痛症도
屈辱感도
그리움조차도
그깟 自尊心인데
하하하 다 버리고 살자.




-'10年 2月 7日
<축령山 扁柏나무숲에서>


                  


『내 가슴에 안개비』




안개비가 내리고 있어요.
이 비는.. 창 밖의 산에도 내리고 들에도 내리고..
그리고 내 가슴 속에도 내리고 있어요.

장성에 농가주택 하나를 살까 검토중이에요..
아무래도 아내는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도록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고..
나도 주말에는 그런 곳에서 아내와 함께 된장국 끓여 들나물에 보리밥 비벼 먹든지 하고 싶어요.
국수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내가 떼 쓰면 빨갛고 매운 비빔면을 잘 만들어 주거든요...
둘이 얼굴 쳐다 보면서 입에 발린 고추장,  손으로 쓰윽 닦아주면 좋잖아요.

내가 사랑하는 당신만큼이나  현실을 사랑하고.. 행복을 사랑하면서 
더욱 그리운 당신의 나로 살아가겠죠.
내 가슴에 뽀얀 안개비 내리고, 아마 많이 행복할테죠...




-'10年 2月 10日 <안개비가 아름답고 신비롭다>


                  


『卑屈한 午後』




釜山에서 서울 가는 高速列車는 쾅쾅쾅 소리를 내요.
왠 술을 그리 먹었냐며 어머니께서 나무라셨는데, 그 뒤에 당신이 섰었어요.
뭔가 큰소리를 내며 손짓을 하는데 가라는 얘긴지 
서라는 얘긴지 알 수 없잖아요.
그냥 바보처럼 히 하고 웃고만 섰었지요.
사랑하잖아...
내 손엔 아기 물리던 젖꼭지 하나와 당신의 빨간색 체크 보자기가 들려 있어요.
서울에서 釜山 가는 高速列車는 소리가 참 커요.. 
쿠룽쿠룽 소리를 내지요.
아마 大田쯤 가겠지요?...




-'10年 2月 10日 <決斷과 自我, 時間과 歲月>


                  


『이 겨울 지나』




먼 길 오기도 참 잘 왔습니다
돌아갈 길 아니므로 아득하다는 말 않겠습니다
그저,

자운영꽃 산수유 배꽃 찔레꽃 때죽나무 산당화 연꽃 민들레 피고 지는 섬진강길 아니라서,
강릉 경포호수 빨갛게 흐드러진 해당화길 아니라서,
더군다나 봄 한철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청주 무심천 벚꽃길 아니라서 그렇죠

당신께서 기억하라던 청초한 아이리스꽃은 뒷담길 숨어 어디 보이기나 하나요
만지지 못하고 함께 거닐지도 못할 보랏빛 꽃길은 마저 액자에 담아 걸어 놓았구요,
이제부터 나는 이 겨울 지나 남은 계절에
사계절꽃 어우러질 지리산 피아골 가는 길 초꺼듬 왼쪽 도랑물 건너 산 중턱 아주 작은 대숲마을

당신이 살더라던 그 꽃길 가겠습니다




-'10年 2月 11日 <이번에 설 지내고 나면 장성에 집 한번 보러 가려구요. 못 가 본 섬진강길 철따라 
피고 지는 꽃향기가 진하고, 시인 김용택의 그 지리산 피아골도 가깝잖아요.>


                  


『그대 죽어도』




그대의 살갗 참 얄궂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어제 그제 당신의 이쁜 입 마주하고 있을 때 분명 가슴 콩콩 뛰었지요.
어여쁜 당신 손 잡고 있으면 심장 쾅쾅 뛰었잖아요.

그대의 속살 어찌 그리도 얄궂은지요.
사흘 지나 나흘 지나니 당신의 고운 입 슬픔 말해도 가슴 아파 않고
멀리서 당신 손 다른 손 쥐고 있어도 심장 질투하지 않아요.

그대 몸 속에 흐르는 붉은 피가 얄궂게 차지요.
한달 지나 두달 지나면 당신의 붉은 입술 그저 보랏빛 가슴 포개 놓고도
구슬프고 싸늘한 당신 손 회색 물감 얼음에 타 심장 칠하겠지요.

아! 그대가 어떻게 늘 그리 뜨거울 수만 있겠어요.
이제는 죽는 날까지 당신의 잿빛 설움 가슴에 꼬옥 챙겨 두어야 하고
차디 차게 식은 당신 손 녹을 때까지 심장 풀어 주어야 하죠.




-'10年 2月 16日, <첫발 위해 며칠을 잘 잤다..>


                  


『아내에게 부치는 글』




여보! 걱정하지 말아요.
當身과 나 그저 며칠밤 자고났을 뿐인데
아이들이 저만큼 다 컸잖아.

봐, 잘생겼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슬기롭잖아.
다 當身이 애들 위해
犧牲하고 사랑해 준 結實이지요.


여보! 幸福하게 살아요.
當身과 나 그저 내일도 信賴하고 여기면
아이들은 저만큼 더 클거야.

봐, 思慮깊고 友愛있고 베품알고 대견하잖아.
다 當身이 애들 위해
가르치고 보듬어 준 까닭이지요.


當身과 나 二十二年 살면서
오로지 예쁘고 곱고 착하고 여린 당신이
혼자 부서지고 헤지고 망가졌어요.

아, 여보! 이제부터 當身은 받기만 해요.
걱정 없이 幸福하게 웃어도 돼요.
나 當身 향해 盞 높이 들고 있어요...




-'10年 2月 11日 <둘째 卒業式 마치고>


                  


『스피드 스케이트가 내게 준 기쁨』




밴쿠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스피드 스케이팅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나는 개
인적으로 매우 기쁘다. 지금은 저세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생인 어린시절에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비록 중고품이었지만 스케이트를 사 주셨었다.  워낙 운동에는 소질이 없고 몸치인 나였지
만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해,  결국은 얼음판에서 자유자제로 스케이트 날을 놀리게 되는 것을
아버지가 멀리서 흐믓하게 지켜 보셨었다.

그 시절에는 스케이트장이라 해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대표적 군사지역이었던 내 고향에는 논배미에 
물 채워 얼려서 금만 그으면 겨우내 스케이트를 지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때는 여자들이나 
신는 것으로 알려졌던 피겨 스케이트란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군인 아저씨들이 부대 대항 빙상대회
를 벌이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 모두 들떠서 축제처럼 신나게 놀며 지쳤던  스피드 스케이트가 진정한 
스케이트였던 것이 당연했다.  지금도 나는 눈 내리는 추운 겨울이 되면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사주신 
스케이트를 타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때를 그리곤 한다. 세상 물정에 닳아서 노는 것도 누리는 것도 
제대로 못하며 살아 온 지난 성년의 내 과거를 돌이켜 보면 어찌 그립지 않은 시절이라 말 할 수 있겠
는가... 

빙상계 스포츠에서  전혀 얼굴도 내놓지 못했던 한국 스포츠가  언제부턴가 쇼트트렉에서 번쩍 세계에
이름을 비추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피겨의 김연아 선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렇
다. 나 역시 김연아 선수가 예쁘고, 전율을 가져다 주었던 쇼트트렉의 전이경 선수도 너무 아름답다. 
그러나 혹시 그들이 섭섭하게 생각할 지는 몰라도, 역시 내 가슴 속의 겨울 스포츠는 스피드 스케이트
임에 분명하다.  그동안 세계 빙상경기대회에서 이규혁 선수 등이 몇번의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긴 했
지만, 경기 소식을 전해주는 기자들의 목소리에는 늘 체력의 한계, 속도의 한계라는 말이 섞여 있어서
한쪽 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번에 이름도 몰랐던 모태범과 이상화의 500m 금메달, 그리고 이승훈의
5000m 은메달은 이런 정서를 바탕으로 한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해 주는데 충분했다.  그들이 그 아름다
운 빙상 트렉을 새가 날 듯, 비행기가 활주하듯 날아가는 모습을 모두가 보았지 아니한가!  얼마나 멋
있는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참 꿈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어 많이 기쁘다. 그리고 항상 편식만 하는 우리나라 스포츠가 이번 올림
픽을 계기로 명실공히 빙상강국으로서 이미지를 확보하게 되었다는 것에 참 뿌듯함을 느낀다.  아무튼
비록 내 개인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지만  스피드 스케이트 부문에서의 올림픽 메달, 나는 실로
신나고 가슴이 설렌다.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하고 성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오늘 나는 돌아
가신 아버지의 그 흐믓한 입가의 웃음도 다시 한번 가슴에 떠올려 본다.  남이 타던 녹슨 스케이트 사
서 밤새 기름 칠하고 윤을 내서 어린 아들인 내게 신켜 주시며 아버지는 그러셨지..  '나중에 돈 벌면 
새것 사 줄께'라고...




-'10년 2월 17일, <동계올림픽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나뭇가지』




살 섞어
네 것 내 것 가리잖고
살 수
없을 바에야

虛氣 갈증 통증 罵倒하며
밋밋한 가슴으론
더군다나 살 수
없기에,

해진 살 모아
갈기갈기 찢어서
嚴冬雪寒 오늘 같이 바람 불고 눈 나리는 날
동구 밖 한길

내다 버렸으면 싶다.
이놈 저놈
발길에 툭툭 
차이면 딱 좋겠다.




-'10年 2月18日,
오늘 아침 공기가 차다.


                  


『어젯밤에 혼자서』




어젯밤에 누가 날 부르더군.
황홀(恍惚)한 밤 보내자고, 소주 한 잔 하자고.
내 평생(平生)의 전부(全部)인 그대를
사랑도 없고 인간도 없다고 폄하(貶下)하더군.
살면서 이렇게 모욕(侮辱)스런 밤
어디 또 있을까 싶어.

어젯밤에 내가 그댈 불렀지.
소탈(疏脫)한 밤 보내자고, 그저 할 말 있다고.
내 평생(平生)의 의지(依支)할 그대가
능력도 없고 자신도 없다며 자학(自虐)하더군.
살면서 이렇게 굴욕(屈辱)적인 밤
언제 또 생길까 싶어.

어젯밤에 내가 결국 말했지.
혼자서 밤 보낸다고, 그냥 두고 가라고.
내 평생(平生)에 또 없을 그대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며 달관(達觀)했더군.
살면서 이렇게 치욕(恥辱)스런 밤
글쎄 또 오려나 몰라.




-'10年 2月 25日 
 <일과 사람.. 가끔 외로울 때 있다..>


                  


『다르다는 것』




差異 있다는 것은
節制된 물길 교토의 비와코소스이 눈부신 봄 벚꽃보다
그대가 아름답다는 것을 뜻합니다.

隔意 보인다는 것은
돌담길 돌아 스완지 세븐에브뉴 하늘빛 邸宅 가을 菊花처럼
그대가 端雅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대 나와 다르다는 것은
겨울 街路樹길 안개언덕 敎會 十字架 玲瓏하여
가슴 적신 빗물 어느 여름날 우리집 옛터 뜨락에서 샘솟 듯
그대 참되다는 것을 내가 앎입니다.




-10年 2月 26日, 비가 그치고..
 <우리는 서로 다르기에 같이 간다.>
 .교토(京都) 비와코소스이(琵琶湖疏水)
 .스완지(Swansea) 세븐에브뉴(Seven Avenue)


                  


『나이 五十에..』




아주 조금씩..
자연(自然)이 아름답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모퉁이 풀 한포기 생명에도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이 보이고,
출근길 아침마당을 빨갛게 밝혀주는 태양빛 부드러운 피부도 느껴지면서
가로수길 겨울 가지의 보란 듯한 손짓에 어느덧 가슴이 벅차온다..
아! 그래도 오늘 나는..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또 하나 내 이기(利己)와 자만(自慢)은 아닐까 돌아 보면서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보지 못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내 볼품없는 살갗만 볼 줄 아는 속좁은 식견 밖에 없으면서
나이 五十에 이 자연(自然), 
아름답다는 것 느낀 들 뭣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을 아름답게 볼 수 있다는 것,
진정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서야, 얼마나 더 나를 낮출 수 있어야,
얼마나 내가 없어져야,
어떻게 해서 내가 버려져야.. 볼 수 있으며 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자연(自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렇게 벅차고 감사한데..
사람을 알게 되고, 진정으로 사랑을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온다면
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행복(幸福)할까..
그런 날이.. 
과연 내게도 찾아 와 줄까...




-'10年 2月 26日 <봄을 맞으려면 두꺼운 옷을 벗어야..>


                  


『봄꽃 피면』




올해 너 처음 만나면
그냥 지나치며 감탄만은 않을거야.
그저 보내지도 않을거구.
지나가던 차 세워 네 앞 쪼그려 앉아
이쁜 입술 어루만지며 
보듬고 속삭일거야.
파란 하늘에 화사한 네 자태가 너무 곱다고
그리고 많이 사랑한다고.

올해 너 처음 만나면
그냥 지나치며 웃지만은 않을거야.
화향 짙은 두송이 꽃잎 따서
빛바랜 일기장 옛 이야기 잉크 번지면 어때
두장 갈피에 고이 끼워 둬야지.
하나 널 위하여
또 하나는 나
영원한 너와 나 사랑 위하여.




-'10年 3月 3日 


                  


『그저 女子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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