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부터는 나를 더 사랑하며 살련다..(아홉번째 페이지)      "반디의 홈페이지"
    
               


『나 죽거든』
 
 
 
 
좋아할 색
사랑할 향 없이 내가
죽으면
무슨 흙에 묻힐까
싶다
 
뜰. 마당 
거닐다 만 얘기들
봄. 여름. 가을. 겨울
해질 녘에
거뭇거뭇 하소연한 소리들
비같은 그대
찔레꽃같은 그대 곁에서
턱 괴 앓아 낳은
소망들
 
좋아할 색
사랑할 향 없이 내가
죽으면
어느 산에 묻힐까
싶다
 
 
 
 
-'12年 3月 2日
<내가 책을 내다니, 그런 꼴값은 없다. 
다만 나 죽으면 아마 적잖이 리어카 한 대는 넘을 내 소망들, 같이 묻혔으면 좋겠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백합꽃을 밤벚꽃이라 했으니
꿀나비를 독나방이라 말했으니
그녀는 필경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부끄러울 일 아니고
미안해야 할 일 더더욱 아니다
백합꽃을 밤벚꽃이라 할 까닭이 있고
꿀나비를 독나방이라 할 수 밖에는 없었고.
가시나무는 시킨 대로 꺾어다가
문지방에 잔뜩 세워 놨겠다,
무슨 놈의 사랑이 이렇게 지독하냐며
얼마나 더 그리워해야 하냐며
심장도 수 백번 얼어 터졌고
피도 흘릴 만큼 흘렸으니
이게 더이상 할 짓은 아니다
하면서 그녀는,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12年 1月 20日 


                  


『아지랑이』
 
 
 
 
정말로 나 죽어지고 나면
땅 속에 묻혀지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그녀의 벙굿벙긋한 웃음이
아직도 이 가슴에 함박꽃 만큼이나 커다랗고
살랑살랑 애교 섞인 말 한마디 한마디
흔들어 주던 손 자락 마디마디가
심장 속 하나 가득 먹먹한데
나 죽어지고 나면
땅 속에 묻혀지고 나면
아침 햇살에 새벽 안개 쓸려 가듯
봄볕에 제 혼자 좋아 죽다가 이른아른 사라질 아지랑이처럼
정말로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12年 4月 23日
<죽은 다음에야 그 많던 소망, 바람도 다 무슨 소용이랴> 


                  


『인삼벤자민』
 
 
 
 
빙글빙글 겉돌지 말자
돈 부족한지
애정이 식어선지
시원히 말해 줬으면 해
겨우내 
너와 나, 한 방 같이 살면서
넌 저쪽만 바라보며 
딴소리만 했잖아.
이제 그만 해
날 좀 바라보고 
얘기해.
우리 제발
쉽게 쉽게 살자
 
 
 
 
-'12年 4月 25日
<결국 성질 급한 내가 속 터져, 반짝 화분을 머리맡에 옮겨 놓았다.  뭘 생각하는지,  뭘 말하는지 좀
자세히 들어야겠어서> 


                  


『대추낭구』




종일 비 맞고 섰던 대추낭구는 안다
해 언제 밝아 옷 줏어 입는지
바람이 어느 손길 맞는지
구름 혈색은 고운지 거친지 
다 안다
어제 어스름녘 그녀가 살짝 살구나무 곁 다가가
치마 걷어 올리고 오줌 누면서 했던
입에 담기 좀 그런 그 의성어도
보고 들어서 
다 안다
우쒸. 세상살이 뭐 별건가
온갖 나무들 죄 모여서
세상사 이렇느니 인생사 저렇느니 
신기하고 
재밌어서
번질번질 말도 많고,
시끌벅적 난리에 야단법석인
눈부신 이 아침에도
대추낭구는 혼자서 말없이 다 안다




-'12年 4月 26日
<비 그치고 대지가 온통 푸르러졌다. 대추나무만 꼼작 않고 서 있다>


                  


『찔레꽃이 사랑을 해도 슬프고 아픈 사연』
 
 
 
 
찔레꽃을 숭고하고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찔레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 사람은 드믈 것입니다
다만 나처럼 시골에서 자라나,
여름 동구 밖 참외원두막 지나 맑은 시냇가에서
아이들과 정신없이 멱감고 놀면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
풀벌레 소리가 우리들 키득키득 웃음소리보다도 더 투명하다는 것 알았을 즈음에
발가벗은 아이들 우루루 모였다 흩어지기가 재밌었다가
숨바꼭질하다 말고 집에 돌아오는 길
앞산 버드나무재 밑 돌틈에서
뚝방 따라 옥수수밭 늘어진 길가에서
그리고 동네 어귀 성황당에서
우리집 울타리에서
달빛 드신 어머니 얼굴 만큼이나 하이얗게 맞아 주고
우체국옆 연이처럼 볼그스레 바라봐 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 찔레꽃 사랑 받아 온 나같은 사람만이라야,
겨우
찔레꽃이 진정 숭고하고 예쁘며
장미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2年 4月 27日
<당신은 분명 찔레꽃 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삠』
 
 
 
 
父親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女子아이의 가슴은 불룩해졌고 
치마가 짧아졌고
통통하던 이미지의 얼굴에
여기저기 손대더니 
完全 달라졌다
지난 겨우내
父親의 死亡原因 究明한다며
放送에 나오고
불려다니고
新聞 들고 울고불고했는데
그 女子아이의 事情 내가 줄곧 봐 왔잖아
保險金은 잘 받았을까
合意는 해 줬겠지
하늘에서 그 女子아이의 父親은
뭐라 말씀하실까
보고 계실까
父親이 돌아가시고 나서
그 女子아이의 허리는 잘록해졌고 
다리는 늘씬해졌고
厚德스런 이미지의 얼굴이
몇차례나 바뀌더니
完全 없어졌다
 
 
 
 
-'12年 5月 2日
<봄볕이 미친듯 이글거리니 오늘은 내 눈이 삐었나 보다> 


                  


『단절의 의미』
 
 
 
 
단절(斷絶)은 예상했으되 언제나 불현듯 찾아온다. 단절은 봄꽃도 피면 당연히 진다는 것과 같은 누구
나 다 잘 알고 있는 일상의 진리에 대해서조차 매년 올해만은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제 갈 길 가는 봄이라는 계절의 한바탕 장난과 같이 싱겁고 맥빠
지는 유형의 것이다. 단절은 큰 숨 몰아쉬던 심장이 우리의 몸 속에서 한꺼번에 빠져나가서 쏟아진 피
가 거리의 길 한가운데에 뿌려진 것과 같이 처참한 지경에서  마지막 혼신의 외마디 끝조차 허공에 흩
어져, 아무런 메아리도 반향도 미치지 못하는 완전한 감각 고립의 상태를 말한다. 우리의 인연도 맥박
도 숨결도, 그 끝은 결국 죽음처럼 그럴 것이다. 
 
 
 
 
-'12年 5月 3日
<삶에 있어 따뜻한 맥이 오직 핸드폰 하나라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Sensitivity』
 
 
 
 
나에게 있어 그의 存在를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아니하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에 향해 있는  내
時空의 感覺을 물리적으로 離隔하거나 絶緣하고, 그리고 나서 내 가슴의 감각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
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이 시대에 만연되어 있는 SNS는 내가 참고 기다리는 인내
의 時隔이 과거에 비해 현격히 좁혀져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어쨌든 단지 間隔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密度에까지 미친  마치 조급증과 같은 이 가슴의 渴症 정도가 深刻히 예민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을
봐서, 이 정도라면 그의 무게가 내 한가운데 있다는 것은 가히 명확하다 이니할 수 없는 것이다. 
 
 
 
 
-'12年 5月 4日
<이렇게 時空에 걸친 물리적 斷絶도 때로는 필요하다> 


                  


『아이와 對話할 때에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첫사랑 얘기를 할 때에는 注意가 필요하다.  아니, 얘기를 안 하는 편이 낫
다. 요즘 아이들에겐 황순원의 소나기나 피천득의 因緣과 같은 정서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들
에게는 TV의 불륜 드라마나 꼬이고 꼬인 주변 친구들의 막장 가정 불화 얘기가 훨씬 더 現實的으로 접
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12年 5月 4日
<그러나 우리의 사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건전하고, 아이들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잣나무』
 
 
 
 
달 뜬 봄밤에
잣나무
혼자
굵게 곧게 섰는데
뜨거운
숨결 죽이고
구름에 달 자는
새벽에야
겨우
식어서
별 헤고 있다
 
 
 
 
-'12年 5月 5日
<그리 그리워서야.. 별 헬 줄도 알아야 하지> 


                  


『벗는다는 것』
 
 
 
 
위대한 자연(自然)도 열정(熱情)의 끝에서 추운 겨울에는 옷을 벗는다.  벗는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이
위험(危險)하지만 가장 완전(完全)히 순수(純粹)한 사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삶의 치열(熾烈)
한 학습(學習) 과정을 통해 거둘 성취(成就)의 기쁨으로서 종국(終局)엔 겨울처럼 누구나  다 벗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만 우리는 굳이 모르는 척하거나 미련(未練)하게도 외면(外面)을 하
며 사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통속(通俗)의 현실에서 내가 갖고 있는 단 하나의 지식(知識)으로서
그것이 비순수(非純粹)라는 인식(認識)과 그에 대한 중용(中庸)의 감각(感覺)을 갖게 되었다. 이는 내
삶에 있어 매우 유용한 지적(知的) 자각(自覺)임에 분명하다.  아마 언젠가 내가 그대 앞에서 옷을 벗
게 된다면 세상(世上)에 온갖 허물을 다 드러내고도 부끄러움 없이 죽음을 만나는 것처럼 기어코 내가
진정(眞正)으로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12年 5月 6日
<푸르른 봄이다. 자연이 모두 새 옷을 입었다><約束_11> 


                  


『五月은』
 
 
 
 
五月은 당신을
무조건 믿어야 하는 달입니다
어떤 偏見도
誤解도
하면 안되는 달입니다
꽃이 피고
새 잎이 돋아나서
綠色이 날갯짓하는 五月에는
비에 젖어도
바람에 흔들려도
산과 들이랑
강처럼
무조건 당신을
믿어야 하는 달입니다
 
 
 
 
-'12年 5月 6日
<푸른 五月은 純粹에의 새로운 認識에 自覺을 주는 계절이다> 


                  


『맥빠진 아침』
 
 
 
 
쓸까 말까
할까 말까 신경 눈멀며
허튼짓
말꼬리 잡고
종일 언쟁 치른 날에는
진 빠진 나
죽어서 잤다
눈 부은 아침 출근길
알 낳은 아카시아 눈물 흘리며
이파리 덜 자란 
키 큰 플라타나스에 기대어
비라도 와라
천둥이라도 쳐대라
팔 툭툭 치고 섰는데
속 좁은 나
아무 말도 못한 채
쓸어버려라 
죽어라며
어둔 가로수길 달렸다
 
 
 
 
-'12年 5月 11日
<淸州 가로수길에서> 


                  


『나의 너』
 
 
 
 
녹색은 녹색이라서 좋다
꽃은 아름답다
그냥 꽃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너는 녹색이고
꽃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녹색이고 꽃이라서 좋다
 
 
 
 
-'12年 5月 12日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다> 


                  

『서서』
 
 
 
 
속리산 내리막길
세심정 지나 법주사 가는
목욕소(沐浴沼)에는
내 여자처럼 맑고
청담한
所望이 있다
송홧가루 제 여잔 양
흥건 정액 뿌린 낮일지라도
때 맞춰 바람 세어
여린 졸참나뭇잎 투두둑하고
몸서리친 밤일지라도
하늘 계곡 따라
흐르고 흘러
님 향한 沐浴沼에는
내 여자처럼 깊고
정숙한
所望이 있다
 
 
 
 
-'12年 5月 13日
<속리산 하산길 목욕소에서> 


                  


『거듭 사랑이란』
 
 
 
 
사랑이란
소유와 존재의 균형을 좇는 일이다
다 가질 수는 없지만
다  가질 필요도 없고
다 알 수도 없지만
다 알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거듭 말해서 사랑이란
다 가질 필요는 없어도
다  가져야만 하는 것이며
다 알아야 할 이유조차 없지만
다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12年 5月 15日
<봄비가 제법 내렸다> 


                  


『여운(餘韻)』
 
 
 
 
소주 반병 먹고도
그녈 안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다
꽃비 흩날려서
젖은 영혼들 미쳐 걷는
거리에서
소주 몇잔에
나
죽어서
네온등 불빛
그윽한
그녈 가질 수 있는 것은
영광이다
숲이 반주하고
별들이 노래한다
 
 
 
 
-'12年 5月 17日
<경기가 좀 살아날까? 모처럼 회식을 했다> 


                  


『하늘』
 
 
 
 
늘 당신이 머문 곳 여기
언제나 당신이 찾아 주는 여기서
나 살고 싶다
여기서 오래오래 
살다가 보면
늘 당신이 봐 준 것과 같이
언제나 당신이 지켜 주는 것처럼
산, 들 보면서
나 살아질 듯 싶다
 
 
 
 
-'12年 5月 18日
<하늘 아래 꽃피는 마을에 서서 -또다시 기다림-> 


                  

『긍정의 단어』
 
 
 
 
일할 때와 
사랑을 할 때는
이 흥분 얼마나 오랫동안
짜릿하게
기쁨과
행복 되어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입니다
어떻게 하면 뜨거운 환희
굵고 강하게
성취의 뿌리 내려
아름다운 승화의 꽃
희열로써
내 슬픈 영혼
식은 숨결
영원히 구제할 수 있을지,
누가 보든 안 보든
알아 주든 말든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그것이 
최대의 관심입니다
 
 
 
 
-'12年 5月 22日
<일과 사랑은 같은 단어다. 꿀같은 잠을 자고, 모닝커피를 마시며><約束_12> 


                  


『협박』
 
 
 
 
네가 날 버리고 간다면
난 온 세상 곳곳에
증오의 씨를 뿌릴거야
씨가 트고
자라서
벚꽃처럼 핀다고 생각해 봐
네가 웃을 수 있겠어?
증오가 칡넝쿨처럼 
산이며 들이며 기어 다니다가
낫으로 치고
약을 쳐도 
끝까지 죽지 않고 징글맞게 살아서
저 푸른 소나무랑
저 키 큰 참나무에 
똬리를 틀 듯
몸 칭칭 얽는다고 여겨 봐
살 수 있겠어?
흐흐흐
나 버리고 가기만 해 봐
네 주변 세상천지 
다 돌아 다니며
내 까만 증오의 씨 
곳곳에
쫘악 뿌릴거야
그래 갈테면 가 봐
 
 
 
 
-'12年 5月 25日
<가는 사람 앞길에 고운 비단 깔아 주기는 커녕 이 무슨 유치빤쓰냐. 하지만 요즘 몇몇 철없는 젊은이
들의 일터에 대한 인내와 목표의 념(念)과 행태는 가히 뭐라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대가 잠들어 있을 가슴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보았다
피빛에 물들은 바다가 왜 평온한지를
폭풍이 몰아치는데도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자장가를 불러라
오늘 이 어두운 밤하늘이 하얀 도화지에 명료한 사랑의 메아리로 새겨질 때까지 
노래를 불러라
나는 보았다
그대의 가슴이 왜 평온한지를
죽음이 다가오는데도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12年 5月 26日
<다르지 않다. 가운데서 보느냐, 그 밖에서 보느냐의 차이다> 


                  

『분홍찔레꽃』
 
 
 
 
어제는 찔레꽃이 눈물 흘렸습니다
봄볕이 별같다며 하늘 보며 웃더니
분홍색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얀 바람이 불고
내 가슴에 깊은 강물이 흐릅니다
 
 
 
 
-'12年 5月 27日
<햇볕이 쏟아지는데 분홍찔레가 예쁘게 피었다> 


                  


『옷차림』
 
 
 
 
오늘 나는 품 펀펀한 저고리를 입고 싶다
꿀 찾아 내 뜰 날아 든 저 나비와 벌들은 물론
아침부터 커억커억 힘든 소리를 내며 먼하늘 바라보는 오리들까지
사실은 이 시간에 끝내 가슴 아파서 울고 있을 사랑하는 나의 너를
내 품안에 넣어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도록
오늘 나는 폭 널널한 바지를 입어야겠다
바람에 실려 와 내 뜰 널려진 찔레꽃잎은 물론
어젯밤 소나기에 젖어서 지질지질 떨며 움크려 있는 길고양이까지
사실은 이 아침에 너무 마음 아파서 도피 갔을 사랑하는 나의 너를
내 바지에 숨겨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도록
 
 
 
 
-'12年 5月 28日
<오늘은 펑퍼짐하게 입고 출근한다. 그 누군가 나로인해 슬픈 것은 내 품이 좁기 때문이다> 


                  


『어떡해』
 
 
 
 
썽아, 네가 그리 마음 아프면
나는 어떡하니?
동지섣달 허구한 날 얼은 심장 눈에 묻고 발 동동 구르며 지내 온 나
오뉴월에 하얀꽃 너 찔레꽃 찾아
행복하게 웃고 있는 천치에 머저리인 내가
그럼 없으란 말이지?
 
썽아, 네가 그리 가슴 저리면
나는 어떡하니?
이십오년 기나긴 날 시든 장미 들에 널고 눈물 씨 말리며 살아 온 나
보란듯이 하얀꽃 너 찔레꽃 만나
천진난만 좋아하는 쪼다에 덜떨어진 내가
그럼 죽으란 말이지?
 
 
 
 
-'12年 5月 28日
<이 아름다운 계절에 들에도 울타리에도 슬픈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 


                  


 
『들꽃 따다가』
 
 
 
 
꽃향기를 맡는다
참 좋다
그렇게 내 얼굴 꼼꼼히 들여다 보는
너였으면 한다
끝까지
 
꽃을 꺾는다
아프겠다
그토록 내 눈썹 다정히 쓰다듬어 주는
너였으면 좋겠다
영원히
 
꽃을 매만지면서
그윽하다
앞으로도 내 손 조물락조물락 만져 주는
너이길 원한다
죽을 때까지
 
 
 
 
-'12年 5月 29日
<들꽃 좀 따다 화병에 꽂았다. 
 이름도 모른다> 


                  


『아이』
 
 
 
 
아이는 또 떠난다
행복해 한다
아이는 맨날 떠날 줄만 안다
그게 아인데
나는 바보처럼 서운하다,
아빠가 밉니,
그런 소리를 한다
어이 등신아
아이가 또 떠난다
행복해 한다
 
 
 
 
-'12年 5月 31日
<선혜, 클럽메드 빈탄 지오(GO)로...>


                  


『내가 화병에 꽂아 둔 꽃을 보면서』
 
 
 
 
꽃이 날 쳐다보는 것은 그저 내 생각이려니 했다
꽃이 벌을 기다리고 나비나 쳐다보는 것이지
날 쳐다본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겠거니 했다
내 방에 벌 날아 들 일 없고 더군다나 나비가 찾아 올 일 없으므로
그냥 아쉬운 대로 나 있어서 날 쳐다보는 것이겠거니 했다
저대로 꽃 시들어서 말라비틀어져도 끝내 벌 한 마리
영원히 나비 한 마리 못 보고 말 운명 앞에서
꽃이 날 쳐다보는 것은 그저 내 생각이려니 했다
 
 
 
 
-'12年 5月 31日
<봄하늘이 칙칙하다. 화병을 닦으니 내 얼굴이 드러난다> 


                  


『들꽃』
 
 
 
 
들녘에 네 그리 
핀 것이
복수(復讐)의 념(念)이어도
할 수 없다
징벌적 사랑이래도
나는
널
어쩔 수 없다
딸 수 밖에 없다
 
 
 
 
-'12年 5月 31日
<들꽃이 한창이다. 넌 나를 죽일 것이다. -박범신의 '은교'를 읽고-> 


                  


『달빛 장미』
 
 
 
 
오늘 이 밤에
붉은 달빛 창틈에 든
들고양이 
불눈 밝히면
복수(復讐)의 념(念)
배수(背水)의 진(陣) 친
징벌적(懲罰的) 사랑 불타 오른다
관능(官能)이 껍질 벗으라는
주술(呪術) 던져 오면
별들이 노래하고
서서 나무는 탈춤을 춘다
칼 든 서풍(西風)이
쇠소리 자지러지게 지름으로써
이 밤 한가운데에서
끝내 장미는
들고양이 눈빛 삼키며
피로 물들어져 가는 것이다
 
 
 
 
-'12年 6月 3日
<바람에 일렁이는 보름달 밑 장미꽃이 붉디 붉다 -박범신 '은교'의 여운이 남아-> 


                  


『술병』
 
 
 
 
몇 번을 걸어도 
이 길은
멀고 힘들기만 하다네
이 길이 
즐겁고 익숙한 
사람들만이
출세하고 돈을 번다네
내가 고작
요 모양 사는 건
몇 번을 걸어도
이 길이
길고 까칠해서
꺼리기 때문이라네
 
 
 
 
-'12年 6月 8日
<의지와 관계없이 폭음(暴飮)을 한다. 꼬박 하루를 죽었다 살아났다> 


                  


『순응(順應)』
 
 
 
 
꽃 흔드는 바람에게
할 말 없다
꽃 꺾고
비 뿌리는 구름에게
할 말 없다
죽여 죄의식 없다는데
하물며 거침없이 흐르는 밤의 한강물에게
나 살아
무슨 말 할까
 
 
 
 
-'12年 6月 10日
<흐르는 물을 어쩌란 말인가. -한강 건너며-> 


                  


『장승』
 
 
 
 
바람 부는 언덕에
옷깃 열고 하늘 쳐다보며
선다
 
바람이 옷 풀어제치고
옆구리를 따라
허리께
스며든다
 
부드럽다
아니
감미롭다
 
내가 여자여서 머리카락이 길면
바람과
옷자락이 어우러져
날릴까,
 
그 느낌이 들면
좋겠다
갖고 싶다
 
그가 이런 날 만지면 알까
그는 느낄까
알까
곁에서
 
 
 
 
-'12年 6月 11日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 좋을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좋을까> 


                  


『바라보기』
 
 
 
 
차창 밖 창문 속 
그녀가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녀가
일을 하고 있는지 졸고 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창 밖에 어둠 내리고
때동나무꽃 비 되어 떨어지는 계절에
어쩌면 그녀가 지금
울고 있는지
모르겠다
 
 
 
 
-'12年 6月 11日
<손에 잡힌 건 어느 것도 없다> 


                  


『개망초』
 
 
 
 
이른봄부턴 그리 하지 못했지
사립문 밖 찔레꽃 뽀오얗고
아카시아꽃 향기 그윽한 봄부턴 그리 할 수 없었지 
부끄러워 바라보기 만 했었지
 
노을 진 가시넝쿨 뒷곁 초승달 열린 맑은 날에도
미어진 가슴으로 하얀 눈물만 흘렸었지
풀 베는 낫질만 거셌었지
 
어느 여름밤 백반에 콕콕 찧어
봉숭아꽃 빠알갛게 손톱 꽁꽁 묶어서 
고운 정 하이얗게 사타구니에 끼고 누어서야 
고이 잠들 수 있었지
 
그린 이 집 돌아드는 길모퉁이 훵한 돌 틈 사이로
거침없이 흰 개망초 모락모락 피어 올랐지
누구나 다 그 꽃 보고 살았지
 
 
 
 
-'12年 6月 15日
<올해도 그 흔한 개망초가 들녘 가득하다> 


                  


『멍한 오후』
 
 
 
 
사람이 오십을 넘기면 가슴 한 켠에서
누군가 다 무너져가는 시골 흙담장에 널어 논 헤진 흰 운동화 한 짝
바라보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일까.
 
누구나 이 나이 되면 잘 쓰지 않던 왼손에
아이 먹다 남은 빵조각 며칠 째 햇볕에 말라 바삭바삭한 것
입 허옇게 묻혀가며 한 번 욱여넣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하는 것일까.
 
오늘과 같이 하늘이 높은지 낮은지
늘 내 품의 정겨웁던 산과 내가 먼지 가까운지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이 먹먹하게 종일 비만 쏟아지는 날에는
내 가슴에서 그런 질문을 던진다.
 
죽어야 사는 건지
아니면 살아야 사는 건지에 대한 쓴 커피로
오늘 벌써 몇 잔째 마셨는지 모르는데도
왜 빗속 달리는 고속열차는 저리 급하게 저 쪽으로만 달리는 것인지.
 
 
 
 
-'12年 6月 15日
<가물어서 난리란다. 내 가슴엔 하루 종일 비 내렸는데> 


                  


『삶이 이렇게 어떻게 손 쓸 수 없이 흘러가더라』
 
 
 
 
처음에는
강물이 노을빛 받아 그런 색인 줄 알았다 
물결 따라 둥실둥실 청둥오리가 헤엄치며 놀아 줄 줄로 나는 
알았다
강물이 피빛으로 물들어 고통의 심장에서 신음하는 줄은 몰랐다
하얀 복사꽃들이 부둥켜안고 살려 달라며 애원해야 할 줄은 꿈에도 내가 
몰랐다
 
처음에는
고목이 홀로 남기 좋아서 그런 줄 알았다
산자락 지나 살랑살랑 밤꽃 영혼 다가 와 자 주고 갈 줄로 나는 
알았다
고목이 짚풀처럼 말라서 회한의 통증으로 썪어 죽는 줄은 몰랐다
그윽한 보랏빛 칡향기가 옥죄며 어서 죽으라 감아 두를 줄은 꿈에도 내가 
몰랐다
 
 
 
 
-'12年 6月 17日 
<이렇게 영문도 모르고 나서 살다 죽는다> 


                  


『아침풍경』
 
 
 
 
그녀가 날 위해
꽃사진 찍고 있는 걸
생각하고 있으면
황홀하다
꽃보다 예쁘고
귀엽고
착하고
우아하고 사랑스런,
게다가
귀하고 소중하기까지 한
그녀가 날 위해
꽃사진 찍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12年 6月 21日
<아침햇살 드는 창가에서> 


                  


『짐』
 
 
 
 
내 영혼,  이 맑고 영롱한 숲속의 새암이 저 가뭄에 말라서 황당하게도 어느덧 그 어떤 깊이도 순수함
도 찾아 볼 수 없도록 황무지 되어 버린 꼴과 같은 것일까
가슴은 뛰고 피는 뜨거운데
정녕 그런 것인가
과연
당신도 그런가
 
내 육체,  이 크고 싱싱한 거리의 나무가 저 벼락에 맞아서 어이없게도 한순간 그 어떤 박력도 생동감
도 찾아 볼 수 없도록 숯검정 되어 버린 꼴과 같은 것일까
머리는 차고 심장은 끓는데
정녕 그런 것인가
진정
당신도 그런가
 
 
 
 
-'12年 6月 22日
<우리의 대화가 늘 샘처럼 솟고 나무처럼 생생할 수만은 없지만 어느덧 황무지로,  한순간 숯검정처럼
 죽은 짐짝처럼 된 것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옛날 아파트』
 
 
 
 
보글보글
윗층 아랫층 김치찌개가 끓는다
어우 군침이 돈다
퐁당퐁당
위 아래 발 담그는 소리
아아 시원하겠다
아악 아허윽
윗집 아랫집 깨 볶는 여름밤
흐흐흐 저릿하게
루드베키아 행복 꽃 물든
윗이웃 아랫이웃 우리 아파트에는
내 것 네 것
내 살 남의 살 가림 없이
다 열려 있었다
 
 
 
 
-'12年 6月 23日
<요즘은 윗집 아랫집 얘기도 옛말이다  -문득 옛 살던 아파트가 그립다-> 


                  


『여귀꽃』
 
 
 
 
내 본디 그리 천하게 난 걸 어쩌나
그렇게 생긴 걸 어쩌나
내 살면서 그것 밖에 못 보고 자라서 그런 걸 어쩌나
자존심도 없다
까치발 딛고
벗고서
고결한 당신 얼굴 바라보던 여름날
쏟아지는 하늘 빛 붉은 눈에 부시어 고개 숙이고
어눌하고 우울한 벽돌담 바람결 이리 설렁 저리 설렁 부딪히다가
저 산에 싸리꽃 피었다며 배시시 웃음 짓기도 하고
속살 노랗게 물들인 당찬 당신 곁에서
한(恨)은 내색 못하고 품은 독(毒)도 풀지 못한 채
저녁녘 탄식 하나 역력한 해오라기 짝 찾는 울음소리에 그만
손사래 젓고 놀란 양 돌아설 밖에 몰랐던
벽돌담 아래 도랑가에서 
자존심도 없고
까치발 딛고
벗고서
본디 그리 못 난 날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천한 날 어쩌란 말이냐
 
 
 
 
-'12年 7月 2日
<능소화 늘어진 깨진 벽돌담 아래로 작은 도랑물 흐르고 보랏빛 여귀꽃 얼굴 들고 있다> 


                  


『여름 새벽 창틈에 이는 바람』
 
 
 
 
옆구리 속에 파고드는 이 바람은  그대 잠든 사나흘 동안 냉장고 속에 숙성시켜 두었던 빠알갛고 통실
통실 잘 익은 토마토를 꺼내어 석석 도마에 썰어 접시에 미처 담기도 전에 덥석 한 조각 입에 넣어 먹
었을 때 내가 느끼곤 했던 감미롭고도 비릿하고 짜릿한 흥분과 같은 것이다
 
사타구니 밑에 스치는 이 바람은 이른 봄 꽃샘추위에 떨다 떨어진 내 매화 꽃잎이 목련꽃길 지나 흐르
는 플라타나스 마을 냇가 수양버들 터진 발등에 말라 붙어 있다가 매년 장마철 거칠고 드센 물살에 확
쓸려 보낼 때 내가 멍하니 바라보곤 하는 서슴찮은 후련함과 같은 것이다 
 
발가락 사이로 흐르는 이 바람은  그날 우리가 기어코 슬픈 인연이 되어서 얼굴엔 뜨물같은 미소를 지
으면서도 속으론 쓰린 가슴 쓸으며 안개 갖힌 망곡산재 맨발로 정신없이 넘다가 썩은 늪지숲 나뭇가지
밟아 미끄러질 때 몰려올 뭉클거림같은 내 젖은 회한의 공포와 같은 것이다
 
 
 
 
-'12年 7月 3日
<열어 논 창문 틈으로 새어 든 여름 새벽바람이  산 넘고 강 건너고 들판을 지나 내 꿈결까지 찾아 왔
 다> 


                  


『넋두리』
 
 
 
 
내 성격이 불같다고 한다
어느 순간 화산처럼 폭발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아,
화산이 그 얼마나 긴긴 세월
심장을 끓이고 끓여 오다가 터지는지는 아는가
불이 얼마나 뜨겁고
어떻게
뜨겁게 달궈져 왔는지는 아는가
 
내 성격이 얼음같다고 한다
남극 북극 빙하처럼 싸늘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아,
빙하가 그 얼마나 긴긴 세월
가슴을 식히고 식혀 왔기에 차가운지는 아는가
얼음이 얼마나 차갑고
어떻게
차갑게 식혀져 왔는지는 아는가
 
 
 
 
-'12年 7월 3日
<이 사람아, 
일할 때 내 손과 가슴은 정녕 따뜻하다네> 


                  


『자괴(自愧)』
 
 
 
 
오감의 욕구에
평생 끌려 다닌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나 없는 내게
이제 남은 건 고작
아이에게 세끼 밥 주는 일 뿐인데
그것마저 
의미가 사라지는 날
나는 대체 어떻게 살까
 
그나마 숨쉴 기력과
팔 다리 있어서 더러운 육신 가려 줄 옷 입혀 준
사회적 지위
인연
돈 
줄 끊으면
단 한 순간도 부지 못할 하찮은 목숨에
피 흘리고
숨가쁘게 이따위
소리 복에 겨운 사치라겠거늘
모든 환희도
감사함도
자아도
열도
내 생의 전부가
 
오감의 욕구에
평생 끌려 다닌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하나 없는 내게
이제 남은 건 고작
아이에게 세끼 밥 주는 일 뿐인데
그것마저 
의미가 사라지는 날
나는 대체 어떻게 살까
 
 
 
 
-'12年 7月 3日
<살 이유보다는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아졌다> 


                  


『구수한 장맛비』 
 
 
 
 
가랑이에 베개 끼고 
모 누어 있으면
투닥 투다닥
구수한 장맛비 소리 들린다
빼죽 열린 창문으로
젖은 바람 촉촉히 들어 와 
살갗 스치니
긴치마 입고서
아침밥 지으셔서
얘야 희영아 일어나 밥 먹어라 하시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멀리 빗줄기 따라
새벽 논물 둘러보고 오시는 아버지 장홧발 소리
뜨건 숨 철벅철벅 몰고 오다가
어디 두고 보자 
네놈이 농사 안 짓고 어찌 살지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하시는
아버지의 구시렁 말씀 뒤에서
아침부터 애 심난하게 왜 그딴 소리 하냐시며
어머니 항변 섞인 말댓구가 
두런두런 실려 들린다
빗소리가 빈 가슴에 파고 들어와
어머니 손
아버지 심장이 되어
뻐어근하다
그리웁다
빗소리가 좋다
가랑이에 베개 끼고 
모 누어 있으면
투닥 투다닥
구수한 장맛비 소리 들린다
 
 
 
 
-'12年 7月 6日
<장맛비 소리에 새벽에 잠 깨어 보니 가뭄으로 말랐던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손바닥을 활짝 폈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하늘에서 좋아하실 것 같다> 


                  


『 착하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하는, 게다가 귀하고 오로지 소중하기까지 한 내 여자, 당신에게』 
 
 
 
 
내 어리고 젊은 날에 썼던 마흔일곱 권의 일기장들.. 
그리고 정확히 1,523 통의 보낸 편짓글들..
(그 시절에 나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보내기 전에 똑같이 한 장을 다시 써서 파일해 두었거든)
또 지금까지 써 온 글들..
그 것들을 내가 어찌해야 하는 걸까?
나 죽으면 애들에게 함께 묻어 달라고 해야 할까? 
태워 버리라고 할까?
아니면 언젠가, 아니 조만간 모두 내 손으로 스스로 태워 버려야 하는 걸까? 
내 책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그 일기장들과 보낸 편짓글들.. 
또 최근에 써서 PC에 들여놓은 나의 텍스트 파일들.. 
어찌해야 하는 걸까?
근데 오직 일에만 빠져 살던 결혼 직후부터 2000년까지의 기록은 거의 없어. 
내 홈페이지 타이틀, "이제부터는 나를 더 사랑하며 살련다..."는 그래서 붙인건데..
아무튼 그럼 앞으로 그 글들을 어찌할까?...
언젠가는 다 태워 없에는 게 맞겠지?
어떻게 태울 수 있을까? 
아마 내 몸댕이가 불에 타는 것 보다 더 아프고 힘들 것 같은데...
유치하고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한 내 인생
내 영혼
내 육체..
그러나 그 어떤 영혼보다, 그 어떤 육체보다 
아름답고 귀중한 내 영혼
내 육체
내 인생
내 삶..
나는 죽는 순간에 만족과 기쁨으로 죽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죽는 순간에 공포와, 그리고 미련, 여한 없이 죽어질 수 있을까?..
 
 
 
 
-'12年 7月 10日
<매일 새벽 잠에서 눈을 뜨면, 감사하게도 책장 속의 내 지난 삶의 흔적들이 나를 맞이해 준다> 


                  


『비』 
 
 
 
 
비 온다
빨가벗고 걷는다
머리에서
비가
눈
코 지나
입가에서
움칫
내게 뜨겁다고
외치고는
턱과
목선 타고
가슴
옆구리로
스미어
가랑이 속
허벅지
무릎 지나
장딴지
발목에서
멈추어 서더니
마지막으로 
내게 다시 할 말 있다며
애절한 눈빛으로
뜨겁게
매달리다가
발 밑
잦아 들었다
비가
하늘에서
자꾸
내려 와
빨가벗고 걷는
뜨거운
내
머리로
쏟아진다
두 손가락 사이로도
뜨거워진
비가
뚝
뚜둑
새어 나간다
 
 
 
 
-'12年 7月 15日
<새벽 빗길을 걸으며> 


                  


『숨 고르고』
 
 
 
 
장맛비 그친 새
고추잠자리 나는 하늘가
비 젖어 색선 선명한
낡고 빨간 벽돌담 창틀 넘어진 창 너머
옛날 밥 짓고
겨울 추위에 불 땔 때
뽀얗고
매캐한 호흡 내쉬었을 
굴뚝이 보인다
 
굵고 휘어진 고목
버티고 있는
반쯤 부서져 내린 옛날 벽돌담 창틀 없어진 창 너머
한 때
열정 북적이고
발길 소리 범람하며
숨찬 불꽃 영혼과 뛰고 놀았을
깊은 숨 하나하나
귓가에 들린다
 
그 앞에 또 하나
이끼 낀 벽돌 의자 위에서
까만 선글라스 사내가
흰 맥고모자 쿡 눌러 쓴 여자 무릎에 앉히고
이제 그들은
역사를 말하겠지
삶을 논하겠지
아냐 사랑 나누고 있겠지
숨결이 고옵다
 
 
 
 
-'12年 7月 16日
<장마철 어느 길거리 사진전에서> 


                  


『백일홍』
 
 
 
 
옛날 나 살던 고향집 마당에는
빨랫줄 늘어진 높다란 장독대 옆으로
차돌로 테두리 지은 자그마한 화단이 있었어요
채송화는 앞줄에
뒷줄엔 빨간 봉숭아와 백일홍
그리고 맨 뒤에 붉디 붉은 다알리아 섰었지요
 
장맛비가 쏟아붓고 나면 아침에 아버지는
그 쪼끄마한 화단 앞에 앉으셔서
잡아 당기면 
쏘옥 힘없이 뽑혀 나오는 잡초 한 움큼 들으시고
꽃 중엔 백일홍이 최고야
하시며 혼자 웃으시곤 했어요
 
별반 꽃다운 향기도 없으면서
빨강 노랑에 그리고 진청색이라지만 뭔가 빛바랜 
백일홍이
여름내 우리집 마당에서 
그 무덤덤한 얼굴로 윤기도 없이 
살아가는 게 난 싫었어요
 
시련 투성이 목 다친 백일홍 밑에서
얘야 잡초가 많구나 말씀에
그저 내게는 청초하고 예쁘기까지 했던 달개비꽃
아버지 손에 뽑히던 그 날
세상 남자는 다 그리 살아야 한다며 
먹먹한 가슴 쓸어안았죠
 
근데 오늘같이 장맛비 내리는 날
몰라보게 자랐던 다알리아도
그저 잡초랄 수 밖에 없던 슬픈 달개비꽃도 아닌
오직 처연하면서도 담담하기만 했던
비 젖은 백일홍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른지요
 
 
 
 
-'12年 7月 17日
<언제나 비 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등이 눈에 선하다> 


                  


『첫 만남』
 
 
 
 
폭우 속을 걸었다
그의 심장 소리가 천둥처럼
쿠르릉 쾅쾅 울리고
나는 빗속에서
빛이 되고
길이 되고
희망이 되었다
몸 바친 나는
흙탕물 콸콸 터뜨려
숨 멈춘
강변 코스모스 길가에 눕혀져
빗물 받아 삼키며
뜨거운 혀를 널름거렸다
나는 빗속에서
손이 되고
발이 되고
그의 심장이 되었다
 
 
 
 
-'12年 7月 19日
<폭우 속에서 산책을 했다. -마음을 다 뺏기고-> 


                  


『새벽비』
 
 
 
 
비가 오는군
그렇군
그대가 환하고 
가장 절실히 날 원할 때
난 내 생에
가장 어두웁고
처절했군
그래 그런 후 그대 눈에 슬픔 저며 들고 
내게는 거친 빗물 흐르는군
지금 창 밖에는 
불쑥 찾아 온 손님처럼
비 퍼 부웃고 
그대와 내 창에 드리워진
짙푸른 어두움은
그리움처럼
가실 줄 모르는군
그렇군
창 밖에 빗속
개망초 뽀오얗게
피이어 있군
 
 
 
 
-'12年 7月 22日
<장마야 곧 끝나겠지. 어둠도 가시겠지> 


                  


『보슬비 속으로』
 
 
 
 
폭우가 이는 
밤 지나
깊은 잠 끝 눈 뜬 아침
먼 자동차 소리
저만치 사람들 발자욱
가까이
헤진 내 몸 속으로
귀뚜라미 울음 세게 시원하게 들어온다
여름 한철
짓무르던 내 몸
뜨거운 짐 벗어지고
숨줄 옥죄며 묶던 끈들이
넝쿨 죽 듯
눅어 풀리려나 보다
그래!
폭우가 쓸은 이 아침에
나도 시원히
천천히 
걷자
다시 뜨거운 해 뜨더라도
머리 달구더라도
이 아침에
천천히
나도 시원히 걷자
 
 
 
 
-'12年 8月 16日
<폭우가 그치고 보슬비 내리는 아침에 귀뚜라미 소리가 맑다. 가을이 온다> 


                  


『각심(刻心)』
 
 
 
 
아무 말 말거라
행복이란 이렇게 머엉한 것이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숨 놓고
차 마시며
이렇게 턱 받치고 
앉아서
살갗 스치는 바람 감미롭게
가을장마 끝난 창가
부신 햇살 
빛 뽀오얗게 
보드라운 날 아침에
가만히
널 기대고 있으면
내일은 좋은 사람이 날 찾아 와
기쁜 얘기
사랑한다며
웃음
그리고 속삭여 준단다
설렌 보랏빛
사붓사붓 귓전에 
그 얘기
웃음과
속삭임 맴돌아서
내일은
아니 영원히
신기하게 파란 하늘에
빨간잠자리 
날 것이고
막 이삭 핀 벼 
도톰해질 것이고
토실토실 밤
영글고
주막집 뒷곁 대추가
탱글탱글 익고
새 소리는
철 찾아 맑은 물 젖어져
개울가에
입 벌리고 하하하 웃을 호박꽃까지도
한아름 크게
품에
새길 것이다
아무 말 말거라
함께 죽을 일이다
행복이란 이렇게 머엉한 것이라 한다
 
 
 
 
-'12年 8月 31日
<모든 것이 좋을 계절이다. 잘 될 것이다> 


               


『이렇게 죽으면 좋겠다』
 
 
 
 
자다 깨어 
새벽 눈
감고 있으면
서쪽 창문 틈으로
아버지 환히 웃으시며
들어 오신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숨 죽이고
다 곤히 자는데
따뜻한 손결
내 몸 푸른 숲에서는
포근하게
가을비 내리고
흰버섯 검게 젖더니
고사리 지는
아침에
짙은 흙 향기
몸 안 가득 퍼진다
아버지가 손 내미셔서
얘야,
이제 그만 가자
하신다
 
 
 
 
-'12年 9月 7日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 꿈처럼 죽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꿈속에서 아버지를 뵈었다> 


                  


『어찌 불리고 어찌 살까』
 
 
 
 
꽃이 꽃 잃고 살 수 있을까
사람이 제 새끼 넋 잃고서 애미 애비로 살 수 있을까
피가 피빛 없는데 피라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제 자식 핏기 없는데 부모라 불릴 수 있을까
대명천지에 어느 꽃도
어느 인간도
피붙이 떠나 보내고
아니 그 보다, 애당초 그 근원도 없이
심장에 구멍내고 대체 숨이나 쉬며 살 수 있을까
숨쉴 가치조차 어디 있기나 한 걸까
그 어떤 거사도 영광도 
어떤 치졸함도 수치도, 희노애락도
모두가 그저 
한낱 껍질일 뿐이요 인장춘몽일 것이라,
꽃이 꽃 아닐 것이며 인간이 진정 인간 아닐 것이리라
 
 
 
 
-'12年 9月 9日
<조석으로 제법 공기가 차다. 새벽에 눈을 깼다> 


                  


『혹시 뒤에서 내게 한물 갔다고 말할 청춘이 있다면 그에게 고한다』
 
 
 
 
내가 시들었다고 말하려거든
내 팔탁팔탁 뛰는 심장 꺼내어 돋보기로 보고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라
네 눈 아직 밝아지지 않았으니
 
내가 늙었다고 말하려거든
내 피 철철 흐르는 간 꺼내어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뒤집으며 살펴 보거라
네 손모가지 채 성숙치 못했으니 
 
내 사타구니 물건 아직 싱싱하고
내 머리 검은 윤기 휘날리니
내 눈빛과 손길 네 어찌 쫓겠느냐
혹시 내 뒤에서 한물 갔다고 말할 청춘이 있다면 진실로 긴히 고한다
 
제발 더 공부하라
 
 
 
 
-'12年 9月 9日
<청춘들이여, 아름답다. 그러나 더 노력하라> 


                  


『늦은 대답』
 
 
 
 
당신께서 언젠가
가슴에 가시를 꽂고 사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느냐고 물었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가슴을 찢고
피 흘리며
나처럼 살지는 않습니다
늦여름 진청빛 하늘 아래서
멍하니 먼산 보면서
연분홍 찰랑찰랑 흩날리는
배롱나무꽃으로 살아도 될 날들을,
막바지 끝물 딸 고추밭에서
말라빠진 고추 겨우 
몇 개 따면서
앉았다 
구부렸다
허리 끊어지겠다
엄살떨며 살아도 될 날들을,
다 나처럼 이렇게 살지는 않습니다
 
 
 
 
'12年 9月 14日
<이 삶의 끝에 대체 뭐가 있길래> 


                  


『벌초지기(伐草之期)』
 
 
 
 
우리는 너 쿡쿡 밟고
풀밭을 간다
너는 작아서 보이지 않지
너는 작아서 모르지
 
가슴이 뛰는 건 무었일까
하늘이 있고
대지가 드리워지고
거기 내가 서서
바람이 일렁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가 왼손 잡고 섰다가
가을 들녘에
구절초가 한창이라며
같이 걷자고 한다
 
우리가 사는 건 무었일까
믿음이 있고
사랑이 드리워지고
단잠 꿈에 젖어
행복이 알밤처럼 굵는 것을 겪는 것이다
그가 방긋 웃고 와서는
검은 얼굴에
눈동자가 금빛이라며
너무 좋다고 한다
 
우리는 너 썩썩 베고
풀밭을 간다
너는 어려서 보이지 않지
너는 어려서 모르지
 
 
 
 
-'12年 9月 16日
<맞다. 벌초도 내 세대에서 끝이다> 


                  


『내 말은』
 
 
 
 
남의 말은 말았으면 한다
남의 말일랑 전하지도 말았으면 정말 좋겠다
오직 너의 말
좋아한다는 그 말
그것만 말했으면 한다
차라리 죽도록 미워하고 싫어한 끝에
너무 싫어서
기어코 
그리 되었노라고
그런 말
꼭 너의 말만 했으면 한다
 
아하!
그것도 글쎄다
 
그냥 팬티 바람에 러닝셔츠 입고
슬리퍼 딸딸 끌면서 할 수 있는 말일랑 좋겠다
중학교 때 회색바지에 
하늘색 교복 
쪼르르 잔디밭에 누워서 
개똥벌레는 참 좋고 
말똥구리는 더러워서 싫다느니 하면서
또박또박 나누며
했었던
그런 말
꼭 너의 말만 했으면 한다
 
 
 
 
-'12年 9月 19日
<태풍이 지나갔다. 가을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커피를 타며』
 
 
 
 
생각해 본다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남부럽지 않은데
아무렴 굶기야 하겠나
죽기야 하겠나
뭐가 두려울까
왜 불안하지
하면서도
빨간꽃 시들어 검어지고
식은 그믐달
새벽 기침에 땅 파서
묻을 때마다
축축해 지는 나
서러운 나
 
생각해 본다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저 눈빛 진정인지
어떻게 그걸 느끼는지
꼬집어 보면서
뭐를 의심할까
왜 안달하지
하면서도
심장이 식어서 얼었다고
시린 손으로
갈색 편지에 글 새겨
부칠 때마다
차가워 지는 나
시려운 나
 
 
 
 
-'12年 9月 19日
<어쩌면 채념일 수도 있다> 


                  


『그대』
 
 
 
 
내가 그대를 너 너 하고 부르는 것은
내가 예뻐한 꽃의 이파리가 볼그랗게 예뻐서 색조(色調)가 곱디 고와서가 아닙니다
고른 씨앗이 촘촘하게 줄기줄기에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를 이년 저년 칭하는 것은
내가 좋아한 산의 산세(山勢)가 오르기 좋고 시엄쉬엄 놀다 오기 편해서가 아닙니다
계곡 흐르는 물소리가 찰랑찰랑해
청아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에게 이놈 저놈 그러는 것은
내게 들리는 가을 노래가 노을빛에 젖어 들어 세풍(歲豊)에 어우러져서가 아닙니다
음조 뜯는 사위가 사뿟사뿟 뇌리에 
영롱하기 때문입니다
 
 
 
 
-'12年 9月 19日
<오랜 벗이 되었으면 한다> 


                  


『플라타나스』
 
 
 
 
안갯속 플라타나스 가로수들이
저마다 갈색 편지지 한 장 손에들 들고
줄 서서
날 오라 어서 오라 
잰 손짓을 하네
남들은
소라색 계절에 
가을이 익어 간다
알알이 풍요로움 영글어 간다며
좋아서들 별꼴인데
왜 날 부를까
여름내 치자꽃향도 맡지 못한 나에게
치자꽃 어찌 안다고
이제 와 내게 
뭣을 원하나
기껏 나 불러서
그래 봤자 
황홍의 치자열매 몇 개
화환 둘러 준다 할 밖 없을 네가
끝내 내게 
못 다 쓴 계절 편지 써 달라려 하려나
네 이별 편지 내게
대신 써 달라기나 하려나
왜 나를 부를까
안갯속 플라타나스 가로수들이
저마다 갈색 편지지 한 장 손에들 들고
줄 서서 
날 오라 어서 오라 
잰 손짓을 하네
 
 
 
 
-'12年 9月 21日
<안개 자옥한 출근길 청주가로수길에서> 


                  


『팻말』
 
 
 
 
맑은 고을이라는 이 도시의 거리에도
사람들이 다닌다
많이 다닌다
소리가 죽은 것일 뿐
 
가을 햇살 따사로운데
들녘에 나락이 익는지 가을꽃이 피는지
나는 모른다
들을 수 없다
머리는 혼미해져 있고
청각은 섰고
핏줄이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나를 더 사랑하며 살련다
한다는 내가 
과연 나를 아는가
여기
 
가을 바람이 부드러운데
나는 어딜 보고 가는지 가고는 있는지
나도 모른다
말할 수 없다
가슴은 찌그러져 있고 
애정은 없고
목뼈도 꺾여 버렸기 때문이다
 
수십 년을 살아 온 이 도시의 거리에도
사람들은 오간다
자주 오간다
표정이 꺼진 것일 뿐
 
 
 
 
-'12年 9月 25日
<삶이 끝내 이다지도 낯설을 밖에야> 


                  


『거미에게』
 
 
 
 
어설프레 몇 줄 쳐 놓고
가을 햇살
드너른 수풀 누비며
꽃이 웃는다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다만 불행하지 않을 뿐이지
행복하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꽃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다만 슬프지 않을 뿐이지
즐겁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너만큼 못 한 것 없고
너보다 못 가진 것도 없는 내가
삶이 칙칙하고 암울하고 답답하다는 얘기는
나는 아버지니까
나는 남편이고 강건하니까
사회 선배이고 
직장 상사라서 위엄 있어야 하니까
까놓고 그렇게 말하면 창피하고 부끄러워지니까
체면을 뭉개야 하니까
자존심 다 꺾어야 하니까
한순간에 다 날려야 하니까
아슬아슬 흰 줄 매달려
가을 바람
드높은 하늘 가르며
꽃이 예쁘다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다만 불행하지 않을 뿐이지
행복하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꽃이 향기롭다고 말하는 너에게 나는
다만 슬프지 않을 뿐이지
즐겁다고 말을 할 수는 없다
 
 
 
 
-'12年 9月 25日
<이 순간 나는 쪽팔리게도 네가 부럽다. 얼마나 더 적나라할 수 있다는 말인가> 


                  


『빗소리가 아름답지만 왠지 슬프다고 말하기도 하고 낙엽이 지면 슬프지만 왠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도 하는 내 영혼이라는 고독한 존재의 지껄임』
 
 
 
 
비 흠뻑 젖은 화단에서 채송화 숭숭 솎아 내는 것처럼 수월했으면 좋겠다
몇 시간이고 뜨뜻한 물에 담궜다가 퉁퉁 불은 무릎의 때 훌훌 벗겨 내 버릴 때처럼 시원했으면 좋겠다
 
이 맑고 드높은 하늘의 가을날에 나는 구절초가 융단처럼 널려진 끝없는 들판을 상상한다
피를 토하며 허파가 염통 휘둘러 멱 잡고 죽기 살기로 버텨 섰다가  끝내 서서히 손끝에서 힘 빠져 수
그러지는 것을 상상한다
 
한동안 깡 안주에 미친 듯이 술 퍼 마시고 가로등이 안갯속에서 깜빡깜빡 졸고 있는 틈을 타 소리지르
며 나다녔다
아마 그것은 내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캄캄한 밤에 나 자는 동안 그 수많은 날들을 쑥덕공
론으로 만든 공로랄 수도 있다
 
혹시  나이 들어 드디어 내 피의 온도와 뼈마디를 붙잡고 있는 근육에서 치명적 결함이 드러났거나 머
릿속에 들어있는 뇌세포의 질서에서 분열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평생 쇠사슬에 묶어 놨다 최근 얼마 전부터 풀어 놓은 검고 질긴 피질로 뒤덮혀져 있는,  세상
의  그 온갖 지저분한 욕망과 투쟁의 얄팍한 훈장으로써의 성취에 연연하는  미련의 부산물만 잔뜩 퍼
담고 있는 고작 내 남성이라는 돌출물 따위가 세상 모르고 미쳐 날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적어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저 말초적이거나 단세포적인 면면이 있는 것은 분명 맞나 싶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하루 앞도 못 보고 한 시간 앞의 일도 알지 못
하면서 끙끙거리고 안달하면서 근엄한 척 복잡한 척 심오한 척 지적인 척 몸부림치며 잘났다고 떠들다
가, 또 한 켠에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두렵다면서 그런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학하고 더군다나 우울
해한다
 
어쨌거나 어떤 무엇을 해도 손끝이 무뎌져서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고 밥을 먹어도 옷에 음식을 흘리지
않나 맨날 만나서 불러 대는 사람의 이름조차 깜빡깜빡 잊어 버리는 나를 본다
제 아무리 잘났다고 큰소리 뻥뻥치고 아직 살아 있노라며 하룻밤에도 몇 차례나 물건을 뻐떡뻐떡 세우
며 옆에서 곤히 자야 할 여자를 못살게 굴어 봐 보기도 하는 내가 결국 다 애꿎은 객기 발동이라는 것
을 안다
 
봄의 빛깔은 푸르른 녹색으로서 바람을 타고 시작이라는 향기를 품고 내게로 찾아 오며, 늦은 가을 어
느날에는 푸석푸석해지고 물기에 젖어 축축해진 지푸라기를 들쳐 내고 발로 툭 차서 맥없이 끊어져 버
리는 힘없는 버섯들이 내게로 달려 온다 
강은 길고 긴 여정을 돌고 돌아 결국 바다로 흐르고,  늦은 밤 퇴근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산짐승이 내
차에 부딫쳐 죽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로 아는 것처럼,  늙으면 늙고 힘없으면 없고 죽으면 죽는다
는 것이 그럴 듯하게 똑같이 삼라만상의 질서로서 내게도 죽음이라는 글자로 온다
 
우연치 않은 일이겠지만 그나마 복이 많아설까, 지난 세월 동안 잘 먹고 잘 살아 왔고 나를 좋아한 사
람도 많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동료도 있으니 행복한 것이다
그들이 저 산의 나무처럼 나무로 살고 저 산마루의 돌처럼 돌로서 살아 가는데 내가 보태 준 것도  없
이 그들이 나 슬플 때 안 울어주고 그들이 나 외로울 때 함께 해 주지 않는다 한들 그것조차 공허하게
도, 만족한 것이다
 
가리고 틀어막고 그러다 끝내 터뜨리는 일을 반복하는 영겁의 매일 낮 매일 밤을 되풀이 하면서  성취
의 소유욕과 자위의 허울에서 나는 산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온다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사람도 있고, 세상사 두리둥실 뜬그름 흘려 보내
듯이 낙천적으로 노래하며 사는 내 주변도 많은 것처럼 나도 산다
 
이 넓고도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낙상홍 열매가 발갛게 익어서 반짝반짝 빛날 것을 상상한다
아무리 허리를 틀어도 발이 머리에 닿지 않는 내 몸통을 뿌드득 잇소리가 나도록 꺾고 숙이며 영혼 성
숙의 끝장을 상상한다
 
겨울에 흰 눈이 수북 쌓이고 누런 오줌을 갈겨 대면 숭숭 구멍 뚫리는 것처럼 뚜렷했으면 좋겠다
고민고민 하다 털어 놓은 나의 모든 욕과 허물마저도 모두 다 받아 주고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랑이라
면 좋겠다
 
 
 
 
-'12年 9月 26日
<여름 지나고 가을은 아직 깊어지지 않았으니까 미리 지껄이는 것이다> 


                  


『자궁 속에서』
 
 
 
 
어눌한 네 말소리 들었고
가끔 꺼억꺼억 우는 네 소리 똑똑히 들었다
단풍이 익어 가는 먼산 쪽
사붓사붓 네 발 딛던 소리 투욱하고 떨어지던 날
쌔액쌔액 숨찬 쇳소리 속으로
허겁지겁 발길 돌렸던
네 슬픈 몸짓도
잘 들었다
아! 세상 놔두고
이리 들어 앉아 있으니
참 편하구나
아늑하고 포근하고
좋구나
이런 천국도 있구나!
그래, 네 언제 죽을지도
그마저도 다 듣고 느낄 수 있으니
네 죽을 때 분명 나도 죽을 수 있겠구나
 
 
 
 
-'12年 10月 9日
<삶.. 이렇게도 이어 간다> 


                  


『그리 하시면 됩니다』
 
 
 
 
당신께서 그토록 날 원해 오셨지만
알 수 없어서
정말 모르겠어서
쑥부쟁이 돌아다닌 들길 따라 긴긴 나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방법은 딱 한가지 뿐이라네요
자, 이제 당신께서는
집 돌아드는
산기슭 돌모퉁이
흰 꽃 어룽어룽 구절초들 함께 숨어 있다가
그저 오늘밤 나를 잡아 송두리째 갈아 마시면 된답니다
천천히 커피에 타 드셔도 되고요
내 육체
나의 영혼
꽃 되고 향기 되어
당신 가슴에 스며들게 될 수 만 있다면
나 갈려 먹혀도 
행복하다 말할터이니
오직 당신께서는 
딱 한가지,
오늘밤에
그리 하시면 됩니다
 
 
 
 
-'12年 10月 11日
<세상 가슴이 얼마나 징한지 모르겠다> 


                  


『그루터기에 앉아 툭툭 돌을 차다』
 
 
 
 
푹푹 물에 불려 벗겨도 하루가 멀다 하고 또 생기는 딱딱한 발바닥 각질 깊은 골 사이로 갈색 흙이 채
워져 있다
먹은 게 다 고작 손톱 자라는 데로만 가는지,  깎은지 채 며칠 되지도 않아 금방 웃자라 버리는 손톱
밑으로 까만 때가 가득하다
'내가 어찌 살아 왔는지'
밀도 높은 파란 하늘 겨드랑이 사이로 하루에 몇 번씩도 토해내는 내 깊은 한숨과 같이, 긴 그림자 드
리우며 석양이 고개를 떨구고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에서 시작한  내 들녘 저녁 산책도 어느덧  골 깊어진 가을 계곡의 찬 바람처럼
손끝 여미게 한다
'내가 어찌 살아야 하는지'
 
 
 
 
-'12年 10月 13日
<곧 찬 서리도 내리겠지> 


                  


『가을』
 
 
 
 
구불구불 시냇물 흐르는 그녀네 집 뒤 알콩달콩 먼 산 단풍잎 익는 것처럼
나도 불그스레 익어야 할텐데
밤새 시린 손끝 깨알같이 많은 사연 깊게 새겨 뒀다가
따사한 햇살 하늘에 자분자분 읽어 준대서
사랑한대서
나도 단풍처럼 익어야 할텐데
 
둥실둥실 흰구름 지나는 그녀네 집 앞 몰랑몰랑 키 큰 감나무 익는 것처럼
나도 바알갛게 익어야 할텐데
짙은 된서리 꿈결처럼 모진 상처 쓸어 주고 안아 주고
드넓단 파란 하늘에 주렁주렁 걸어 둔대서
사랑한대서
나도 홍시처럼 익어야 할텐데
 
 
 
 
-'12年 10月 16日
<올가을에는 단풍도 짙고 감도 바알갛다>


                  


『더는 안돼』
 
 
 
 
처음엔 어려서라고 하자
두 번째는 몰라서 그랬다고 치자
세 번째는,
변덕 죽 끓는 춘삼월 매화라도
여름 한낮 신작로에 옷 벗고 뛰놀 다알리아꽃이라도
둥글둥글 가을 하늘 쳐다보며 세월 보내다가 갑자기 눈 오는 날 싱글벙글 미쳐 웃을 낙상홍일지라도,
어떤 진저리쳐질 미련이라고 또다시
무슨 필연이라고 또
더는 안됀다
사계절 꽃들이 다 할 말 있겠지만
가시에 꽂 돋아서는
더는 안됀다
 
 
 
 
-'12年 10月 16日
<세 번이나 아프기는 싫다>


                  


『나는요』
 
 
 
 
내 말만 합니다
나의 꽃
내 산
들
어렸을 적부터
똑같은 식
하늘 얘기입니다
거짓말 좀 보태자면,
내 말 속에는
사랑이 있고
증오도 있는데
그게 다
그러라고 태어난
오직 
내 말입니다
 
 
 
 
-'12年 10月 17日
<내가 쓴 글이냐고 묻는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글만을 보거나, 또 전달을 하기 때문이 아닌
가 싶다>


                  


『가을비』
 
 
 
 
딸아이 여행 떠난다던 날
그 예쁨처럼
가을빛 깊어져 간다
비 온 사직가로
꽃길 초랑초랑 문주란
오늘 이 비로
도톰하게 살진 잎살 고운 하늘빛 먹고
내 원하는 바 
길에선
물은 물빛으로
깊어져 간다
 
아이가 군에 갔다 왔던 날
그 멋짐처럼
가을색 짙어져 간다
비 온 가로수길
팔랑팔랑 흩날린 낙엽
오늘 이 비로
차곡차곡 갈색 기운 힘찬 갈채를 쌓고
내 바라는 바 
길에선
흙은 흙색으로 
짙어져 간다
 
 
 
 
-12年 10月 17日
<안개비 내린 가을 아침 출근길에서 정돈(整頓)의 의미(意味)를 보았다> 


                  


『갈비 때서 밥 지으며』
 
 
 
 
낙엽 지는 계절이다
옆구리며 어깨가 제법 시리다
그 시절 우리는 너도나도 갈비를 땠다
갈비는 맑고 깨끗한 불꽃을 낸다
그 불꽃 앞에서 내 불알은 잘 익은 홍시처럼 추욱 늘어져, 바짓가랑이 새로 흘러나왔다
얼굴은 마치 옆집 영희가 몰래 찾아 와, 뽀뽀하고 달아나기라도 한 양 벌겋게 달아 오르곤 했다
캄캄한 정지, 빨려들 듯 시뻘겋게 달구어진 아궁이 속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어머니 품에 잠긴 착각에 
빠졌다
아버지의 든든한 손길처럼 아늑하고 편했다
그래서 갈비를 땠다
그렇게 멍하니 불 때고 있다가 보면 어느덧 기차 화통쯤이나 되야 낼 법한 고함 소리로,  가마솥 솥뚜
껑 틈을 삐집고 김이 새어 나온다
그 소리가 밥 짓는 아이의 귀를 즐겁게 한다
밥이 다 된 모양이다
불을 줄인다
입이 찢어져라 큰 하품을 하면서 허리를 젖혔다 구부려, 무겁고 시커먼 솥뚜껑을 밀어 김을 빼 준다
까맣게 그을린 정지 천장으로 치솟는 하얀 김이, 뭐랄까 경이롭다
구수한 밥 냄새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좋고,
행복하다!
얼굴에 김 서리고 볼이 사르르 식어지면서 눈망울이 뭉클 흐릿해진다
그 어떤 화염일지라도 다 품을 아궁이 속에서는 그때까지도 벌겋게 잔열이 널름거리고 있다
정신 차려서, 뽀글뽀글 수액을 뿜으며 타는 생나무 부지깽이로 불을 탁탁 끈다
늘어졌던 불알이 오무라져서 제 자리로 돌아왔다
석양이 산자락에 손톱만큼 남을 녘, 갈비 한 지게 가득 지고 갈쿠리 지팡이 삼은 할아버지가 햇볕에 
바싹 그을린 얼굴로 돌아와 웃으셨다
그 얼굴이 너무도 따뜻하고 푸근했다
그 시절 우리는
너도나도 갈비를 때서 밥을 지어 먹었다
 
 
 
 
-'12年 10月 18日
<솔잎이 갈비(솔가리)가 되어 정지(부엌) 한가득 쌓이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어느 트위터리안(Twitterian)에게』
 
 
 
 
창밖 낙엽 지는
까만 밤
이름 말고 욕으로 불러 달라는 널 안다
삶이 욕이라
죽어도 욕이라서
고독에 떨며
눈물 젖어 일어나
꿈 없고
바람 죽은 들녘
꽃 자고
별 숨었는데
옷 벗고 
혼자 서서
유리창에 비친 나
만지며
발밑에 낙엽 쌓이는데
이름 지워 버린 네 마음 나는 안다
삶이 싫어
죽어도 싫어서
 
 
 
 
-'12年 10月 23日
<「나목(裸木)에게」 -맞다. 부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겉』
 
 
 
 
봉사와 헌신
이런 단어를 싫어한다
지저분해져서
슈바이처와  나이팅게일
이런 분들을 미워한다
구차해져서
쩨쩨하게
눅눅한 뒷곁에서
꽃 져 가슴 아프고
찬 서리 내려 손 시리고
들바람에 슬픈
나는
고작 나를
긍휼히
믿고 사랑한다
 
 
 
 
-'12年 10月 25日
<그대는 그저 한없이 착하고 곱고, 반면에 무감각하다. 아니, 무식하다. 그것이 행복이라면 그것이 좋
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같이 짙은 안갯속에서 그대의 노란 가을 단풍은 그냥 아름답다라고만 여
기련다. 그리고 나는 나다> 


                  


『속』
 
 
 
 
생각해 보자
안개 자옥한 가을 길
낙엽 흩날리고
서리 내리고,
아침 저녁으로 심장 얼었다 풀렸다 하는 증세 
심해지고 있다
이 계절에 나 그저
소유냐 존재냐 따지며 말시비하자는 게 아니다
나 그대와 함께 
내년 여름에 죽을 수는 있겠지만
심장이 뭉그러져
터져서,
어차피 그대에게로 흐를 피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이따
안개 걷히고 햇빛 나오면
그대는 방에서 들꽃 공부를 하면 되고
나는 겨우
겨울로 가는 찬 심장 둘러매고
흰 눈 퍼부을 날
기다렸다가
시린 손 싹싹 쓸면서
맨몸에 먼산 
갈 길 생각할 것이다
 
 
 
 
-'12年 10月 26日
<그래서 오늘 아침 짙은 안갯속에서도 그대의 노란 가을 단풍은 그저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거세』
 
 
 
 
난이 때아닌 꽃대를 올렸다
창밖 가을비
소리에 지랄을 떤다
못 봐 주겠다
쫓아가
전지가위로 철컥 잘라 버렸다
주제에
꽃대가 툭 하고 
땅에 떨어져
팔딱팔딱거린다
 
 
 
 
-'12年 10月 27日
<세상의 모든 소리도 다 죽은 밤이다> 


                  


『들꽃 지다』
 
 
 
 
핏줄 가는 날갯죽지는
마른 게 당연해
손발 식은 지는 오래잖아
이게 벌써 몇 년짼지도 모르겠어
내 심장 이미 터졌고
동맥도 꺼졌어
그나마 네게 줬던 하나 남은 그 영혼조차도
올가을에 죽어 버렸군
아! 내게서 뭘 기대는 말아 줘
바라지 마
꿈도 꾸지 마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은
저 도랑가에 스러지는 들꽃들처럼
나 비들비들 식어지다가
가을비에 쓰러지고
낙엽에 묻혀 썪혀 지내다가
어느 늦가을 깊은 밤 
흰 서리 내리고 
누군가 뜨거운 발자욱
터벅터벅 찍어 주면
눈 멀뚱멀뚱
그 발길 어디롤까 볼 일 뿐이야
 
 
 
 
-'12年 10月 29日
<계절이 반복되고 삶이 반복되고>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대화법』
 
 
 
 
상식 외로 대화란 현실의 벽을 훨씬 뛰어 넘는 선에서, 혹은 그 안에서 안주하고 있을 때 원만히 이루
어진다. 그러나 보통 우리의 대화는 그 현실의 벽 언저리에서 늘 안절부절한다. 그래서 우리는 번민하
고 갈등하고 나아가 다투게 된다. 그 대화가 소유격이든 존재의 것이든, 미련과 집착의 것이든,  아니
면 용서와 포용의 것이라도 관계 없다. 양보와 희생의 것이어도 괜찮고 연민이나 질투와 같은  것이어
도 나쁘지 않다. 아무튼 사랑이라는 범주에서 생각해 볼 때 이러한 주제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대화가 늘 움직이는 현실의 범주를 자각할 수 없는 무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감각도 모자라고 누군가 지적해 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내적  두 영혼
의 발목에 사로잡혀 정체를 잃기 쉽고 도무지 쫒아갈 수가 없다. 우리가 그 두 영혼의 중심에서  원만
한 대화를 유지하는 것을 필요로 하고, 그 대화가 곧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한
이 말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서로 사랑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감각 확보에 대한 중요성
을 서로 공유한다는 것은 그 어떤 지식을 유지하는 것만큼 매우 유익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두개의 영혼이 존재한다. 그 어느 영혼도 소유와 존재, 미련과 집착,  용서와 포용,
양보와 희생, 연민과 질투.. 이런 단어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매우 편협적이다. 대화란, 특히 서로
사랑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란  이런 두 영혼을 가진 편협적이고도 움직이는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그 속성을 알아가고 그 조각조각들을 사이좋게 나누어 갖는 과정을 말한다.  무지란 어느 한
사람이 자기의 두 영혼이 현실의 벽 안팎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지 못하고 그 벽을 타넘고 우왕좌왕
함으로써 대화 상대방의 영혼들과 현실의 벽 언저리에서 자꾸 부딪히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영혼들과
의 대화는 끊임 없이 충돌한다. 이런 영혼들의 사랑은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우리의 대화란 현실의 벽을 훨씬 뛰어 넘거나 혹은 오히려 그 안에서 안주할 수
있을 때 원만히 이어진다.  우리의 두 영혼이 서로 사이좋게  소유와 존재, 미련과 집착, 용서와 포용, 
양보와 희생, 연민과 질투... 이런 속성들을 한 조각 씩 욕심 없이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각자 선천적으로 그러하지 못하다.  그런데 대화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두
사람이 한다. 그러니까 영혼으로 말하자면 네개 이상이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누군
가와 성공적인 대화를 원한다면 서로에게 놓여져 있는 그 현실의 벽에 대해 그 높이와 길이를 짚어 주
어야 한다. 느끼게 하고 인식하게 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을 원하고 사랑을 원하거든,  현실의 범주 안에서 서로의 인식을 같이 하
며 대화할 수 있는 그 수단, 채널을 서로 부단히 발굴해 내야 한다. 생각 외로 이것은 가장 큰 하나의
숙제이다. 어쩌면 아주 독특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의 벽을 완전히 뛰어 넘어 비현실의 누리에
서 뛰어 노는 것도 한가지 환상적인 방법이기도 하겠다.   어쨌든 그 어느 쪽이든 두 사람,  그러니까
네개의 영혼이 갈등과 번민의 고리를 만들지 않고 서로 사이좋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어느 영혼 하나라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현실에 부조화 되어 밖을 동경하고 염원
한다거나 혼자서 현실의 벽을 넘어 외롭게 떠돌아 다니지 않게 해 주면 좋은 것이다.
 
이제 다 됐다. 지금 우리가 서로 진정한 대화를 원한다면,  사랑을 원한다면 현실의 벽 안쪽에서든 바
깥쪽에서든 어느 한 영혼이 어느 한쪽에 머물러서 기다려서는 안되고 발굴된 채널과 수단을 통해 서로
의 영혼에 대한 속성을 이해하고 교통하며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 주어야 한다.  서로 어울리는 영혼끼
리 속성을 나누고 세분화해서 맞는 짝끼리 결합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옳바른 대화란 바로
그런 노력과 시도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움직이는 영혼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지식을 활성화시키는
열정적 승화 과정인 것이며, 사랑하는 두 사람을 현실적 벽 언저리로부터 장애 없이 행복한 대화,  즉
존재, 그리고 나아가 사랑으로 이끄는 방법인 것이다.
 
 
 
 
-'12年 10月 30日
<10월이 다 가고 있다. 우리의 대화가 죽을 때까지 지속될 수 있으면 좋겠다> 


                  


『올겨울 여행계획』
 
 
 
 
올겨울에 
그대는
좋아도 좋아하지 않는 척
보고싶어도 보고싶지 않은 척
오고도 오지 않은 척
하겠다더군
잘했어
어차피 나도 
맨몸에 언 심장 둘러매고
흰 눈 쿡쿡 밟으며
떠나야 할거야
치를 떨며
내 몸의 온갖 뼈마디와 살들이
깡깡 얼어서
덜그럭 소리를 내며,
장송곡 우는
칼바람 불 벌판으로
올겨울에는
아예
빨가벗고
떠나야 할거야
 
 
 
 
-'12年 11月 1日
<올겨울에도 참 추울 것 같다. 역시 나와 행복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여행은, 돌아오기  위
해 떠나는 것이라 한다> 


                  


『플라타나스 젖은 낙엽』
 
 
 
 
내가 형장의 이슬로서 사라진대도
그대는 그저 서 있으리
눈물만 흘리리
내 삶이 죄이거늘
내 존재가 다 죄이거늘
그대는 착하다
슬퍼하지 말거라
그대의 가슴에 가시 박히고
터진 피 올겨울에
꽁꽁 얼어
흰 눈 싸인 너른 들판
내가 죄 다 뒤집어쓰고 죽어 나가도
그대는 마냥 서 있으리
형장에 햇살 들고 바람 일어도
 
 
 
 
-'12年 11月 2日
<또 하루의 아침이 밝았다. 내가 숨쉬고 있는 게 용하다> 


                  


『지난 여름에게』
 
 
 
 
내가 네 덕에 미쳐서 홀딱 벗고 노느라
그동안 글도 못 쓰고
일기도 못 쓰고
인간도 못 되어 살았다
까불었다
용서하거라
어젯밤에는 옆구리에 찬 바람 솔솔 불더라
손발도 시리더라
이제라도 정신 차려서
가슴 어루만져 주고
얼굴도 쓸어주고
눈도 가만히 들여다봐 줄게
내가 네 덕에 미쳐서 홀딱 벗고 노느라
그동안 글도 못 쓰고
일기도 못 쓰고
인간도 못 되어 살았다
어후, 정말 미안하다
 
 
 
 
-'12年 11月 2日
<또 하루의 아침이 밝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하다> 


                  


『나눔과 버림』
 
 
 
 
나의 동철아,
인생은 물처럼 흐르지만 아름다운 것만은 아냐
많은 시간이 아쉽고 허무하기도 하지
저편 동천에 해 지고 나면
물도
바람도
밤도
서서 캄캄하고
아침까지는 아주아주 추울 거야
너는 혼자서
괴롭고 고통스러운
긴긴 시간
우두커니 외롭고 슬프겠지
동철아,
참고 버텨 줘
내 지금 그리로 갈게
아침까지는 내가 그리로 갈게
 
 
 
 
-'12年 11月 9日
<석양이 지고 어둠 뒤덮힌 미호천 뚝방에서> 
 
 
 
       이전 페이지 다음페이지
    
         大韓民國 忠淸北道 淸州市 興德區 社稷洞      "반디의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