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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月의 단상』




5月이다. 
말 그대로 녹색(綠色)의 계절..
만물이 소생(疏生)하고 대지가 태동(胎動)하는 季節이다.
비가 개이고 난 토요일..
힘차고 생기있는 녹색 생명(生命)의 기운을 만끽하며,
살아 있다는 기쁨에 벅찬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어디에 밝은 빛의 출구(出口)가 있는 것일까?
그래, 난 아직 어둡고 긴 미로(迷路)를 헤매고 있다.
그러나 분명, 
그 어떤 빛을 향해 헤쳐나가고 있고
조만간 그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希望)을 갖고있다.

계절의 정지(靜止)같은 긴 겨울이 지나고
마치 언제 그랬더냐는 것 처럼 5月이 왔잖은가.
그리고 푸른 녹색의 환한 웃음으로
달려들듯 나를 반기는게 아닌가!


내가 크게 잘났거나, 또한 뛰어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푸대법 받거나 가치(價値) 없이 떠돌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것 또한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성실(誠實)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忠實)했던 죄밖에..
그리고 어지러운 혼탁(混濁)에 젖지 않고 
기회주의의 득세에서 홀홀단신 뛰쳐나온 죄밖에..

그런 죄로 벌써 꽤 적지 않은 시간을 외롭고
고통스럽게 곤욕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젠 어떻게든 좀 일어서야겠다.
봄의 부축을 좀 받더라도..
그대신 내가 건강해지고 다리가 튼튼해지면
분명히 그 은혜(恩惠) 갚을 날이 있을 것이다.




- '03年 5月의 어느 토요일 아침.
 <'09年 6月 29日 아침에 새로 고침>


                  


『7월에 들면서』




요즘, 한국사회는 잘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좀 시끄럽습니다. 며칠전엔 한 젊은이가 아까운 피를 이라크에서 흘렸습니다.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잘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심지어 옛날엔 간첩으로 취급 받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민주화인사로 평가 되기도 합니다.
근데,
저는 이토록 어려운 우리의 국면에서도 누군가 제대로 된 리더만 있으면
힘의 벡터와 같이 트렌드 있는 우리사회는 제대로 성장할 거로 믿습니다.
다소 시끄럽고 힘들어 보이고, 뭐가 뭔지 잘 모르는 혼란스런 사회로 보이기도 하지만,
전 나름대로 우리사회가 분명한 건설적인 벡터들로 합성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좀 시간이 필요하겠죠.

지금까지 우리는 일사천리로 누군가의 힘의 지배로, 끌고 가는데로 끌려갔었습니다.
그렇게 익숙해진 우리는 요즘에 서서 뭔가 답답하고 울화통이 터질 듯
갑갑해 합니다. 
그럴 수 밖에요. 
그동안 단순했던 우리는 요즘의 복잡한 다양성을 잘 볼 수 없습니다.
근데, 잘 보면 그런게 아닐텐데요...
냉정히 잘 보면
지금 우리사회는 정말 제대로 잘 가고 있지 않습니까?
갑갑한게 아니라 오히려 시원하게 잘 가고 있는게 아닙니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금, 잘 못 가는 것도 없지 않아 있겠죠.
그동안의 낡은 틀을 뜯어내고 새 틀을 끼워 넣다보면, 생각찮던 먼지도 떨어지고
유리가 깨져 땅에 철퍼덩하고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계산했던 것보다 돈도 더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낡은 창을 땜빵이나 하면서, 언제 태풍이라도 오면 어디로 날라가 버릴지도
모를 위험한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 둘 겁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창문 교체의 비용과, 그때 떨어지는 먼지를 치우는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가지고 요즘 참 말도 많습니다.

거창하게 개혁이란 말을 쓴다는 건 다소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어떤 형태로든 우리사회는 이제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고
그것을 바꾸는 과정에서 싫은 사람은 싫은대로, 좋은 사람은 좋은대로 자기 의사와
의견을 마구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소 시끄럽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떤 대중의 백터가 건설적으로 무게중심을 유지하며 흐르고 있다면
우리사회는 발전하는 겁니다.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 '04년 7월 시끄런 나날들...


                  


『택시기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
 



어쩌다 택시를 타면 꼭 느끼는 감정이 하나 있다.

택시기사들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라는 것이다.
그들은 택시를 탄 고객의 기분이나 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늘 격앙된 어조로 시국을 비판하고 세태를 비판한다.
심한 분들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폭언을 서슴치 않는다.

그러면서 그들의 대부분은 교통법규도 잘 지키지 않고
폭주도 서슴치 않으며, 또한 여성 운전자들에 대한 폭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도 늘 똑같다.
자기의 허물은 보지 못하면서 세상의 허물은 모두 싸잡아 험담하는
그들은 실로 우리나라 최고의 애국자이다.
그리고 최고의 정치가이다.




 - '04년 7월 7일 비 오는날
     택시를 타고나서... 


                  


『이 땅에 견공을 사랑하시는 분들께 고함』




이른 아침 산책길에 오르면 늘 만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하얀 백발의 할머니가 약간은 꼬부장한 허리를 들고
예쁜 강아지를 안고 산책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항상 다른 한손에는 작은 비닐 봉지 하나를 들고 갑니다.
이것은 늘 깨끗한 도시를 자랑하는 일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 운동을 위해 거리에 나가 보십시오.
견공을 사랑하는 아줌마는 줄로 이끌지도 않은채
마구 거리를 활보하게 합니다.
어떤 아저씨는 곁에 가기도 무서운 험악한 개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들이 대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 견공의 변... 바로 그 똥!
아무데나 찍. 찍!
견공을 사랑하는 아줌마, 아저씨들께선 좀 보셔요.
일본에선 그 늙은 할머니들도 비닐 봉투를 들고 다니다가
철 없는 견공이 어쩌다 실례를 하면 반드시 수거해 갑니다.

이것이 늘 깨끗한 일본의 도시와 시청 청소부 아니면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우리나라 한국 도시의 현실적 차이입니다.
이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인격적인 차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견공을 사랑하신다면
진작 그런 것 부터 잘 좀 다스려 주시죠...




- '04년 7월 17일, 아침운동길에서


                  


『올림픽 축구.. 드라마 아닌 인생의 한 단면』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습니다.
그래도 더워서 밤잠 이루지 못하는 것 보단 좋은 것 같구요..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가 8강에 올라갔습니다.
0:3으로 져 모든게 다 끝나버렸다고 포기할 만도 했지만
끝까지 노력한 결과와 운도 따랐으니
그렇게 일이 잘 된것 같습니다..^^

인생의 한 단면인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모든게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막막하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좋은 교훈이 된 것 같습니다.

한국축구 화이팅!! 
 



- '04년 8월 18일, 축구가 살맛나게 할 때


                  


『꽃샘도 사랑이라면..』




그래도 봄이 오긴 오는가보다.. 생각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꽃샘추위는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 기온은 제법 차다.
감기에 조심해야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살아온 삶이지만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마치 거울을 들여다 보듯 내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횟수가 늘어 갈 수록
얇고 보잘 것 없었던 것으로 분명 각인이 되었는데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거리에 돌아 다니며 하늘의 뜬 구름을 ?던 어느날
가만히 발 밑에 분주히 줄지어가는 개미들의 행렬이라도
볼 수 있다면
보잘 것 없는 내 모든 치부가 그렇게 밉지만도 않다.
삶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 아내를 사랑한다면
나를 반영한 내 아이조차 사랑할 수 밖엔 없지.

꽃피는 봄이 오지만
바람은 더욱 건조하고 황사와 꽃가루에 어쩌면 눈도 맵고
코도 간지럽겠지.
그리고 오늘과 같이 꽃샘도 있겠지.
그래도 늘 오는 봄과 같이 황사도 좋고 꽃가루도 좋다면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벚꽃 조차도 좋아 질거야.

그렇게 삶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 아내를 사랑하고
내 아이를 사랑하면 되는 거야.




-꽃샘이 온 '05년 3월의 어느날에-
 


                  

 
『사랑한다면 절교할 줄도.. 』
 



이미 27년전의 일입니다.
대학시절 인가요?
서울에 지하철 1호선이 생기고 
문화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필요로 하던 시기였죠.

알고 지내던 여학생 친구가 있었습니다.
참 착하고 예쁜 여학생 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착하고 예쁜 여학생이
문화시민으로서의 소양을 망각한채
지하철 정기권을 부정으로 위조해 사용해 왔고
당연한양 제게 자랑했습니다.

당시는
그런 부정쯤은 저질러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정도의 잘못은 아양으로 봐줄 수도
있었던 세상이었다고요...

그런데 문화시민으로서의 소양이 필요한 시기에
남의집 호박을 서리하면 
크게 혼나고 경찰서에도 갈 수 있는,
그런 챙피한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저는,
그런 여학생의 그 당연한 생각에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다시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뭐겠습니까?  .. 절교라는 거죠.
저는 문화시민으로서의 소양을 더 사랑했거든요.

어제는 식목일 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심지요.. 심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선 여기저기서 불을 내고 있었습니다.
고성에서, 양양에서, 서산에서, 제천에서...

뭐 그 산불이 모두 실화라고 하진 않습니다.
자연발화 이거나 방화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대부분
담배불이나 무심코 놓은 불로부터 생긴거지요.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불을 지니고 다닙니다.
담배도, 라이타도, 빠나도...
그런 무시무시한 화력 무기를 너무도 꺼리김 없이
지니고 다닙니다.

진정으로 산과 자연을 사랑한다면
불과 절교해야 합니다.
담배도, 라이타도, 빠나와도 절교해야 합니다.
산행의 맑은 공기를 사랑한다면
산상에서의 보다 맛있는 도시락을 사랑한다면
그들과는 분명히 절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의 이러한 주장에
맞불을 놓는 분들도 있습니다.
맞지요.. 그 말이 맞지요, 그러나 그런 비현실적인
주장이 어딨냐며 말이죠.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습니다.
저는 깨끗한 물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좋아하고
발도 담그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데
그 깨끗한 물엔 고기가 살지 않아요.
제 주장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묵살하진 말아주세요.
소수의 의견과 주장도 끌어 안고 인정하는 모습이
진정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큰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산과 자연을 사랑합시다.




- '05년 양양의 대화재를 보며 - 


                  


『봄볕 쏟아지는 5월1일에...』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라 해서, 쉬는 날이다.
모 대학에서 특강요청이 있어서 오전에 강의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늘 일에 파묻혀 살던 젊은 시절엔, 가정에는 좀 소흘하긴 했어도
아이들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으리라 자신 했었다.
경제력 닿는 대로 잘사는 집 못지 않게 아이들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해를 거듭할 수록, 그리고 전과 같이 죽자하고
일에만 파묻혀 있지도 않고, 오히려 아내가 미안하도록 집안 일에도 정성을 다하며,
나름대로 매사에 열심인데도...
가끔 남보다 뒤쳐져 있는 내모습과 보다 보잘 것 없어진 내 자신을 보며...
가끔 한숨을 짓는다.
그리고 답답한 이 가슴을 뭐라 말로 다 할 수 없다.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왠지 자신이 없음을 느낀다...

사무실로 오는 가로수 길에 따사한 봄볕을 받아 푸르름이 강하게 맺혀옴을 보았다.
계절은 어김 없이 올해도 봄을 가져다 주고
어김 없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오겠지.
바람이 불면 쓰러지지 않으려 눈을 감고 버텨 보기도 하고
비가 오면 우산을 받고 여전히 뛰어 가겠지.
그렇게 해 왔듯이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난 인생이 그렇거니 하며
살아 가겠지.

그런데, 이 봄에 왜 난 이렇게 착찹하고 기운이 없는걸까?
뭘 향해 가는지.




- '05. 5월 1일에


                  


『건강검진, 그리고 죽음과 삶』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습니다.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 생활도 규칙적으로 하고 있어서
아직 의심이 되는 곳이나 건강에 대한 불안은 없지만
그래도 늘 건강검진을 받고 그 결과를 받을 때마다
'휴~'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아버지는 폐암으로, 어머니는 췌장암.
그리고 고모, 외삼촌.. 모두 암으로 일찍 보내드린
저로선 암이란 정말 무겁게 느껴집니다.

죽음은 생생한 공포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을 감다
죽을뻔한 적이 있습니다.
수영 미숙으로 깊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면서
'아! 이제 죽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지나가던 어른이 저를 발견하여 살려주셨고
저는 지금도 그때의 그 공포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전혜린(1934~1965)은 죽음을
암흑의 심연 한가운데에 유배된 심정,
천정과 벽과 모든 대상이 무한한 파안으로 떨어져
가버린 공포감이라 했습니다.
그녀는 31년의 짧은 삶 속에서 늘 죽음의 공포에
젖어 산듯 합니다.

삶은 사랑이라 합니다.
Erich Fromm(1900~1980)은 노동과 '생산적 사랑'에서
존재(To be)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자기자신을 잘 아는 것, 상대방의 마음의 중심에 있는 것.
바로 그것을 생산적 사랑, 삶으로 여겼습니다.

사랑하십시요. 우리는 생활 속에서 
단명한 혜린처럼 늘 주검을 앞에 두고 
일생을 죽음의 공포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사랑에서 존재한 엘리프롬도 있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1년에 한번씩은 건강검진의 결과에 안도하면서
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보듬으면서 가까운
주변을 둘러 보며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 '06년 초가을의 어느날 - 


                  


『禁火伐草之期에.. 』
 



禁火伐草之期.

아버지와 어머니 산소는 공원묘지에 모셨기 때문에 별도로
벌초를 할 필요는 없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큰할아버지, 증조부모의 산소에 대한 
벌초를 동생들과 한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점심때면 벌초를 마칠 수 있는데,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서 소풍 나온 기분으로 점심을 먹는다.
꿀맛이다.

나이 아래 사촌 동생들이 제초기를 돌려 베고 있을 때
나는 낫으로 풀을 벤다. 
나는 어려서 부터 농사일과 같은 힘든 일을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낫질은 매우 서투르다.
그래도 낫질은 어렸을 때의 강한 향수와 추억을 제공한다.

초등학교와 중학시절 우리의 시골학교는 늦여름이면 언제나
퇴비를 해야 했다.
늘 농사를 지으며 그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샌님들은 퇴비 때만 되면
늘 한바탕 곤욕을 치루어야만 했다.

정해진 개인당 목표 달성의 여부는 실과 성적에 반영되었고,
그 반영 여부의 문제와는 별도로 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야만 했다.
익숙하지 않은 낫질에 손을 베이는 것이 일쑤였는데 
보다 못한 어머니가 나서서 늘 끝 마무리를 해 주셨다.

그래도 그때에 땀을 흠뻑 흘리고 난 후의 아름다운 휴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자립심을 키우신다며 거들떠 보시지도
않던 아버지와, 안타깝게 지켜보다 결국 아버지 몰래 나를 도와
주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이제 내가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를 지나
부모와 조부의 산소에 그 익숙치 못한 낫질로 벌초를 한다.

벌초를 마치고 나누는 음식의 달콤함도, 땀을 잔뜩 흘리고 난
후의 그 시원함도 옛날 아버지와 나누었던 그 시절 그때의
것과 별반 다름이 없는데 말이다.




- '06년 9월 15일 -


                  


『일만원의 경이로운 세상』





일생을 살며 우리는 스스로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다만 듣거나 읽어서 알고 지내는 일이 많습니다.
이것들을 우리는 일종의 지식으로 알고, 남이 체험한 단편에
만족하거나 자신의 페러다임으로 포장해 제것으로 합니다.

보다 더 전달매체가 다양화 된 현대에 있어서 우리는,
tv에 각인된 천편일률와 인터넷과 같은 강력한 파급성의 위력 앞에서
사물에 대한 가치 판단에 있어 각자의 독창성을 포기한지는
이미 오래의 일입니다.
감각은 후퇴했고 처리능력도 퇴화 했습니다.

오늘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까닭은,
내가 생각해도 아주 돌출적이고 의외의 것에 있습니다.
아침 7시에 실내체육관 앞에서 내장산行 관광버스를 탈 때까지
아니, 그런 계획을 갖기 전에 가졌던 내 패러다임을 생각하는 한
결코 감지할 수 없는 것으로서...

땀을 비 오듯 쏟아낸 산행 후에는
남들처럼 시원한 막걸리도 한잔 하고, 운전의 부담 없이 집에
돌아 오는 것도 하나의 바램 이었다면 하나의 바램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광고지의 안내에 따라 몸을 맡겨 보는 것도?
언젠가 메스콤에 시끌시끌 했던 '묻지마 관광' 같은 건 아닐까?
라는 걱정도 호기심도 가지며,
일만원에 모든게 OK!, 경비도 저렴하고 편한데...
그렇게 가 보고 싶었습니다.

곱상하지만 약간 빤질빤질해 보이는 안내원의 자기소개는
예의는 있지만 왠지 닳고 닳아 속이 훤하게 들여다 보입니다.
31명의 탑승자 중 반 이상은 육칠십대로, 팔십 할아버지도 보입니다.
할머니도 계십니다.
아이쿠! 오늘 뭔가 잘못한 결정인가 보다, 바로 후회가 됐습니다.
그래도 더러 사오십대도 있는 것 같아 안심해 봅니다.

버스는 약속된 시간을 정확히 출발 했습니다.
버스가 터져라 고함치는 빠른 트로트 곡이 고막을 찌릅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는 어떠한 곳에도 세상의 보편적 이치는 있는 법.
오늘 내가 뭔가 평소와 다른 어떤 삶을 경험 하게 되더라도
잘 수용하고 극복 하리라...
이렇게 다짐까지 해봅니다.

오늘 목적지는 내장산. 
중간에 협찬사 투어와 '강경 젓갈' 산지를 경유해 간다는 안내가
나옵니다.
회비 일만원에 그런 협찬사와의 연계 작용이 있어야 관광사도
유지가 가능하리라 라는 생각을 하며 강경에서는 김장용 새우젓이나
좀 사 보리라 맘 먹어 봅니다.

버스는 대진고속도로에 들어 추부라는 곳에 들어섭니다.
금산인삼축제에 공식 참가했다는 모 고려흑삼 공장에 버스를 댑니다.
흑삼의 성분과 효험에 관해 담당 이사라는 분께서 자세히 설명합니다.
대게 남자는 나, 여자에 대해서는 우리 아내의 경우가 다 해당합니다.
그리고 브랜드 있는 메이커의 제품과 비교한 장점과
왜 이런 방법으로 판매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합니다.
그리고 난 후에 10개월 분할로 구입할 것을 권장합니다.
맛도 보게하고 선물도 줍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 중 두분이 계약을 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안내원의 똑 부러지는 일정안내에 40대 아저씨 한분이
체념하듯 예~하고 대답합니다.
대전을 향해 거꾸로 가던 버스는 호남고속도로로 고쳐 탑니다.
이번엔 논산에서 내립니다.
열악한 농축산업자가 모여 어렵게 이끌어 간다는 법인체의 협동사슴농장
이랍니다. 
거침 없이 늘어 놓는 녹용의 성분과 효험에 절로 고개를 끄떡이게 합니다.
외국산과 직접 기른 사슴의 뿔을 비교하면서,
정부의 축산업 지원책과 한약제 관련법까지 들먹거리며
미끄럽게 10개월 분할로 구매할 것을 권유하는 빨간 입술의 그 이사님의
설명에 녹아들 듯 매료됩니다.

누구든지 사지 않고는 안될 것 같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꼭 이런 녹용을 사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의 건강을 위해서. 예쁜 손자의 몫까지.
그때 아내는 끝내 그걸 닳여 먹지 않았습니다.

오늘 버스를 탄 일행 중 어느분도 녹용을 사신 분은 없었습니다.
안내원의 꾸지람 섞인 투덜거림과 함께 버스는 강경에 이릅니다.
커다란 젓갈 매장에 약 백여명분의 식탁이 차려져 있습니다.
갖가지 젓갈과 김치, 그리고 동태국 한그릇에 밥 한공기.
시장이 반찬일 때와 젓갈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마 진수성찬입니다.

점심을 먹고 난후에 나는 새우젓을 한병 샀습니다.
유명한 젓갈 산지인 강경에서 혹시 국산이 아니면 어쩔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면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진열대가 깨끗하고 상품도 다양하니 보기 좋은게 맛도 좋겠지 해서.


내장산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시반이 되었습니다.
짧은 코스 하나라도 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몇몇 40대가 출발시간을
안내원과 타협 합니다. 4시반까지 3시간을 받습니다.
그들의 틈에 끼어 나도 뛰듯이 산에 오릅니다.
숨이 목젖까지 턱턱 차 오릅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내장사는 볼 것도 없이 3시간만에 버스에 되돌아 오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몇개의 봉우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불출봉'을 택했습니다.
산은 가팔랐습니다.

우리는 4시반을 좀 넘어서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봉우리 하나를 오를 수 있었다고 안도합니다.
우리 40대중 한 사람이 미안하다며 막걸리 한병을 내 놓습니다.

안내원도 수고 했다며 소주 몇병을 풉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자원봉사로 술도 돌리고, 안주도 돌립니다.
스피커가 찢어지도록 빠른 트로트가 심장까지 두드립니다.
80이 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몸을 흔드십니다.
40대 아저씨도, 60대 아줌마도, 70대 할아버지도 일어나 춤을 추십니다.
땀을 흠뻑 흘리며 숨을 헐떡이며 춤을 추십니다.
소주 한잔에.
세어보니 모두 31명중 14분이 일어나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엔,
창밖의 노란 가을 풍경이 나는 네가 아니라는 듯 멀어져 갔습니다.
숨가쁘게 짖어대는 음악 소리는 엇갈린 운명처럼 나를 밀었습니다.
그런데 창밖에 어둠이 깔리고 거리에 하나둘 조명이 커지면서
저렇게 흰머리를 하고서 왜 저분들이 저렇게 몸을 흔들까?..가
이해 되기 시작 했습니다.

저분들은 
내가 왜 시간을 어겨가며 산을 오르려 했을까를 아시려 했을까?
처음에 내가 미안 했듯이 그들도 미안해 할까?.. 그랬는데,
그런 것들도 서서히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남이 생각하고 남이 행동하는 사소한 일에 대해 언제부터 그렇도록 험담하고,
비웃고, 나무라고, 간섭하고, 그리고 방해했는가?
그리고 춤이 어때서...
춤이 뭐 그리 나쁜 거라고...

그들은
산오름을 위해서도,
또한 젊은 아들이 꾸지람하는 녹용 인삼을 사기 위해서도,
그 무엇도 아닌 목적 아닌 목적으로 관광버스에 올랐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그들과 같은 세대.
그들도, 나도 춤추고.. 몸 흔들고..  행복해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행복에 겨워 몸을 흔들고 계신다고 보여지는 백발 할머니의 그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그들이, 우리들이 춤추고 놀 곳이 없습니다.
모두 나무라고, 간섭하고, 못하게 하기 때문에.

왜 그런지 사실,
나도 춤바람, 춤... 그런 단어에는 어감이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얀 머리의 80대 할머니, 
다 늙어 세상에 더 이상 그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그 할머니의
그 춤을 보셨나요?
그분의 열정, 그분의 터질 듯한 힘은 아직 청춘, 푸른 청춘입니다.
거기에 바로 아름다운 가치,
내가 늘 말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일만원에
너무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것을 보았습니다.
또 하나의 그 고귀한 존재로서.
그리고 아직도 고막에 잔상으로 남아 터질 듯 거리는 내 귀청의 울렁 거림이
그 젊음 보다 못한 내 늙음과 섞이지 못한 단편적 패러다임과 용기 없음을
스스로 책망 합니다.

책으로 읽고 남의 말로만 들은 것을 지식으로 했건만,
녹용도 사고 인삼도 사다 주셨던 늙으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미 아니 계신
지금에야, 어머니의 그 자식 사랑을 이해합니다.

콜라텍에 가 콜라 한병에 몸을 흔들고 들어와야 살 것만 같다고 하셨던
우리 아파트 윗층의 한 할머니 한분이 며느리 처럼 예쁘다던 우리 아내에게만
살짝 고백 하셨던 그 순박 하심을 나는 이제야 정말 이해 합니다.

그래서 체험은 설렘과 갈등을 수반하고도 고귀합니다.
비록 독창성은 없다 하더라도 더 이상의 단편, 더 치졸한 패러다임은 
없어야 하겠기에.
감각과 처리력을 재활할 수 있도록.
오늘 일만원의 경이로움과 함께.




- '06년 10월 20일 내장산 버스관광을 마치고 -


                  


『행복』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고통입니다. 
아니, 불행입니다.

잠을 못자는 이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일상의 흐름이 불규칙한 패턴을 생성하고
느낌은 없지만 현실을 둘러싼 가위가
대체로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에 돌출한 원만치 못한 예민함과
어지러운 일상에 통제 당하는
허약함이 잠을 못 찾게 합니다.

잠의 불행 앞에 처참한 벌거숭이 입니다.
책과 tv를 보기도 하고, 
운동도 해 봅니다.
따뜻한 우유를 마셔 보기도, 
라면을 끓여 먹어 보기도 합니다.
모로 눕기도, 
바로 눕기도 하고
숫자를 헤아려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암흑의 짓누름과 
멀리서 퍼져온 차가운 외마디 소리는 
외롭게 째칵거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에 
더하고 증폭되어,
평소 문제 되지 않았던 사유로 몰려와
논문도 쓰고, 
소설도 짓고, 
해명도 하고...
그리고 설교도 합니다.
벌떡 일어나 다짐도 합니다.

하지만
하얗게 불 밝혀 
몇번이고 고쳐 쌓은 공든 탑들은,
해가 뜨고,
일상의 순환이 새롭게 시작되는 아침이면
늘 그렇게 하얀 소리를 내며 
여지 없이 사그러져 버리곤 합니다.
허망하고 나약한 속성일 뿐입니다.

이를 갉고 
눈을 부릅뜨고
이번엔 꼭 해 내리라 맘 먹었던 
증오도, 
욕설도, 
아니 용서마져도
그 앞에 서서 
해맑은 웃음을 보면서는
어이 없게도
황망히 뒷걸음을 칩니다.
그렇게 불행한 밤은 이어집니다.

*

나는 꿈을 잘 모릅니다.
꿈을 꾸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꿈 꿀 겨를 없이 건강하여
정말, 너무도 잘 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탕처럼 달콤합니다.
아니, 행복입니다.

머리와 눈은 
차고, 맑고
몸과 마음은 날개 단 듯 가볍습니다.
출근길 시야는 넓고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밉상스런 그가 용서 되고
포용과 풍요로움에 여유롭습니다.
근심과 걱정은 없습니다.

잠의 행복 앞에서 
과음과 일탈에 머물 수 없도록
적절한 운동과 건전한 사유로 몸과 마음이 자유롭게,
절대자의 사랑일 듯
그의 순결한 속삭임일 듯
강력히 복종합니다.

*

삶은 도전과 소유라 여겼습니다.
꿈은 꾸지만
밤은 외롭고 하얗습니다.
머리에 기계음을 달고 살았습니다.

삶은 창조와 존재입니다.
꿈도 꾸지 않고 
밤은 없습니다.
머리에 상쾌함을 달고 살고자 합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 '06년 10월 25일 행복한 아침에-


                  

 
『능력의 70 퍼센트만 가동하라』




왜 산에 오르는가?

"보고, 듣고, 느끼고, 움직이는 즐거움이 나를 산에 오르게 만든다" 
가을 아침 영롱한 이슬처럼 인생을 말하다...
산이 있으므로...

"등산은 자신을 극복하고 정상이라는 목적지까지 무사히 다녀왔다는 
존재의식에 있다" 
산악인 허용호씨의 대답이다.

아이와 산에 올라 보면, 아이는 정상에 무엇인가 신비한 것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몸 가벼운 아이는 그래서 뛰는 듯 산에 오르고,
아무 것도 벌어지지 않는 정상에 올라 늘 실망을 토한다.

젊은 초보자들도 그렇다.
자신의 체력과 지형 따위와 관계 없이 투쟁하듯 단숨에 산에 오른다.
꽃을 피우는 내음도 녹음의 신선함도, 그리고 낙엽이 지는 그윽함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내려오는 길은 지쳐서 무거운 다리를 끌기 일쑤다.

등산은 흔히 '삶의 방법' 이라고 한다.
등산이란 결국 등반시 닥치는 어려움과 높이를 이겨내고, 
자신을 극복하는 존재의식의 행위로서
신체 조건에 맞춰 오르며 산행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들은 매일 밤새워 일하고, 목숨까지 바친다.
그런데도 그들은 언제나 꼴찌이거나 겨우 낙제를 면한다.
납기에 쪼들려 최상의 제품을 내 놓지 못한다.
그들의 주변은 시끄럽고 요란하고 복잡하다.
그렇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늘 거칠거칠하고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다.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올인의 인생에 그들의 존재는 없다.
인생이란 원래 고통스럽고 힘든 것, 
산을 정복하듯 하나 둘 소유해야 겠기에.

속도를 내고 빨리 가기만을 추구하는 운전자는
어떻게든 상대방을 추월하고, 앞을 가로 막는 운전자를 욕한다.
그러나 그들은 늘 교통법규 위반 딱지나 떼이고
사회 존재를 부정하거나 인류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한다.
200퍼센트 최선을 다했다지만 결국 경쟁에 패한다.
앞만 볼 줄 알지 주위를 볼 줄 모른다.
도전한 목적지에는 뭐라 신비로움이랄게 딱히 없다.
공허할 뿐이다.

능력의 70퍼센트만 발휘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 그는 놀기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하고도 늘 1등을 하거나 최소한 상위권에 든다.
마치 숨어서 일하듯 눈에 띄우지도 않는다.
그의 주변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간결하다.
영롱한 이슬 처럼 신비롭다!!
그는 어떤 일이든 대수롭지 않은 일로서 어렵지 않게 해낸다.
늘 밝고 활기찬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산다.
존재하는 그에게 정복이란 없다.
존재의 여유로움이 행복에 겹다.

아이큐 140 친구는 남들 처럼 죽어라 공부하지 않는다.
그는 밖에 나가 공도 차고 연인과 영화도 즐긴다.
수업에만 충실해도 1등을 하고 훌륭한 대학에 입학한다.
그는 사회에 불만하거나 인류가 공평하지 않다고 투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한 만큼, 결과에 만족할 뿐이다.


사는 동안 우리는 삶의 어려움과 깊이를 이겨내고, 
자신을 극복하는 존재 행위로서 태생적 조건과 환경에 맞춰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낙엽도 쓸고 눈길도 치우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기 능력의 모든 100퍼센트, 목숨까지도 다 소비한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기 능력과 환경의 70퍼센트만을 가동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나머지 30퍼센트를
능력 확장과 환경 개선에 투자할 수 있음에 있다.

높은산을 오르든 낮은산을 오르든 숨차고 힘든 건 언제나 똑같다.
낮다고 무시해서도, 높다고 겁 먹을 필요도 당연히 없다.
능력 확장과 환경 개선에 투자하라.
투자를 위한 태생적 조건과 환경의 절대값은 없다.
이이큐 140 친구는 하나의 이상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이미 아이큐 140이다.
남겨 두었다 쓸 수 있는 여유로움이 곧 진정한 최선이다.

일의 성취와 삶의 행복은 양과 속도에 무관하며 다만 존재에 있다.
등산에 있어서도 삶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 자기 능력의 70퍼센트만 적극 활용하라.




- '06년 11월 1일 아침 -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상쾌한 가을 아침입니다.
이슬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출근길이 새롭습니다.

70년대 우리 학교에서는 '성실, 정직, 근면'을 
최대의 지혜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우리의 학창시절에 '난사람, 든사람, 된사람' 을
배웠습니다.

수년전 나는,
성실과 정직, 그리고 근면으로 살아온 지혜의 덕목이
실패와 낙오, 패자의 울부짖음 만을 낳는 현실에서
실망과 넉두리를 한 적 있습니다.

자라나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분명 지금 우리의 사회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더이상 성실, 근면, 정직 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창의적이지 못하고, 진취적이지 못해 
배운것 만을 답습하는 것으론
진정 살아 남을 수 없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정복, 투쟁, 쟁취..를 미덕으로 가르쳐야 할 것인가.
비성실, 비근면, 비정직에 합당한 새로운 단어를 찾아야
될 것인가.

경제적으로 남보다 잘 살기에 성공하고
사회에서 '난사람'이 되고
태산 등정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아니 그것에 실패하고 
비록 낭떨어지기에 속했다 하더라도

진정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실패자, 낙오자의 전유물로서 넉두리가 아닌
생각해 보는 이 가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번주엔 아버지 어머니 묘소엘 가 뵐까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 '06년 11월초 가을아침 - 


                  


『망설임』




굽이굽이 산길 돌아 
채 아침 햇볕 
아무도 오지 못한 논두렁
멀리 산자락 시골집 노란 은행나무가 병풍(屛風)에
가을처럼 선명합니다.

24년만의 광주(光州)입니다.
첫 세상 내게
완전군장 철모 쓴 적벽(赤壁)유격장에서
젊음과 용기를 건져 준 곳입니다.

이제 가버린 상무대(尙武臺) 자리
세월의 냉엄함과
나의 미숙한 지역관(地域觀) 까보이듯
흙먼지 날리는 추억 뒤로
환골(換骨) 광주가 우뚝 서 있습니다.

나의 존경하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시종무변(始終一貫) 깨알 글씨와
선명한 청주교도소 봉함엽서(封緘葉書)에
숭고한 민주역사의 상처 감은 듯
그의 숨결 배어 납니다.

문득 발길 묶는 야외콘서트에서
곡목 알 수 없는 소프라노 음률 그 슬픔처럼
24년 이방인(異邦人)의 망설임은
역사 광주의 단호한 눈물에
곱게 손을 내밉니다.

도대체 이기적(利己的) 아니면
무엇으로 연명(延命)할까.
병풍 뒤에 숨은 통념(通念)들이여!
손을 내어 잡으라.
숨결 느끼고 환골에 함께하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논두렁에 은행나무에
저기 광주가 있습니다.




- '06년 11월 10일  이른 아침에
   대한민국지역혁신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와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 연석협의회가 열리고 있는 화순금호리조트에서 - 


                  


『새해에는 사랑, 행복, 건강..』
                   



난 공기가 되어
자네와 함께 있다.
자네와 함께하면
내가 숨 쉴 수 있다.
그것은 사랑이다.

난 바람이 되어
자네 옆을 스치고 있다.
자네 옆을 스칠 때
자네의 숨결을 느낀다.
그것은 행복이다.

자네와 난 나무가 되어
우리 뒤에 서 있다.
자네와 내가 받치고 있을 때
우리의 심장은 끓어 오른다.
그것은 건강이다.

마을 어귀에 휘몰아 도는 바람에도
동트는 새? 공기가 싱그럽다.
푸른 소나무 가는 솔잎 사이로
또 한해
새해를 맞이한다.




- '07년 1월 1일 아침 -


                  


『장마[梅雨]』 
 



나는 이 장마철이 좋다.

드세지도 않고 허약하지 않은 모습으로
잔잔히 다가오는 빗소리가 좋다.

저녁무렵 은은한 달빛처럼,
나즈막히 깔린 거리의 불빛을 따라
촉촉히 끌려가는 차소리가 귓전에 좋다.

발밑에 젖어오는 빗물은
삶에 찌들은 일상의 뜨거운 열을 식히고,
우산 밑으로 눅눅히 베어드는
스산함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다리 밑을 내려다 본다.
종일 내린 장맛비가 온 세상을 힘차게 흐른다.
메이고 걸려있던
세상의 시름들을 말 없이 씻어 주고 있다.
가슴이 환하게 기쁘다.

그래서,
난 이 장마철이 좋다.




- '07년 장마가 시작된 어느날에-


                  

 
『일탈』




가끔
일상(日常)의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내 죽음과 같은 숨통에서 구출해 주는 것이 일탈(逸脫)이다.

겨울 마른가지 툭 뿌질러,
아직 채 녹지도 않은 양짓녘 뒷곁에서
냉이며 달래며 그린이 케어보는 것이 일탈(逸脫)이다.

여름 어느날,
벌거숭이 멱감고 돌아오는 시냇가 별빛 들녘에서
양손 가득 외오이 집어 들고 집에 오는 길
살갗에 스치는 그 그리움이 일탈(逸脫)이다.

일탈(逸脫)은 가슴 벅찬 행복과 같다.
뭉클한 설렘이다.

그러나
일탈(逸脫)은 작은 것이다.
남 몰래 숨은 소담한 신비의 것이다.

그리고
일탈(逸脫)은 두려움이다.
긴장과 회의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상(日常)의 궤도를 다시 찾게 해준다.

되풀이 되는 것은 일탈(逸脫)이 아니다.
일탈(逸脫)은 그저 단 한번의 것이다.




- '08년 음력설날 아침에 


                  


『삶이 힘들어도』




청주 무심천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집에 업무를 달고가 결국 새벽 3시까지 일손에 부대끼다,
아침술 겨우 하나에 몸싣고 출근하는 길이다.

말 그대로, 계절은 어김 없고 숨김 없이 살아 도는데
우리의 삶은 왜 이리 끝도 없이 힘들고 까다로울까.
아직 마음의 벚꽃을 못 피웠다는 친구의 메세지가 굿모닝~한다.
무심천(無心川) 벚꽃도 이제 그 틈을 열었는데.

새벽녘까지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림이었을 뿐.
그래도 어렵사니, 되었다니 다행이다.
이렇게 힘든 삶을...
하얀 무침천 벚꽃이 얕은 바람에 살랑거린다.




- '08년 4월 5일 한식날에.


                  


『요 며칠 밤바람이 찼습니다』
 



요 며칠 밤바람이 찼습니다.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과 배꽃마저도
그토록 올봄 뜨겁게 시작하더니,
이게 뭡니까?

날 거듭해 피식 시들해,
춥고 스산한 연일입니다.
도처의
괴성과 아우성 처럼...

뭐랄까 살겠다고 
꾸역꾸역 마른 빵 입안에,
숨 죽이며 
'밥 먹었니?' 
합니다.

오늘 봄볕이 흐릿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난 이렇게 다행입니다.




- '08. 5월 16일


                  


『정말 행복하기에』




느끼고 깨닫고, 
그리고 바꾸어 행동할 수 있기에
그래서 행복합니다.

지금의 나는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고 깨닫습니다.

아내의 눈빛이 예쁘고,
아침밥상 청국장 하나에도 감사를 느끼며,
'오늘 눈이 참 예뻐요...'
다정하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된 것이
정말 큰 행복입니다.

주말에 우리 부부는
예전과는 달리, 함께 행동합니다.

우리의 아침에 땀이 흐르고,
파쓰리 골프장 홀인원에 탄성을 지르며,
'우리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웃음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작지만 행복입니다.

삶이 끝나고 나서도
예전과 달리 오늘 만큼만 행복할 수 있다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보다 더 열심히 깨닫고 바뀌겠습니다.




-'08년 10월 
  '쇠고기파문' 사회현상을 느끼며. 


                  


『그리움』




세찬 겨울 오이도
바람 늘 그리 차시고,
주검에서도 구걸 않던 아버지.

소래포구 염전 아득히 걸어와
한 없이 보듬어 주시던 어머니.
자식 앞에 눈물 보이며,

가신 날이 어제와 같다.

노여움과 사랑 그 하룻밤,
패총 너머 갯바람 세었어도
견딜 만 했고,
노을녘 염전두렁 그윽함에
맨발 젖었어도 
알 만큼은 알았었다.

아! 벌써 30년,
하나 화폭에 담았던 오이도
짠내 소래포구 어부의 고함도
필름 처럼 영상이 되어,
아버지 그 자존심과
어머니 그 따뜻함 처럼
가버렸구나!

조금만 더 주고 가시지...
그저 한번 만 지셔도 되었거늘,
난 아직 응석의 그대론데.




- 오이도와 소래포구 지나던 '06년 어느날,
  그 변화의 참담함을 기억하며 '08년 6월에...


                  


『휴일(休日)』




그대 불러주는 이가 
한사람 있다면
그대 多幸입니다.

어느 休日,
世上과 絶緣해 있어도
다시 그대 불러주는 이
있을테니,
그대 살아 있습니다.
지금.

불러줄 이유 없는
無力한 休日 午後
그대에 無心한 저들이
그대 옆 지날 때도,

그대 숨쉬고 있음을,
누군가는 불러줄 이
믿고 있기에
그래서, 
그대는 延命합니다.

그것이 지금
그대가 사는 理由로서,
힘 솟는 
그대의 生命입니다.

아!
이제 더 나이 들고
世上 絶緣도 길어져
그대 숨결이 뉘엿해도
그대 이름
불릴 수 있다면...
부디 더 延命하소서.




- '08년 6월말 몹시 구름끼고 
  골안개 자욱한 동네 산정에서.


                  


『친구는,』




그렇게 하세요.
친구는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친구가 目標한 바 成就하기를
늘 祈禱 할께요.

그 뒤에 그 어떤 무엇까지도,
친구로서, 거두어 드릴께요.





- '08. 7월초 서울에서.


                  


『約束』




배우는 이와 천부적인 사람과의 것을
우린 서로 비교하지 말자.

배우는 이의 끝 없는 숭고한 熱情이 아름다운 것.

배우는 이의 成就는, 그저 새로울 것 없는
모방의 투박한 通念의 것일 뿐,

또 하나의 것은 그 성취의 뒤에 있질 않니.

그 未知의 것으로
아프기도 기쁘기도 한 人生을 우리가 살잖아.

천부적인 사람의 것은 가진 자의 여유.
그 앞에 서로, 전투 군인일 필요는 없어.

함께 가면 되니까.




- '08. 7월초 어느날,  해도 뜨기 전에 


                  


『전장(戰場)에서』




군의 보병(步兵)이 적(敵)을 향해 공격함에 있어 
기본이 되는 전술(戰術)의 하나로서,
장애물(障?物) 통과요령과 기습(奇襲)의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 우회(迂廻)하라... 
소극적 방법이지만 적에게 들킬 확율이 적고,
아군과 적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우회시 시간이 걸리고 
혹시 다른 장애물이나 복병(伏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둘째, 폭파(爆破)하라... 
가장 적극적 수단이며 속전속결(速戰速決)할 수 있지만,
적에게 들킬 확율이 커서 
아군과 적의 피해가 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넘어가라... 
우회와 폭파의 중간적 장점과 단점을 갖습니다. 
때로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습(奇襲)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적이 예상치 않았던 때에 갑자기 들이쳐 공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보병전술에서는, 
예상해 준비했으되 그 이상의 방법이나 강력한 수단으로 
적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는 것도 기습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군(軍)의 보병전술은 매우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군의 전장(戰場)에서의 지위는,
내가 먼저 적을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저 상식적인 것이 아니라, 
적에 관한 완전한 정보(情報)를 바탕으로 한 
철저한 준비와 주도면밀(周到綿密)한 계산을 수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보병은, 
전장 최후의 일각에서 적과 조우(遭遇)할 때 
무성무기(無聲武器)로 적을 제압해야 하는데, 
단 일격(一擊)에 소리 없이 적을 죽이지 못한다면 내 목숨을
빼앗길 수 밖에 없으므로, 
그 어느 군보다도 대담성(大膽性)과 잔인함(殘忍性)을 겸비한 
고도의 훈련과 강력한 힘의 저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럼,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을 때의 대처(對處)에 관해서도 
방공전술(防空戰術) 한가지를 통해 알아 볼까요?

유사시(有事時) 적의 항공기가 서울까지 진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수분(數分)에 불과합니다.
벌떼처럼 몰려오는 적의 항공기로부터 
어떻게 서울을 방호(防護)할 수 있을까요?
이때 군은, 
무기자유(武器自由)라는 무기체제를 쓸 수 있습니다. 
이 체제 속에서 일시적으로 피아식별(彼我識別) 없이 
하늘에 있는 모든 물체는 적으로 간주되어 무조건 격추 되어야만 합니다.
얼핏 궁여지책(窮餘之策) 같아 보이지만 
개전초(開戰初) 혼란한 상황을 극복하고, 다소의 희생에도 불구한 
가장 효율적인 전술로 보입니다.

보병의 소총(小銃)은 물론, 
방공(防空)의 미사일(誘導彈)에 이르기까지 
유효사거리(有效射距離)라는 것이 있습니다. 
탄알, 포탄, 미사일 등이 발사되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를 말합니다. 
전장에서 군인은, 
위에서 언급한 몇가지 기본 전술에도 불구하고
당황하고 겁을 먹어서, 
보이는 적이라고 아무렇게나 사격(射擊)을 가해 
적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발각(發覺)되어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게 됩니다. 
최후의 일각까지도 유효사거리 이내로 적을 유인해 
정확히 조준하여 일거(一擧)에 적을 섬멸할 수 있는 
침착성(沈着性)과 상대에 대한 심리전(心理戰)이 필요한 것입니다.

*

인생(人生)은 결코 전장에서의 전투가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日常)을 통해 우리는, 선의의 경쟁(競爭)을 합니다.
사람의 목숨과 가장 밀접한 전장을 생각하며 인생(生)을 살아가는, 
색다른 슬기로움을 찾아 봅니다.

인생에서 성취(成就)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치밀한 준비와 정보력으로 한치의 오차 없이 장애물을 제거하고
가공(可恐)할 만한 위력의 기습으로 목표의 코밑에 접근,
단호하고 잔인하게 쟁취하십시오.
아울러
혹여 누군가 나의 성취를 빼앗으려 한다면,
주저 없이 가능한 모든 싹을 자를 것입니다. 
내 아픈 살점까지도.
그리고 그 원천의 중심에 정확하고 깊게
칼을 찌를 것입니다... 

인생(生)을 전쟁과 같이하면 못할 것이 무엇 있겠습니까.
힘내세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것 또한 무엇이 그리 있습니까...
정말... 그 피비린내를 아십니까.




- '07.9월. 충북영동 노근리 전쟁의 상처를 지나며,
   인간은 더이상 인간에 대한 학살을 자행하여서는 안되며 
   그 어떠한 경우에도,
   전쟁이 재발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호박꽃』




잘 생긴 애호박
이슬길 풀섶에, 
다소곳 꽃을 피웠다.

순한 것 놔두고는 
무엇 없는 청순미(淸純美)에,
다 줄 듯 드러난 속살이
오히려 천박(淺薄)해

쉬이여겨 손을 대었다.

에이, 누가 
호박꽃도 꽃이라 하였는가.
톡 쏘듯 그 까칠함에
흠칫, 그만
정(情)이 뚝 떨어졌다.

헛! 고녀석, 참...




- '08.7월 열대야로 
   하얀밤 보내고.


                  


『친구야, 힘내라!』




고교 졸업후 30년 동안 만나는 동창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합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그래도 아직 어린애와 꼭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오랫만에 그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며, 요즘은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전에는 자주 만나 술도 마시고, 
가족 동반으로 야유회도 갖곤 했던 친구들입니다.
하나는 서울, 그리고 셋이 수원에 삽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이 오십을 앞두고 
그들 중 하나는 그런대로 안정적으로 살고 있고, 
둘은 사업에서 실패해 어렵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아직도, 오로지 일에 만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고요.

더군다나 사업에 실패한 하나는 가정 문제도 원만하지 않아 걱정입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어쩌다 가끔 만나는데 이런 저런 어려운 형편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저 안따깝기만 할 따름입니다.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 
우리는 수원의 모 대형 쇼핑몰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청주에서 버스를 타자 마자, 
출발한다는 메세지를 수원의 한 친구에게 보냈습니다.
당연히 도착시간에 맞추어 마중 나올 것을 요구해 두었습니다.

나는 친구를 만난다는 설레임과 차창 밖의 싱그런 푸르름을 만끽하며 
지금은 힘들지만,
곧 친구들이 안정되고 다시 제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다짐해 두었습니다.
우리 고교 동창 친구들은 모두 순수하고 성실하고 착하니까요.

그런데 그 날, 우리는 나로 인해 모처럼 한바탕 다투었답니다.
왜냐구요? 

내가 탄 수원행 버스는 
수원시외터미날에 닿기 전에 몇몇 중간에서 승객을 내려 주는데,
아니 글쎄 이 버스가,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쇼핑몰 근처에서 서는게 아니겠습니까?
얼마나 잘 된 일입니까.
나는 마중 나오기로 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 마중 나올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주고
그곳에서 내렸습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부텁니다.
그러니까 나는 무려 1시간이나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한 것이죠.

아실른지 모르겠는데, 그날도 날씨는 무척 더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쇼핑몰과 같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아주 싫어합니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다소 걱정했지만, 
마중 나오기로 했던 친구가 집에서 그리 걸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일찍 도착 했다는 것을 알테니 
곧 그가 달려 나와, 
나를 맞아 줄 것이라는 기대로, 
땟빛에서, 그리고 찜통속 쇼핑몰 로비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원래 우리 친구들은 고교시절부터 시간 관념이 매우 약했습니다. 
내가 그 시절부터 늘 어쩔 수 없이 한결 같이 알고 살아 온 사실은, 
늦는 친구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늘 한시간 정도는 늦는다는 것과, 
다시는 약속시간에 일찍 가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도 
늘 일찍 가고 마는 나의 모습입니다.

그럭저럭 그 찜통 속에서 한 40분 정도를 기다렸나요?
서울에서 오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그는 한시간 정도 늦는 모양입니다.
아!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뻔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또 우리는 이 모양입니다.
그래도, 
조금 만 더 기다리면 오겠지 하는 기대에, 
마중 나오기로 했던 수원의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지금 오고 있니?"

"응, 이제 출발 할께.."

아니? 이게 무슨 황당 시츄에이션? ...
아니, 이제야 출발 한다고? ...
나는 은근히 울화가 치솟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억양이 좀 올라갔습니다.

"야!, 친구가 시골에서 와 일찍 도착해 있는데, 좀 일찍 나오면 안되니?"

"뭐야, 아직 시간도 안됐는데... 
거기서 좀 기다려라"

"뭐라구? 이 더운 날씨에, 이 나이에 사람 복작거리는 데서... 
넌 배려란 것도 없니? 좀 일찍 나와주면 안돼?!"

"야, 내가 너한테 비지니스 접대해야 할 것도 아니고,.. 
일찍 와 놓고 뭐 그리 큰소리냐?"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해? 너 말 다했어?!"


나 참, 이렇게 시비가 된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사는 수원의 친구가 어차피 마중도 나온다고 했었고, 
또한 한시간이나 일찍 도착 했다는 것이 기뻐서라도
당연히 뛰어 나와 맞아 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한 실망과, 
또 늘 그랬듯이, 
한 친구는 무려 한시간이나 더 늦는다고 하는 그 되풀이에 실망도 스럽고, 
날씨도 덥고, 
그래서 불만을 확 터뜨려 버리고 말았답니다.

솔직히 한가지 더 보태어 말할까요? 
늘 소극적이고 패배자의 모습인 한 친구의 말투와 태도에도 짜증이 났고, ...
친구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나는 화가 나서 쇼핑몰에서 나와, 
요즘은 좀처럼 찾기도 쉽지 않은 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 수원의 또 다른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일러 바치며, 
커피숍의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점심 먹을 장소를 정해서 알려주면 가겠다고, 짜증 내듯 전화를 끊어 버렸습니다.
애꿎게 그 친구에게 분을 돌려 준겁니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약속시간 보다 한시간이나 늦게, 
내 기준으로는 약속 장소에 도착한지 두시간이나 지나서야 모두 모였습니다.

우리는 만난 자리에서  잠깐 핀잔을 나누었지만,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하 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속 좁은 내 마음이,
늘 그랬듯이, 
다음 약속 때는 반드시, 내가 제일 늦게 오고야 말 것이라며 다짐을 합니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생활에서 어려움을 거듭하는 친구와 
날이 갈 수록 흰머리가 늘어나는 친구들을 대하며, 
어린애 처럼 겨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느냐고 스스로 질책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의 그 사정을 정말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돌아오는 청주행 버스에서,

'아직은 짜증내도 그것을 받아 주는 친구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라고... 메세지를 넣었습니다.
물론 그로부터의 답신은 없습니다. 
그것도 늘 그래왔던 것이니까 괜찮습니다...

에이,
이번 만남의 여운은, 왠지 뭐랄까... 너무 씁쓸합니다.

*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도 
변하지 않고 거기서 그렇게 맴돌고 있는 
친구에게...

우린 너무 먼길을 다른 길로 많이 왔구나.
안타깝지만 그 역경 궂이, 
시간 내어서까지 들어 줄 수는 있어도 
손 내밀어 잡아 줄수는 없구나.

비록 우연히 또는 필연으로 
교차점에서 우리 서로 마주 하고 있지만, 
여기서 헤어지면 
우린 서로 멀리, 또 다른 각자의 길을
가야하니까 말야.

친구야.
너는,
다시 잘 할 수 있어... 힘 내라!




- '08년 7월 중순, 수원 영통에서 돌아오며 


                  

 
『나의 색깔은』




섭리(攝理)로 너부러지고 
생태(生態)에 매인 자연이라면, 
난 싫어.

남들은, 
그들의 향연 
그대로의 美를 말하지만

인간(人間)과 함께 있는, 
사람의 손길이 미친 
풍경화로

곱게 키운 잔디
아담한 기와집 뒤로,
넝쿨진 자연을 
난 더 갈망해.

지질히 먹을 것도 없고
나물에 간장 한 종지, 
시골 밥상의 그 건성건성이 
정말 싫고...

나는 말이지,

정성들여 밥지어 
정갈한 접시와 예쁜 손, 
단출한  
김밥 한 줄이라도,

사람(人間)의 손길이 미친
그게 참 좋아.




- '08년 7월 22일
   군산 상가(喪家)에 다녀오며 


                  


『소대장』




군대 다녀 오셨습니까?
뭐, 10km 완전군장에 소대 대항 구보는 많이 해 봤겠죠?
어땠습니까?
설마.. 낙오는 안했겠죠?

왜 안했겠어요...
30도 넘는 여름에 쉬운 일은 아니죠.

그대의 소대장은 어땠는지 기억 나십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소대장은, 
평소보다도 더 깔끔한 복장에 우렁찬 목소리로
적진을 향한 결의와 화이팅을 외쳤을 겁니다.

호루라기 목에 걸고
구령도 외치고, 군가도 선창했을 겁니다.
그리고 앞에서 당기기도, 뒤에서 밀기도 했겠죠.

여러분!
그때를 생각하며 군가 한번 불러 보시죠.
구령도 한번 붙여 볼까요?
삼복 더위에, 아~ 생각도 하기 싫을 겁니다.

혹시, 어쩌면 여러분일지 모르지만,
반환점을 다 돌기도 전에 
소대원 몇몇은 저만큼 낙오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때 
여러분의 소대장은 어찌 했습니까?
소대장의 등에는 최소한 소총 세자루와 군장 두개,
그리고 낙오병 하나를 앞에서 끌며
또 하나의 낙오병 뒤에서 소리를 외치고 있었을 겁니다.
힘내라 김상병,
조금만 참아라 이병장!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해서 반환점을 돌아가면
한명의 낙오병 없이 무사히 골인점에 들어갔죠.
땀으로 범벅이 된 골인점에서 함께 퍼질러 누어 하늘을 쳐다 봤겠죠?
얼마나 대견한 일입니까?
신기하게도 그러한 군대의 추억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기억 나십니까?
생각해 보면 소대장은, 거의 초인적 역할을 했다고 보지 않나요?
어디서 그런 초인적 파워가 나왔을까요?

뭘 말하고자 하는지 아시겠죠?
지금의 여러분은 어느 위치, 어느 지위에 있습니까?
그렇습니까?
여러분, 소대장이 되어 보십시오.

소대장이 되기 싫으시다면,
조금만 힘내세요.
그리고 조금만 더 참으세요.
곧 반환점이 올 것이고,
그러면 다 해내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그렇게 해 보십시오.




- '08년 7월 21일 


                  


『직장에서』




당연히 상대가 나를 알고,
내 언행을 이해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절대 오산이다.

더군다나 상대가 상사이고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진다면,
나는 늘 그의 하수인일 뿐이다.

충분히 나를 알리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상대의 편에 서야 한다.
그것이 직장에서 내가 이기는 길이다.




- '08. 8월중순 어느날. 


                  


『욕망』




살아온 날보다 살 날이,
많지 않음을 느끼게 되고
내 肉의 順機能 低下가
動脈의 색을 흐릴 때 비로서 나는,
生의 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아마,
알 것으로 自處한
死의 까닭도
역시 죽어서야 體得할 것이다.




- '08. 8월중순, 충분히 잠을 자고..


                  


『비오는 날의 일터』




오늘 비가 오고 있습니다.
아침 출근해 우산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물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접고 현관 문을 들어섭니다.
저도 그랬지요.

여러분!
저보다 먼저 오신 여러분, 어떻게 하셨습니까?
치워 둔 비닐커버 장치가 있고 우산꽂이도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아무데나 우산 세워 놓고 들어 오셨죠?!

아무데나 놓는 것도 그렇지만, 
뒤에 오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분 스스로 우산꽂이 셋팅 한번 
해 볼 생각은 전혀 않으셨나요?

비오고, 눈오고... 사람이 예측하지 못하는 일.
우리의 주위는 자연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보다 아름답게, 조화롭게 돌아간다는 것을 
한번 되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들 주도적인 삶을 산다고 하지만,
인생에 있어 자아실현을 거둘 것인가 
아니면 실패한 자기도취가 될 것인가는 
바로 그것의 차이 아닐까요?




- '08. 8월 베이징올림픽 막바지에,
   7전 전승의 야구가 일본과 잘 싸우길 바라며...


                  


『가을 豫告』




밤새 두런두런 
事緣을 덮고
布帳馬車 문 닫는 새벽,
그네는 접고 나는 시작인데

湖水 낀 도시 확연히 
異色 어린 季節로
通念과 굴레 한꺼풀 벗고
나를 반긴다.

동녘에 붉은 빛 터져
그네 未練
이밤 미처 못 보낸 
街路燈 불빛 사이로

아쉽고
안타깝지만,

人生 잡아 먹을 듯
두런두런 靈魂 같은 事緣도
이젠 다 집으로 갔다.

호숫가 물속에 잠긴 골안개,
그 여린 神秘가
새벽 공기에 젖어 
싱그럽다.

내 붉은빛 길가
하늘색 나팔꽃이 방긋한다.

*

어느날 갑자기
나 죽으면,
그는 나 궁금해 찾아봐 줄까?

죽으면 모든게, 그냥 
그만이지?..




- '08년 8월말 장마의 아쉬움보다
  낙엽의 계절을 맞으라는 친구가 있기에. 


                  
 

『요즘 한가위』




옛날 어렸을 적엔
盡終日 기차 타고 아버지 故鄕엘 갔습니다.
텃마당에 솥단지 얹고,
돌부뚜막 대충 솥뚜껑 뒤집어 걸면
구수한 송편이랑 부침개가
멀리 사는 작은아버지, 姑母도 
四寸동생들 함께
멍석 마당에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秋夕엔 그렇게
실컷 먹고 뒷동산에 오르면
옛날 얘기, 귀신 이야기 누가 먼절까...
하하호호 싱거운 이야기든
히히히 무서운 얘기라도 
달빛 젖어 숨 죽이게 재밌었습니다.

그렇게 놀다가 
어른들 따로 날 불러 우리집 長孫으로서, 
奇特하게도
내 크면 참 해얄 일 많다고
異口同聲 늘 當付 하셨는데,
그걸 난 큰 使命으로 알고 컸습니다.

歲月은 어느덧 
내 아이 어렸을 적 내 나이 되어
그 분들 이미 아니 계시고
아버지, 어머니조차 가셨는데
더 以上 누가 날 어여삐하십니까.
그 옛날 어른들께서 하신 當付의 말씀과
長孫으로서의 華麗한 뿌듯함은
가신 당신들께서 모두 거두시고는.

아! 올해도 어김없이
오갈 일 없이 외로운 伐草行事와 
나홀로 술 따르는 茶禮床에는
그저 옛 어른들의 말씀만 귀전에 스칠 뿐이지요.
그렇게 하릴없이 가실 분들이
무엇을 위해 그리도 當付하고, 또 그렇게
團束 하셨는지요.

겨우 名色만 유지한 秋夕茶禮에
애들은 옛날과 달리 
참으로 오붓하고 조용히 禮를 올리는데,
무미한 찬빛 달빛은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요.

그 옛날 뒷동산 그 이야길까요...
아니면 귀신 얘기일른지요...




- '08. 9월 한가위를 맞으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答하다』




創意, 挑戰, 革新과 같은 말로
組織이나 相對를 
眩惑하고 制壓하려 들지 말라.

진정 自己를 사랑하고
內面을 直視할 힘을 가졌다면
그것이란 다만
말장난에 不過함을 안다.

더군다나 내 長點은
素朴한 傳統的 方針의 하나지만,
持久 實踐力에 있지 아니한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懷疑한 적 있지만,
價値行程의 週期를 보라.
그래도 世間 存在에는
誠實, 正直, 勤勉에 基礎한다.




- '06년 11월초 가을아침에 묻고
   '08년 9월 초가을에 답하며, ..


                  


『사람을 보내며』




어떤 일이든 
문제 원인이 분명(分明)하면,
가차 없이 도려내었던 게 
역시 옳았다.

잘 알면서도,
그놈의 미련(未練)과 
보여 온 원칙(原則) 때문에
끌려 온 게 화근(禍根)이다.

더 믿어 보고...란 말은
너무도 아름답고,
허울 좋은 회피(回避)에 불과하다.
아니라고 판단 되면

잘라야 한다.

가르침의 양식(良識)은 
배양이란 토양의 양분일 뿐,
어차피 
콩은 콩이고
배추는 배추로 큰다.

같이 갈 인재(人材)는 아니다.




- '08년 9월 17일
   밤새 속앓이 하고


                  


『냉정한 애비』




살다 보면, 지새끼 보라고 남을 욕하기도 하고
남 들으라고 지새끼 나무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지새끼 잘못은 절대 간과해선 안된다.
그 어느 것도 다 지새끼 잘 되라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왕에 나무라려거든
눈물이 쏙 빠지게 나무라야 한다.
새끼 나무라는데 가슴 아니 아픈 애비 어디 있으랴.
남 나무라는데 가책 없이 얼마나 뻔뻔하겠느냐마는
그래도 그리해야 한다.

참 신기하게도
새끼란 것들은 어찌도 그리 지애비를 쏙 닮았는지
지새끼 잘잘못은 다 지 얼굴이고 반영인데
지새끼 닭똥 갈은 눈물 흘릴 때
지 어찌 흔들리지 않을지, 알 수 없지 않겠느냐.

그래도 지 인생 그리 비뚤지 않게 걸어 왔고
지 앞으로 살아 갈 희망 떳떳하고 자신 있다면,
보다 강하고 엄하게 지새끼 잘못을 나무라거라.
그러면, 
우는 새끼 가슴에 품고 눈물 감추며 뒤돌아 설 수 있다.




  - '08. 9월 20일 비오는 토요일, 
                  그 나물에 그 밥.
  - 지=>제


                  


『살면 될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감히 곁에 
가까이 못하는 것이다.
멀리 보는 
광채(光)와 향기(香)만으로
행복할 것을,
괜히 다가서 만지다 
부서질까 두려워서다.

행복이라는 것은
여기 푸석한 푸성귀 살아 
기대고 부비다가,
끝내 잠겼던 숨소리 
거친 심호흡 맺혀 끊길 때
그때라도 꼭 한번 
돌아 봐 줄 그 있으면,
그게 아닐까.

온세상 가득 
빛(光)과 내음(香)에 잠겨
자다 깬 오늘 아침에도
깊은 숨 절정 솟굿는 저림을
삶이라 부르며
사는 나,

이제 다시 혼자라면 또 몰라
살면 될 것을
늙어 죽을 까닭이 없다.




- '08. 10월1일. 
  힘든 9월의 삶을 돌아보며


                  


『철 없는 계절』




이 계절,
누가 가을 아니랄까봐 하늘이 무지하게 맑고 선선한 바람이 깔끔한 날에는
들녘 노란 벼이삭의 통통한 살짐과 고개 숙임이 얼마나 이쁘고 경이로운지 모릅니다.
뭐든 하는 대로 다 잘 될 것 같고, 
깊은 성취의 기쁨과 감사함은 존재 그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잘 알게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늘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밤에는 별과, 
낮에는  따사로운 ?의 향연이 차례를 잇는 지극히 평범한 질서로도 충분한 여유와 벅찬 감동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최진실도 죽고 옥탑방 고양이도 하룻밤새 느닷없이 죽어 나가는 이 세상이
그리 아름답거나 좋은 것만은 아니기도 한 것 같은데, 
자연스레  이 가을 들어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되고 움추릴 겨울의 계절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면 
좋겠다...하며 
옷깃도 여미고 가을 걷이 추스르게 하는 것을 보면 
인생이란 그저 지극히 단순한 통념의 본능으로 사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것 조차 이 가을엔 
모두가  신비스런 자연의 섭리요 베품이라 여겨져,  못생긴 모과와 뜨락의 샛노란  국화꽃을 들여다 볼 
때면 
이 계절 어쩌면 그다지도 우리 아이 철 없고 순수한 볼살과도 똑 같은지...
... 참 묘한 노릇입니다.

아참~ 이 정신 보십시오! 
빠르게 지나가는 고속전철의 굉음이 버럭 화를 내어 감았던 눈을 뜨고 앞을 봅니다.
죽고 사는 쏜살 같은 퇴색과 온통 회색빛 들끓는 보챔이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이 거세게 꾸짖는 것이,
참으로 현실답습니다.
이 가을이란 계절에도.

그저 오늘, 이 깨끗한 공기와 맑은 바람을 가슴에 부비며 어리광 한번 부려 봤습니다.
벅찬 감동 어찌 하겠습니까마는, 그냥 아직 어린가 봅니다.




- '08년 10월 6일, 세상 짐 가득 지고.


                  


『슬픔이란...』




사람이 죽어 주검이 되면
짐짝 부리듯 염장이 손에 팔다리 묶여 
땅속에 묻히게 됩니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할아버지 가셔서 
뼈마디 뚝뚝 소리 내며 묶일 때
할머니께서,
왜 그리 아프도록 세게 묶느냐고 
통곡하며 
나둥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모 삼촌까지... 
난 모두 그렇게 가는 걸 보았습니다.

친구가 교통 사고로 죽고 
자살해 죽고,
옆집 아저씨가 부부싸움 끝에 피뿌리고 죽는가 하면
먹고 살기 위해 
탱크 사격장에서 탄피 줍다 
포탄에 맞아 죽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TV를 보면 
연예인들이 자살해 죽고는 했는데,
화면에 비친 사람들을 보면 
마치 실신할 듯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들은 그리 슬플까요?
사람이 죽으면 그리 슬픈 일일까요?
죽은자가 불쌍해서일까요?
아니면 
산자인 자신이 불쌍해서일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많은 주검을 접해 그런지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어떤 주검 앞에서도 
슬픔을 느껴 울어 본적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고 살다가 죽는 것은 
다만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당연한 원칙인데,
그리고 
살아 있는 가족이 다소 사는데 불편하거나 
고통이 좀 있을 뿐
산자를 생각해 슬프다면 모를까 
죽은 사람 때문에 그리 울고 괴로울 것 까지는 
없다고 보는데,
왜 그들은 그리도 슬플까요?

때때로 저도 
아버지 계셨던 자리, 어머니 가신 자리가 
훵하니 비어있음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저릿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움과 보고픔일 뿐 
슬픔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산자들의 삶의 애환이나 
남보다 훨씬 고통스럽게 살면서
힘들게 성공으로 거듭나는, 
아름답고 씩씩한 모습을 봄으로써
가슴 속부터 깊이 그 어떤 슬픔을 맛봅니다.
정녕 산다는 것은
그리 슬프도록 힘든 일이 아닐른지요.

그렇죠.
주검을 두고는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은 산자를 두고 떠났고, 
산자는 
힘들고 씩씩하게 슬픈 인생을 열심히 가야 합니다.
죽음이란 또 하나의 인생이 
속시원하게 끝났다는 것일 뿐, 
오히려 축하해 줄 일인지 모를, 
다만 산사람이, 다시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줄지언정, 
슬픈 일은 아닙니다.

진정한 슬픔이란,
그리고 눈물이라는 것은 
나로 인해 남이 괴롭고 힘들 때, 
누군가가 어려움에 속해 삶이 고달프고 어려울 때,
아니면 
내자신 정말 너무 힘들고 
고통스런 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할 때
갖는 것,

그것이 슬픔입니다.




- '08년 10월 7일 백부 사망을 접하고


                  


『가을이면 앓는 病』
  운영상의 이유로 별지에 표시하였습니다.





                  


『약해지면 안돼』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오늘도 나는 새벽 안개속을 걸었습니다.
발 밑에 떨어진 낙엽도,
약한 바람에 흩날리는 흙모래도
새벽 공기의 그 신선한 매력(魅力)처럼 꿈같이 다가옵니다.
크게 심호흡 합니다.

아! 시원하다.

 *

왜 우리의 현실(現實)은 이렇게 사는게 힘들까!
삶을 즐길줄 아는 인생의 매카니즘을 배우지 못한 절름발이 인간들.
이제서 배워야 한들,
지금에 와서 느낀들 어찌하겠냐 하면서도 좀 해봐야 할텐데,
하면서 하면서도 
한켠에는
또 그 놈의 찌든 삶을 주무르며
애를 태우고, 가슴 앓이를 하고, 울부짖고 안타까워 하고 있습니다.

가을의 전령(傳令)들이여!
이제는 나도 새벽 단풍잎 저 영롱한 이슬방울 속으로
좀 데려가 주시면 안됩니까?
이렇게 매일 걷고 또 걷는데도 끝이 없는 삶의 무게를
좀 덜어 주지는 않으시렵니까?

 *

삶에 찌들은 사람들은 
힘들 때 비로서 하늘을 쳐다봅니다.
캄캄하지만 티 없이, 맑고 맑은 하늘을 살고 있는 하느님이 
꼭 내 손을 잡아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 하느님...


- '08년 10월 30일 청주 명암호숫가에서. 

 *

p.s : 지난 주말엔 10년만에 끙끙 앓아 누었었습니다.
        꼬박 1박 2일을 앓고 일어나 
        지금은 입술도 입안도 모두 헐어서 밥 먹기도 좀 힘들지만,
        그래도 먹는 것이 사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되는 건
        참 묘한 인생입니다.

        삶의 무게를 새삼 느끼는 요즘에,
        가을병 아닌 가을병을 앓았나 봅니다...


                  


『겨울 문턱』




지긋지긋한 악령(惡靈) 보내고 십일월(十一月)엔 찬바람 분다.
이제야 내 계절(季節)인 것이다.
이르긴 해도, 차라리 잃어 버린 계절이래도
난 이 계절 '겨울門턱'에 섰다.

겨울문턱은 나를 닮았다.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 타며
옷깃 여미는 예리한 칼끝 바람이 바로 나다.
난 이 계절에 신난다.
낙엽 휘몰아 쌩 돌아가는 냉냉한 뒷자락조차
어찌 그리도 숭고(崇高)하고 존경(尊敬)스런지.

찬찬히 하늘을 보면,
생각보다 세상(世上)은 맑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된다.
찬바람 나락 쓸고 간 자리는
아늑히 둘러 앉은 낟가리와, 
그 뒤 
소담한 감 주렁주렁 겨울친구 있기 때문이다.

 *

첫눈이라도 오면 더 좋겠다.




- '08년 11월 1일, 겨울 문턱에서.
   손매 차지만 뜨거운 가슴 있기에...


                  


『늦가을 幸福』




고밀도(高密度) 센바람 불면 얼음이 언다.
귀도 시리고 볼이 얼얼한 새벽길 걸으며
기쁨도 참 희한(稀罕)하다.

아침型 人間이 되면 일찍 죽는단다.
지난 週末 대둔산(大芚山) 登頂길 一行 누가 그랬다.
얇은 귀 참 섭섭한데,
새벽 空氣 어찌 이리도 개운할까.

산다는 건 말이지,
남 가지 않은 이른길 내 발자욱 내는 것.
칼바람 세어져 쩍쩍 얼어 붙고
서릿발 시퍼레지면
그야말로 한世上 내 살판 아닌가.

천부(天賦)의 관능(官能) 없이 감히 부합(符合) 말라.
學習이란 얕은 흉내로
世上을 품고자 하는 이는 모른다.
영롱(玲瓏)한 아침, 이 희한(稀罕)한 기쁨을.




- '08年11月18日 
   찬바람 몰아들면 서서 버틸까, 아니면 비켜설까.


                  


『바다색(色)은 파랄까』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살면 
멀리 수평선(水平線)을 볼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검기도 하고 때로는 푸르기도, 
또 어떨 때는 색조(色調)조차 없이 변화무쌍(變化無雙)한 바다를 보며
닮아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넓은 바다를 보는 사람들은
검을 땐 검은 대로, 푸를 땐 푸른대로 아름답다 칭송(稱頌)하며
맑디 맑은 투명(透明)함에 감탄(感歎)할 뿐 험담(險談)은 하지 않는다.
감히 그들의 경쟁자(競爭者)나 시기(猜忌)의 대상(對象)이 될 수 없음이리라. 

아! 이 좁은 시야(視野)의 한국(韓國)땅에 살면서
요즘 우리는 참 안타깝고 답답한 세상(世上)을 껴안고 있음을 느낀다.
비판(批判)과 견제(牽制)의 학습(學習)은 어디까지고,
칭찬(稱讚)과 격려(激勵)란 소망(所望)은 언제까질까.
그저 생존(生存)의 틈바귀에서 몸부림치는 말초적(末梢的) 갈등(葛藤) 뿐,
도무지 그 천한 사랑도, 감동(感動)과 박수(拍手) 따위란 없음을 본다.

왜 중심(中心)을 사실(事實)로 보지 못하는 걸까.
고도(高度)로 계산(計算)된 이념전(理念戰)이라니 그도 그렇다.
그렇게까지 해야만 살 정도로 이 땅이 그리 절박(切迫)하단 말인가.
때로는 검기도, 때로는 푸르기도 하지만, 심지어 아무런 색조(色調) 없어도
나름 아름답게, 제대로 예쁘게는 살면 안될까.

이번 주말(週末)엔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가보련다.
하얀 눈 쏟아지는 수평선(水平線)이 그립다.




- '08年 11月 19日 
   문근영(文根英)악플과 관련해 이땅의 자정능력 제고를 바라며,
   이 험난한 경제파국에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보다 따뜻해지길 희망한다.


                  


『퇴근길에서』




퇴근길에서의 일이다.

오송에서 청주로 가는 옥산의 경부고속도 고가도 508번 지방도에서
내 앞을 가던 차량과 마주보고 오던 차량이 정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가 비상등을 켜고 달려가 보니 두 차는 모두 앞부분이 심하게 부서졌고,
마주보고 오던 차는 한바퀴 돌아 중앙선에 걸쳐 서 있었는데
심한 엔진 괭음과 함께 많은 연기를 소음기를 통해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을 가던 차량의 운전자는 무사함을 확인했는데, 
마주보고 오던 차량의 운전자가 보이지 않아 차안을 확인하려 했으나
차문은 열리지 않고 엔진 괭음은 더욱 커져서 혹시 터지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뒤를 오던 차량들도 서서 기다리기만 했지 나와서 거들려는 
사람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신고해야 했는데 막상 어디에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저 112에 했고,
괭음을 내고 있는 마주보고 오던 차량의 운전자를 끌어내야 하겠기에 
반대편 문을 억지로 흔들어 열어보니 덩치가 매우 큰 여성 운전자가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음주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차가 터질 염려 있으니 어서 내리라고
했더니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스스로 내리는 것을 보니 그리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아 안심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경찰과 응급차, 그리고 견인차가 신고 10분도 안되어 달려 왔다.
경찰이 길바닥에 흰색 페인트를 뿌리고, 사고 차량을 견인해 내고 
차량 운전자를 확인하고 목격자인 내 이름과 주민번호 적고...
그렇게 사고 처리하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참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고를 낸(사실 나는 정확히 목격하지 못했다. 너무 순간적인 상황이었을 뿐) 
여성 운전자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어서 그렇다 하더라도, 
내 앞을 가던 차량 운전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어딘가에 전화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목격자 서달라고 부탁했고, 
경찰에게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와 자기를 받았다는 상황 설명에 바빴다. 

상대방 차량의 운전자가 혹시 죽었을까봐 두렵고 무서워서 어쩔줄 몰라했고 
어떻게든 고장난 문을 열어 응급 처치를 하고자 했던 나와 단둘의 상황에서 
그는 침착하게 누군가와 전화로 자기 조치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흔히 이런 사고를 접해 사람들의 정황은 이와 비슷하리라 
여겨진다. 
무엇보다 내가 보다 현명했다면, 내 뒤의 차량 운전자들에게 협조를 구해서 
차량통제도 하고, 혹시 있을 수 있는 사고 차량의 운전자를 구해내는 일에 
보다 슬기롭게 대처했어야 했다.

아무튼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아무도 나와 보지 않고 되돌아 가는 뒷차들이나
사고를 당해 오로지 자기 상황 조치에만 몰두한 몰인정한 이기심을 접하며
건조한 이 사회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아 집으로 오는 퇴근길이 매우 씁쓸했다.




- '08년 12월 2일  퇴근길에서.


                  


『시골생활』




今爾出於崖사 觀於大海(금이출어애사 관어대해)
乃知爾醜 爾將可與語大理矣(내지이추 이장가여어대이의)

*

도시(都市)에 사는 이들은 겁쟁이다.

시골의 생활(田園生活)은 말로만 하는 이상(理想)일 뿐
엄밀(嚴密)히 보면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關係)도 없는 
주변(周邊)의 미련(未練)을 접는다는 게 죽음처럼 두렵고
자기 죽으면 한명도 와보지 않을 보잘 것 없는 싸구려 인맥(人脈)을
대대손손(代代孫孫) 물려 줄 가치(價値)인양 
감히 그 줄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의 영겁(永劫) 같은 도시생활(都市生活)을 단절(斷絶)하고
절망(絶望)과 추락(墜落)의 계급장(階級章)으로 시골(田園)로 온다면 
참으로 통탄(痛歎)할 일이다.

시골은 결코 도시(都市)겁쟁이나 패배자(敗北者)의 도피처(逃避處)가 아니며
그림 같은 전원생활(田園生活)에는 손시려 물 깃고 눈 매워 군불 때는 
소박(素朴)한 순수(純粹)사랑과 진정(眞情)의 열정(熱情)이 있다.
물론(勿論) 전원사회(田園生活) 나름의 삶의 지혜(智慧)도 
생존 경쟁(生存 競爭)과 같이 도시(都市)에 못지 않다. 
때문에 도시(都市)겁쟁이는 시골에 와서 살 수 없다.

하지만 겁쟁인들 어쩌랴.
시골(田園)은 어머니의 그윽한 품처럼 언제든 그들을 받아준다.
그렇더라도 시골(田園)에 오려거든 
보다 건강하고 보다 튼튼할 때, 그나마 엷어도 붉은피 흐를 때 오라.
이그러진 몰골과 싸늘하게 식은 심장(心臟)으로, 
도시(都市)에서 추락(墜落)해 오는 꼴은 꼴이 말이 아니다.

전원을 그리는 도시인(都市人)들이여!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살든 순수애(純粹愛)을 그리는게 아닌가.




- '08年 12月 4日, 시골(田園)길 겨울에 비가 내리니,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고.


                  


『모두 살아서 만나요』




如履薄氷 不抛加忍(여리박빙 불포가인)
雪上加霜 初志一貫(설상가상 초지일관)

*

요즘은 너 나할 것 없이 모두 어렵고 고통(苦痛)스럽다.
무엇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암흑(暗黑) 같은 터널이 언제 끝날지도
잘 알 수 없는 까닭이다.
다만 그동안 살면서 알게 된 것 처럼,
추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엄연(儼然)한 사실(事實)이다.

어느 회사에 가면 문지방(門地枋)에 이렇게 써 놓았다.
'강한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자가 강한 것이다.'

삶이란 어차피 소(牛)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이라 했다.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자기(自己)가 소유(所有)할 문제(問題)이지만,
생(生)의 위기(危機)와 고통(苦痛) 그리고 희망(希望)과 존재(存在)는 어차피 그곳에 있다.

살얼음판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狀況)에서도 포기(抛棄) 대신 인내(忍耐)를 더하라.
어려움이 가중(加重)되는 고통(苦痛)스런 상황(狀況)에서도 처음의 열정(熱情)을 되새겨라.

다행(多幸)스러운 것은,
지금 우리 이 칠흑(漆黑)의 현실(現實)에 나 혼자 서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정도(程度)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 말다나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일 아닌가.
서로 보듬어주고,
사랑으로 아픔을 달래주면서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인내(忍耐)와 열정(熱情)으로..
용기를 내고 앞으로 가자, 화이팅!




- '08年 12月 5日, 올해 성적은 좋았어도 내년이 문제지.


                  


『아이야 사랑한다』



다 때가 있는 法이다.
아이 데리고 물놀이며 썰매장이며 다녔는가 하면
새해 다짐이다 부산떨며,
새벽녘 온가족 해돋이 보러 간 적도 있다.

무엇보다 오랜 追憶은
내 어렸을 적 正月에 어머니 함께 한 쥐불놀인데,
살며 살아가며
옛이나 只今이나 아이와 더불어 알겠는 건 
다 때가 있는 法이다.

工夫 못하는 아이 닦달도 때 있긴 하고
굳이 말 하자면 한낱 애비로서의 窮狀일 뿐,
오히려 살면서
생각과 行動에 柔軟한 사람이 늘 부러웠고
勞心焦思에 緊張의 끈 묶여 自虐도 많았는데

눈오는 바다 水平線이 어딨다고,
人生 한바탕 왔다가는 單細胞 같은 것으로서
흔히 남처럼 普遍的 快樂 안고 살진 못할지언정
올 한해 끝 오늘만이라도

너털지게 웃고 맘 놓아 풀어헤쳐도
아이가 나 닮아 배워 일으켜 色調一氣할 걸 믿으면 
그것 조차 다 때가 있는게 아닐까.
바로 只今에.




- '08年 12月 26日 金曜日, 
   그래. 올해도 수고했고 幸福했어.
   하얀 눈이 내리는 날엔 水平線이 없어.


                  


『約束_2』




아무리 빨리 가려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빨리 얻은 학습(學習)의 성취(成就)로 
진상(塵想)같은 일상(日常) 꿰어 찰 순 있어도

천부(天賦)의 젊음과 탄력(彈力) 잃는 마당에
숭고(崇高)한 열정(熱情)의 뒤
그 미지(未知)의 기쁨 얻지 못하면
삶에 무슨 소용(所用) 있는가.

나이 오십(五十)에 지천명(知天命)이랐던가.
피 눈물 다 내어주고 
남을 건 
천성(天性)에 그 아래 수긍(首肯)뿐으로,

내 빨리 가려해도 
학습(學習)의 미명(美名) 투박한 통념(通念)으론
이세상(世上)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

이제 언제든, 죽으라면 죽지.
아니, 죽을 수 없지.

예나 지금이나 이맘땐
진종일(盡終日) 흰눈이 내린다.

아침에 눈 떠
또 하루 살 수 있음에 기쁘다.




- '09年 1月 24日, 
   기축년(己丑年) 설을 맞으며..


                  


『土曜日 아침에 마시는 커피』




피 말리며
풀리지 않던
높디높은 철옹성(鐵甕城) 무너지고,
조용한 토요일 아침
事務室 나와
혼자 커피를 마신다.

하늘은 우유빛 안개 ?고
커피색 향기(香氣) 내어준다.

世上에 태어나
자식으로서 
아버지로서,
민초(民草)로서 家長으로서 
살면서
늘 가슴에 꽉 막힌 生存의 짐 안고
苦痛과 의무(義務)를
삶의 幸福으로 알고 사는 나.

快樂을 죄악(罪惡)처럼 죄어 매고
너털지어 볼지언정,
소리 내 통 큰 웃음 한번 못한채
도대체 삶이란 기쁨인가
늘 반추(反芻)하며
生을 밟아온다.

저녁에 밥술 하나 드니
보다 얇아진 
요즘 소주(燒酒) 세잔이면
하루도 아니고, 
열흘이나 지난 아이의 다 자란 
별 것도 아닌 이쁜 한마디에도
주절주절 
접어두었던 마음을 
다 주고 만다.

그것이 행복(幸福)이련가.

實은 이 조용한 아침에
숨 죽일 듯 고통(苦痛)스럽던 일의 무게 
마저 덜고,
작은 희망(希望)이라도
방향(方向)이 서고
마치 주검을 차고 나온 듯
뚜벅뚜벅 또 앞을 갈 수 있으니

그것이 정말
기쁨이고
幸福이 아닐까 해서다.
아, 오늘 土曜日 아침은
커피가 너무 좋다.




- '09年 2月 14日
 무겁게 짓눌렀던 問題 하나 딛고.


                  


『환과고독(鰥寡孤獨) 아니잖나』




누구에게나 人生이란
외롭고 곤궁(困窮)한 여정(旅程)입니다.
위로(慰勞)와 격려(激勵)는 사치(奢侈)일 뿐
서로 의논(議論)하고 상의(相議)해 갈 일이 아닙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高校진학(進學)을 빼곤 모든 진로(進路)를 혼자 걸어왔습니다.
大學도 그랬고 軍入隊도 그랬으며
더군다나 사회(社會)에서
入社나 轉職, 그리고 競爭과 挑戰에서도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실패(失敗)는 주로 창피(猖披)스런 일이라는 생각으로
평생(平生)을 늘 
긴장(緊張)하고 준비(準備)하고
굳어지면 決心해서 실행(實行)한 후, 
성과(成果)를 거둔 다음에야 비로서 드러냈죠.

그렇게 살아온 제게도
人生이란, 아무 말 없이 혼자 걷는 거친 오솔길입니다.
어차피 자기 삶을 걸고 의논(議論)을 한다는 건
참으로 아둔한 일이 아닐까요.

가만히 주위(周圍)를 둘러 보면 
모두가 그렇습니다.  
삶이 그리도 꿈처럼 아름답고 윤택(潤澤)하기만 하다면
生存의 진가(眞價), 成就란 없는 것이죠.
人生은 결국 외롭고 곤궁(困窮)할 수 밖에 없고
남들도 모두 
그렇게 들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 '09年 2月 26日,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시경(詩經):가矣富人 哀此경獨(가의부인,애차경독)"
      가: 옳을(가), 경: 독신자(경)


                  


   『서울』




나는 서울에서 났지만 살지는 않는다.
하룻밤이라도 
서울에서 자 본 적이 없다.
그저 스쳐 가는 곳,
들러서 일을 보는 곳 정도라고나 할까.

實은 서울에서 
내가 가 본 곳도 別로 없다.
어렸을 때 서울구경 昌慶苑과 南山 어린이會館은 
只今도 생생하지만
大學時節 書店과 茶房, 
그리고 親舊들 다녔던 大學 캠퍼스가 다다.

그리고 커서
業務上 會社의 本社 社屋과 行事 등에 따른 
호텔로비와 貿易센터 展示場 같은 곳.
기껏해야
사람이 아프거나 죽으면 가는 病院과, 附屬한 葬禮式場들 
그리고 몇몇 禮式場.
結婚前 아내와의 데이트코스로 南山植物園과 
昌德宮, 그렇다.

最近 들어 
日本의 오가와(小川) 어머니 오셨을 때 
모시고 간 
仁寺洞 골목과 精製된 淸溪川.
그리고 日本親舊 호시노(星野)가 왔을 때 
興味津津했던 南大門市場, 
明洞거리에 小公洞롯데百貨店...
그리고 德壽宮,
그 정도다.


그래도 나는 
서울에서의 그리운 追憶이 참 많다.

高校時節의 나는
鍾路 世運商街 이 잡 듯이 뒤져 
部品을 사, 엠프(電蓄)를 만들고 
장난감도 만들어, 좋아하는 音樂 先生님께 膳物을 했다.
헌冊房에서 冊을 사고
읽고 쓰면서
지금까지도 이루지 못한 꿈을 키웠다.

大學時節에 우리는
主로 鍾路 YMCA 앞에서 만나 
鍾路書籍과 敎保文庫, 
그리고 그 周邊 DJ가 있는 音樂茶房에서 
젊음을 論했다.
親舊를 기다리며 
성냥개비 塔쌓기에 타임誌를 읽는 척 했다.

只今은 없을 
孔德洞 달동네 親舊집 골房에서 
時局을 恨歎하기도 했고
放學이면 
뾰족히 할 만한 아르바이트거리도 없어
淸溪川 平和市場 뒷편 家家戶戶 보릿차도 
팔았고 
一日찻집 親舊들과 벌여서 
갖은 長技자랑에 멋드러졌었다.

勿論 
가슴 졸이며 파트너 기다리던 K大學街 미팅場도
그리 먼 곳 아니었고,
學校對抗戰 野球競技라도 열리면
몰려가 목 터지게 應援했다.

軍時節 週末에 休暇 나오면 
就職한 親舊 불러 내 
그 時節 처음 流行한 삼겹살 한턱 얻어 먹던 곳 
서울이었으며,
막내 女동생 就職해 燒酒 한盞 산다니 
취해도 좋았던 곳 
鍾路 뒷골목 어느 酒幕이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
汝矣島 國軍의 날 에어쇼 보러 갔던 일에
한江 白沙場 爆擊 示範도 근사했고,
시골 할머니宅 가려면 꼭 밤汽車를 
타야 했는데
서울驛과 龍山驛間 夜景에 취해 
서울이 참 예뻤다.

그것이 나의 서울이다.


내가 난 곳은 
記憶 조차 없는 서울의 鷺梁津이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서 살지 않았다.
서울은 그저 
只今은 없어져 追憶에 만 있는,
그리운 마음의 故鄕이다.




- '09年 2月 27日.
  서울에서 시골 淸州行 집으로 가면서..


                  

                                                                   
   『프롤로그(prologue)』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강하다, 저 사람은 참 사는 게 즐겁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아무리 둘러 봐도 삶이 즐거울 게 없는 내게서는
    나도 옛날에는 사는 게 참 재밌었는데, 라는 追憶만 흐를 뿐
    신기한 실소가 배어난다.

   걱정,
    두려움(fear).
   강박감과
    단절.

   회색,
    불면(insomnia)에,
   주검...

   이것이 내 最近의 'key word'다.




   - '09年 3月 10日, 
     우울증(melancholia)을 넘어서...


                  


『조울증(躁鬱症)』




人生이란 
그저 무거운 수레 끌고 
죽자고 언덕 오르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 해도 죽음이란 즐거운 것 아닌데 
氣를 쓰고 있다.

쓰지도 못할 돈, 버는 일 아니면 
결코 살 가치(價値)조차 없는 이 人生길을
밀어 주기는 커녕 
이엉 엮듯 매달리기나 한 내 同行者들은
도대체 내가 
얼마나 힘을 내고, 언제까지 오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인지.

나 이대로 지쳐 주저 앉아, 수레 놓으면 
함께 굴러 떨어질 그들에게
성내거나 죽을 상 결코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단연 웃어 줄 수도 없는 
이 힘든 人生길에서
결국 죽자고 무거운 짐 실어 나르는 
수레꾼 주제에

아!
人生이란 정말 이렇도록
하찮은 것인가를 물을 수 있다면
그것 조차 지금 나에겐
진정 사치(奢侈)가 아닌가.




- '09年 3月 10日, 
   우울증(憂鬱症)을 넘어서...


                  


『하얀 봄볕』




오늘처럼 
아침 햇살 눈부시고
머리(腦)가 청명(淸明)한 날에는
나도 
삶(生)을 사랑할 줄 안다.

귀(耳)도 밝아져 
창밖 풀섶 스치는 새소리
들리면
나도 비로서, 
해맑게 웃을 수 있다.

지나는 사람
사람의 숨소리마다
근심걱정 다 떼어 내고
소망(所望)과 설렘의 
콩탁댄 심장(心臟) 달아,

오늘 유난히도 
멀리 보이는 저 파란 하늘 밑 
옛정 같은 마을로 
껴안을 듯 가고 있는데,

어찌 나만
터질 듯 주체 못할 
이 가슴을
고이 앉아 추스릴 수 있을까.
이제 곧 하늘에 
분홍 꽃잎 날릴텐데.

*

길 가는데
비록 거칠고 힘들어도
견디고 지나쳐 
벅찬 페이브먼트 온다면
그것이 삶이다 싶고, 
그 힘에 가는겔테지.

이 눈부신 에너지로
대지(大地)에 푸른 싹 돋고
촉촉한 봄비 내리면
일취월장(日就月將) 世上은 
그리도
分明 눈부실게 아닌가.

겨우내 주검 같고
끈질겼던 우울증(憂鬱症) 걷어내고
나도 이제,
심장(心臟)의 동력(動力) 
새로 달고
가면 되는걸거고.




- '09年 3月 28日
 창밖 봄볕이 아주 눈부신 날에


                  


『미련(未練)』




나 죽으면
그대는 내 영정(影幀) 앞에서
울어줄 수 있을까.

난 그대 죽었을 때
찾아가 울어주고 싶은데

살면서,
마음에 친구 별로 없지만
그대조차 참 멀리 있구나.

죽으면 연락(連絡)이나 될까.

어차피 죽으면
다 그만인데.




- '09年 4月1日;  아침에 일어나
 살아 있으니 기쁘고,
 문득 소식 없으면 죽은 줄 알자.


                  


『첫인상』




배려(配慮)의 마음으로 
올해도 
세그루 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을 때

본지 오래된 그의 미소와
약간 어눌한 말씨,
처음 만나 겸연쩍어
하얗던 매무새가

그리움으로 확 돌아온다.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 아직 사느라 내일 모르고
나 역시
하루하루 미루어 사는데

그 누구로 인한
인연(因緣)에 질긴 情이랄까.
구름 꽉 낀 하늘로
어렵잖게
비라도 후련히 내려주면

이 아련한 그리움도
하나의 소통(疏通),
큰 기쁨이 될 것 같다.




- '09年 4月 5日 植木日에
 싱가폴 사는 그 위해 나무를 심고.


                  


『約束_3』




世人의 眞實이란
알고 모르고의 問題거나
알아도 더 알고 덜 알고의 問題다.

쉽게 만나고
언제고 변하는 사람들은
모든 眞實을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안다는 眞實은
존재(存在)에 있지 아니하다.
생산(生) 않는 까닭이며,
가슴은 차고 눈이 뜨겁기 때문이다.
통념(通念)이랄까.


진정한 삶(生)에 있어 存在란
학습(學習)에 있지 않다.

더 알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창조(生)의 永遠 같은 '봄날'은
저 말 없이 돋아나는 새싹처럼
처음부터 천부(天賦)의 것에 있다.
그것이 存在다.


眞實을 만나고 싶은 열정(熱情)들아!
이 '봄' 미지(未知)의 季節에
가슴 뜨거운지, 손 얹어 보라.


기쁘면 되었다.




- '09年 4月15日 
  시골淸州의 '봄날'에.


                  


『五月에』




여린 가슴 내게만 지탱해
살아온 아내에게.

世上의 독소
제 몸 다해 걸러서 
아이에게
또한 내게도, 

말 없이
주기만 해 살아온 당신

오직 미안하고
영원히 感謝한다.




- '09年 5月11日, 
 아내의 入院을 앞두고 
 快癒를 祈願함. 


                  

 
『믿음』




우리가 봄을 기다리고
時差에 相關 없이
꽃과 새싹을 좋아함은 
엷지만
希望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이도 똑같다.
늦더라도
生의 軌道를 꿰차고
하나씩 제모습 찾아갈 때
그 풋풋한 사랑이,

父母로서 믿음에
더 없는 幸福이요,
希望이다.
그래서 봄은 아름답다.




- '09年 5月13日
  아이는 봄. 
  끝까지 믿으면 돼.


                  


『살기위해』





어찌 기쁠 일이겠느냐마는
逍風가는 사람처럼
아내는 좋다며 入院했다.

무거운 病魔 걷고
새로운 삶 살 수 있다면
그 希望으로, 기쁠 일이다.

우리는 단 하루라도
산다는 希望 없이 버틸 수 없다.
아내가 사는 것처럼.




- '09年 5月15日
 아내가 入院했다. 살기위해.


                  


『보이지 않는 靈魂조차도』




거리에서,
市廳廣場에서 
悲痛한 눈물로 또는 感激과 喜悅의 물결로 
나가지 못하는 靈魂은 말합니다.

우리는 國家元首가
令夫人 마저 銃彈에 지고,
前大統領의 주검에
뜨겁게 물들던 월드컵 물결의 混在

그리고 어린 아이 손잡고 
엄마와 아빠,
女中生까지 
喪失과 哀痛에 젖어 들던 촛불마다에

미더움과 그윽한 뿌듯함으로
한편으로 근심과 念慮, 
나아가 보다 成熟하길 바라는 激勵로 
그 勇氣와 代身함에 未安하고 感謝해 왔다고.

하지만 우리는,
슬프면 슬프다고
기쁘면 기쁘다 모두 드러내고 살 수도 없으며
믿고 기대는 마음으로
때론 저만치서 拍手로 和答하기도
가슴 아파서 
보이지 않는 눈물을 몰래 훔치기도 합니다.


不足하다는 것과 또한 지나치다는 것은,
심지어 옳고 그르다는 것조차
우리는, 다만 
中心이 一定量 어느쪽으로 옮겨졌냐는 것일뿐
딱 잘라 어느 하나 
選擇과 二分의 對象이 아닙니다.
하물며 삶과 죽음이 모두 自然의 한 조각일진데.

時間이 지나고 나면
不足함은 물론 그 안에 넘쳐남까지도 
그 헤아림은 늘 우리에게,
슬픔은 그저 하나로
기쁨 역시 또 하나의 아쉬움으로
보다 큰 空虛로서
무게中心의 基底에 조용히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린시절의 銃聲에서
거꾸로 우리의 아이에게서 배우기까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이 感性으로서
이를테면 우리의 遺傳子가
오랜동안 代代孫孫 이어질 끈이 될 수 있다면

거리에서,
市廳廣場 그 자리에서 함께 아니 했어도
生業과 自己本分에 充實한 靈魂조차도
묵묵히 幸福할 것입니다.




- '09年 6月 1日
  5月을 보내며, 우리 서로를 認定하자.


                  


『삶이란 죽을 때까지 걷는 것』




그 언제인가
아직 마음의 벚꽃을 못 피웠다는 친구가 뜬금없이,
네팔엘 다녀 왔다네요.

히말라야 트레킹(trekking)이라도 했나 봅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며, 걷는 일에 충실해 지련답니다.
걸으니 몸과 마음이 정리가 되더라며, 
내게 걷기를 권장합니다.

 - 삶을 걷다 -

걸어야지요. 앉아서 쉴 수 있습니까?
죽을 때까지 걸어야 합니다.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참고 견디기 힘들던 등정도
저 멀리 희뿌옇게 보이잖아요.
그렇게 걷다가, 무념의 경지 얻으면
어차피 발 밑 시야는 흐리고 또 그렇게 앞만 있잖아요.

살아서 그렇게 쉰을 왔는데,
글쎄.., 친구가 또 걸으라네요.

친구의 벚꽃은 피고 졌나,
벚꽃은 두말할 것 없이 온세상 녹음이 철철 넘치는데,
이 계절에야말로 못 걸을리 없지.

죽어서야 더 못 걷지.




- '09年 6月 11日.
   올해는 여름이 간 뒤에 엘리뇨 온데요.


                  


『約束_4』




나는 인간(人間)의 학습(學習)을 신뢰치 않는다.
원칙적으로 출발은 천부(天賦)의 것이다.
천부적인 것은 때로 세상의 모든 추종(追從)을 요구하기도
때로는 모든 추방(追放)을 유발키도 한다.

학습(學習)은 추종(追從)일 뿐이고, 다만 아름답다.
그 뒤에 숨은 작은 성취(成就)의 것을 찾아서
그를 위한 열정(熱情)을 불사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숭고(崇高)하다.

25年前에 접었던 순수 유화(純粹油畵)는
나에게 있어 천부(天賦)의 것인가, 아니면 학습(學習)의 것인가.
존재(存在)로의 추구(追求)는 이 뜨거운 열정(熱情)과 설렘처럼
어느날 아침에 불현듯 찾아온다.




- '09年 6月 13日(土) 아침에,
 접업던 순수유화를 다시 펼 수 있을까.


                  


『술에 관한 나의 뒷談話』




갑자기 날씨가 더워졌네? 
그래도 내일은 내가 좋아하는 비가 온다네...

나는 어렸을 적에 아버지께서 漫醉로 들어오셔서 
'내 원수 갚아달라'며 하시는 말씀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살았어. 
그 원수가 무엇인지 대충은 알고 있고, 
자식으로서 그 원수는 갚아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그 때문에 나는 술을 원수로 여겼지.

나는 술을 대학 3年次에 처음 먹어 봤어.
고교동창회에 가서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그것도 27잔을.
결국 어쩌다 '술 잘먹는 놈'이 되었지.

하지만 난 술과 친하지 않아. 정말 나와는 안 맞아.

그래도 술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 같아.
흐트러지기 싫어서 술 먹지 않을 거라고 그댄 말했지만,
난 흐트러지기 위해서, 사람다워지려고 
가끔은 술을 먹지.

오늘은 우리회사 모처럼 워크샵 가는 날.
전직원 함께 모처럼 自然에서 한껏 서로를 理解하는 날.
밤에는 술도 한잔 하고... 내일 아침엔 레프팅도 한다네.



歲月이 흘러, 25年이 갔어도
그대 그대로의 모습으로 穩全하게 나타나줘서
난 정말 기쁘고 행복해.

내게 그대가 빚진 것 없고, 서로 지은 죄도 없으며
그렇기에 容恕할 것도, 未安할 것조차 없어.
다만 지금의 모습으로 앞으로도 
잘, 아름답게 살아가자.

난 그대에게 있어 
그대가 원하는 그 어떤 存在로서도,
그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이유로
늘 곁에 조용히 있어줄께.
그리고 혹시 지난 아픔이나 남은 상처라도 있다면
내가 받아 줄께.

내일은 비가 온다네?
나는 발 밑에 조용히 흐르는 빗물과
그 위에 스치고 지나가는 차소리를 들으며
지난 歲月의 낭만과 추억과
그리고 사랑을 그리며 살아갈거야.

그래서 나는 비가 좋아.




 - '09年 6月 19日 <아무런 말 않기>


                  


『비』




비는 사람의 마음속에, 
메마른 가슴속에 물이 흐르게 해주는 거야.
슬픈 記憶도, 아픈 傷處도, 심지어 황홀한 追憶마저도
歲月처럼 흘려 보내주지.




-'09年 6月 22日, 
사랑에 대한 가소성을 생각하다. 


                  


『무심천.. 너로 인하여』




일기(日記) 쓰기를 멈춘지도 20年
정지한 영혼(靈魂)에 무엇 담을 게 있겠어.
머리에 기계음 달고 투쟁(鬪爭)하 듯 왔잖아.
먹고 살기 위해서.

그것 말고는

   삶이란 한번쯤,
   아님 언젠가는 꺾어지고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지고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법.
   어차피 반드시 지고야 마는
   꽃처럼.

꺽어지고 부서지고 나면
무슨 수로 살라고

물 밖 나온 물고기는 흐릿한 숨 쉬는데
남은 한가닥 숨이라도
살붙이 아픔조차도 자각(自覺)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운(幸運) 아닐까.

이 얕은 無心川
나 만나 20年 무심히 흘러 지금도 여전하지만
너로 인해 툴툴 털고 일어나 심호흡하면,
나도 너처럼 살 수 있지 않을까.




- '09年 6月 21日, 淸州고을 무심천에서.


                  


『사랑한다 말하지』




사람이 어찌 말 다하고 사나.
하고 싶은 말 많아도 어려워서 못하고
힘들까봐 못하고
두려워서 못한다.

지나고 흐른 다음엔
후회되고 돌이킬 수 없는 것 다 안다.
그러게 말하라 하지만,
말해야 된다지만

세상에 헝클어진 일상(日常)과
시공(時空)은 차치(且置)해도,
막연히
그대 딴 길에서 제 앞길 잘 가는데.

사람이 어찌 말 다하고 사나.
하고 싶은 말 많아도 알까봐 못하고
들킬까봐 못하고
수줍어서 못한다.




- '09年 6月 23日 <어제는 딸이 그러데.
    '아빠, 사랑한다 말해봐'>


                  


『자루소바』




외로이 예 왔다.
가이힌마쿠하리(海浜幕張) 소바(そば)집
고된 일정(日程)에 피곤ㅎ다. 
어깨가 쳐졌지.

생맥주(なまビ―ル)에 소바(ざるそば). 
특별(スペシャル)와인이 덤이다. 
비스켓(ビスケット)하고... 
일본(日本)답지.
 
빈속에 한잔.
싸한 기운 온몸(全身)에 뿌려지고
어두운 창 밖 
크리스마스가 일렁인다. 
한해가 저문다.

떠들썩한 점원(店員)아이 복창(復唱).
메뉴판이랑
내놓는 음식에도 카랑카랑 흐른다.
참 열심히 사는구나.

소바가 나왔다. 
아이가 인사를 하고
먹는법 설명(說明)에 온정(情)이 넘친다.
참 더없이 이쁘네.

무결(無缺) 꽉 찬 매무새
치례(致禮) 세운(立前) 일본 땅에도
내심(本音) 사랑이 있네.

아이의 게다(下馱)소리 
분주한 복창(復唱)에 잔향(殘響)으로
겨울하늘 귓전에 돈다.
일본(日本)에도 사람이 산다.

별이 총총하다.




-'02年 12月18日 치바(千葉)에서
 <'08年 12月12日에 고쳐씀>


                  


『케케묵은 일기장』




   우리는 혼자 낳아서 혼자 죽어가는 것이다. 
고독이야말로 본연의 生의 자세다. 
허위와 無理에 넘친 불안한 존재의 사회 습관적 의무 같은 것은  
우리의 영혼을 무시한 자의(恣意)적 습성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자학과 또한 거기서의 도피, 고립된 과정의 실천과 희열, 
말 그대로 추위를 느끼다 심장이 얼고 그래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의 희열을 위해 산다.   
그리고, 그것의 持續을 위해 살고 싶다. <'84년 11월29일>

   온갖 불순과 기형에의 상상, 
소리 없이 침투하는 友緣的 테러의 횡포 - 추한 몰골을 보이는 고통과 아픔을 수반한채, 
비명을 지르지 않아도 되는 이상적인 죽음, 혹은 무언의 영원한 잠, 
또는 사회와 멀리하여 혼자서도 언제든 思惟와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신의 베품, 
더러운 육체적 욕망, 그리고 등등 -,
이 테러의 횡포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내 삶을 영위할 방법이란 없는 것 같다. <'84년 11월 30일>




- '09年 6月14日에 꺼내어 보다.<四十七券의 日記帳中에서>


                  


『빗소리가 참 푸근하지』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푸근한 빗소리 들으며.. 모처럼
잠을 푹 잘 잤다.

죽음도 이렇게 찾아 오길 바란다.

*

즐거운 봄을 기대하며 내 작은 정원에도 콩, 샐러드, 레세다, 겨자 따위의 씨앗을 뿌린다. 
앞서 죽어간 식물의 잔해를  그 위에 거름으로 부어주면서  돌아간 것을 추억하고 다가올 
식물을 미리 생각해 본다.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도 이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자명한
사실로, 본디 내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주 이따금,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어느 한순간, 땅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우리
인간만이 이 같은 사물의 순환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하는 생
각이 떠오른다. 사물의 불멸성에 만족하지 못하고, 한 번뿐인 인생인양 자기만의 것, 별나
고 특별한 것을 소유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기이하게만 여겨지는 것이다.
                                                               (즐거운 정원:1908년)


그러나 나는 이번 만큼은 새로 복숭아나무를 심을 수 없었다. 살아오는 동안 꽤 많은 나무
를 심었으니 한 그루 덜 심는다고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내 안에서 무언가가
그 일을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또다시 생명의 순환을 새롭게 하고,  삶의 바퀴를 
다시 돌리며, 탐욕스런 죽음에 다시 희생물을 키워 바치는 일을 거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는 비워 두어야 했다.              (복숭아나무:1945년)

                                                              
                                                 -헤르만 헤세의 <정원 일의 즐거움>-


- '09年 6月 29日. 올해 두번째의 장맛비가 내린다.


                  


『비 온다고 했지만 맑은 날 휴일에』




'졸음에 빠지지 않으려고 칼로 대나무를 깎았다'는 
법정(法頂)의 글을 읽다가.. 
낮잠을 잤다.
비 온다 했지만 이 맑은 일요일 오후에도,
옆구리 스치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

사실 혼자 사는 사람들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느끼
지 못하면 그는 무딘 사람이다.
물론 너무 외로움에 젖어 있어도 문제이지만 때로는 옆구리께를 스쳐가는 외로움 같은 것
을 통해서 자기 정화, 자기 삶을 맑힐 수가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순간순간 산다는 것은 한편으론 순간순간 죽어간다는 소식이다.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녹스는 삶을 두려워해야 한다.
단순한 삶을 이루려면 더러는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단순
해지고 순수해진다.               
                                  -법정(法頂)- <류시화의 '산에는 꽃이 피네'中에서>



- '09年 6月 28日, 장맛비를 기다림.


                  


『말하기는 쉽지』



사는게 왜 이리 힘들까..가 짐처럼 끌리는 日常에
그대를 사랑해 울었습니다.

物質도 사랑도 다 日常인데.. 그 어느 하나 무엇도 所有 못한 서러움일까.
아님, 所有慾의 非現實的 自身이 불쌍해설까.
그렇찮음 그저 도도한 存在에의 喪失感에서랄까.

하루의 半以上을 當身과 함께 사는 나는
무슨 힘으로 사는가 하면,
그저 그대, 當身이 存在한다는 事實에 그 自體입니다.

말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그리운 當身이라고 말 하는 것. 그게 뭘 어려워..
잘 잤냐.. 뭘 먹었냐.. 묻는게 뭐가 그리 어려워.
사랑하기 때문에.. 만 번을 하고나면 천만 번 가슴아파질까봐..도 아냐.

當身의 存在로 내가 幸福하고,
그대 숨소리와 손길 느껴져 기쁘고.. 즐겁고..
그래서 내 삶의 영겁(永劫)같은 짐 가벼워지고..
며칠이라도 내가 더 살아갈 수 있으면..., 나는..., ... 난 그래요.

오늘 일 마치고 모두들 바다에 가잡니다.
삶이란 내 意志보다는 누군가 떠밀기에 가는 것이고..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으로도 살아갑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 '09年 7月3日(金), 하늘이 변덕을 떨지..


                  


『영혼이 아름답도록』




한바탕 요란스런 일주일 보내고 내면의 잔잔한 평화.. 주말입니다.
창틈으로 새어든 한줄기 햇볕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세상은 역시 아름답습니다.

*

사랑에 빠지고 연애를 하는 것은 언제나 근사한 일입니다.
무한한 상상력, 창의력, 에너지가 거기서 나옵니다.
그러나 연애를 하느라 주변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면 대단히 곤란합니다. 사랑이 깊어질
수록 몸도 마음도 아름다워지고, 일도 공부도 열심히 더 잘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 진짜 연애입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아름다움도 자란다-中에서>

인간은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내 안의 신은 아름다우며 그 어떤 신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좌절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세요. 자신을 가지세
요. 믿으세요. 사랑하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모든 과정이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우주는 아름답고 그 안의 영혼은
더욱 더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아름답습니다. 달에게서 배운 사랑으로 자신의 영혼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가꾸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차길진법사의 -영혼산책-中에서>




- '09年 7月의 어느 주말에


                  


『작은사랑의 영혼에게』




누구나 경험해 보았겠지만, 
어쩌면 山은 인생에서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외로움을 줍니다.
반면에 극약적인 처방과 치료를 주는 만인의 의사일른지도 모르죠. 
그래서 山을 오른다는 것은 때로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평가하나 봅니다.

동네의 야산을 오르던, 아니면 이름있는 명산을 오르던 
언제나 山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작은 성취를 주고, 용기와 희망이라는 약을 줍니다.
체력이 약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산을 오를 수 없는 사람이나 
중간에서 포기하거나 사고로 하산하는 사람들은 결코 얻을 수 없는 약.

그런데 山을 오를 때는 저마다 제 패이스와 격에 맞는 호흡조절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주는 山이라하더라도 모든 걸 한꺼번에 받을 수는 없습니다.

삶이란 것도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지만 우리 생의 가치를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명약인, 사랑이란 것도 그렇죠.
큰 것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동행하는 사람에 대한 감사와 배려..수용함.. 
중간에서 포기하거나 사고로 하산하지 않도록 하는 호흡조절과 정신적 육체적 건강.. 
이해와.. 용서.

지금 우리에게 약간의 병약함이나 알 수 없는 작은 허물들은, 오히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작은 사랑의 개개별 삶의 패턴들로써 잘 승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다 나이가 들고 성숙한 영혼이 되고
그동안 힘들고 고통스럽고 외롭게 올라왔던 山 정상에서의 외침처럼 힘차게, 
그리고 
아름답게 함성을 같이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행복할 것입니다.




-'09年 7月 6日(월) 아침에.. 힘찬 한주일을 위하여.


                  


『아내의 얼굴을 보다』




인생의 고달픔을 온몸으로 느끼며 
좌절하고, 희망을 품고, 그리고 또 다시 살아온 한 등푸른 여자의 이야기.

마음속에 어머니 얼굴 새로 하나 그렸습니다.
아내 얼굴 다시 보았습니다.

*

삶이 뭐 거대 담론이니?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소중한 것들이지. 
누가 아프면 약국에 가서 파스 하나 사오는 거, 그게 사랑이지. 그게 사는 거야.
넘어지면 팔을 붙들어 일으켜 주는 거. 그게 사랑이며 사는 일이다.

그가 갔다
도착지에 대해선
구구한 설이 많지만
그와 직접 통화는
아직 없어서
인편에도 택배도
마지막 말 하나를
보낼 수 없다
가출이 아니라고
사망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저기 저 바로 보이는
하늘 중심
내 자동차로 세 시간이면 족한 곳
무턱대고 시동을 걸어 놓고
하늘길을 바라본다

                     <신달자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中에서>



-'09년 7월 6일


                  


『사랑하므로』




아름다운 비가 내립니다.
일본 같으면 오늘이 七月七夕이네요...

화폐전쟁(쑹훙빙作)을 다시 꺼내어 읽고 있어요.
돈을 위한 피비린내 나는 음모와 冷血만이 할 수 있는 공작들...
富者들의 전쟁..
분명 나를 감흥시킬만한 책은 아닙니다.

나는 요즘 사랑 Mode에 있습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가 내 곁 떠나지 않기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은 더 가까워진다'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다. 
참사랑이라면 눈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그만큼 더 가까워져야 할 것이다.
                                        -최인호의 <산중일기>中에서-



사랑을 하기에 책을 읽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었습니다.
남이 쓴 에세이조차 콧방귀 뀌고 안 읽던 내가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대를 사랑하므로 
책을 읽습니다.




-'09年 7月7日 세번째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


                  


『사랑하는 아이들아』




사랑하는 선혜야
사랑한다고 말해봐
해주는 네가 고맙다.
이번 해외연수
건강하고 재미있게
잘 다녀오너라.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그동안 공부 안한 걸
후회하니 기쁘구나.
너는 철 들었고
건강하고 멋있게
앞으로도 잘 크거라.

아빠는 행복하다.




- '09年 7月 7日 
 둘째의 기말시험 셋쨋날에


                  


『벙개팅』




오늘은 번개팅을 해요..
나는 한달에 두어번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시에 불러내어 삼겹살에 소주를 사줍니다.
갑자기 불려 나온 직원들은(물론 동시에 여러명을 불러내는데, 나오고 안나오고는 순전히
자유이고... 그래도 거의 다 나옴..^^)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너무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지..
누군가로부터 자기가 선택 받았다는 것은 흉악한 범죄로부터 노출된 것이 아닌한 기쁜일이 아닐까?
나도 형식과 업무적인 틀을 깨고 직원들과 회사 밖에서 만나 평상시에는 하지 못하는 
말들을 나누는 일이 참으로 기쁜 일이라 생각해.
그리고 더욱 좋은 건 정말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지.
처음엔 어색해 하지만 소주 한잔씩 걸치고 집으로 돌아갈 녘에는 모두 하나의 친구가 되어있지.
이것도 하나의 사랑, 하나의 행복이 아닐까?

사랑이란 원래 주는 사람의 이기적인 성격이 없지 않아 들어 있다고 봐.
그런 점에서 그대가 나의 사랑에 염려를 갖는 것도 이해하고 인정해요.. 무엇보다 그대는 언젠가는
훨훨 날아갈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그것은 전적으로 그대의 자유지..
그래요.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면 돼.
원래 나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그대가 더 잘 알테니까...

오늘 나는 7월의 첫번째 벙개팅을 날렸어요.
삶이란 한번씩 번개처럼 황당하게 가슴을 때리며 섬광처럼 지나가는 비일상이란게 있지.
벙개를 받는 그들에겐 적어도 그래..
나는 계획하고 타산하고.. 정돈하고.. 준비해서 날리는 일상의 벙개팅.
그렇게 우리의 삶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해.

삶에 대해 그대는 나보다 더 모르는 것 같애..

 
그럼, 오늘도 평안한 하루가 되길...




-'09년 7월 7일.


                  


『설레임』




쨍하고 깨질질 듯 맑고 푸른 하늘에서 굵은 햇살이 쏟아지는 7月의 아침이다.
모처럼 맘에 드는 책을 만났다..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가짜다.
잊는다(忘)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 사는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붓글씨나 그림, 노래 같은 하찮은 기예도 이렇듯 미쳐야만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미쳐야 할 것인가? 

순 가짜들이 그럴듯한 간판으로 진짜 행세를 하고, 근성도 없는 자칭 전문가들이 
기득권의 우산 아래서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진짜는 진짜고 가짜는 가짜다. 진짜 앞에서 가짜는 몸 둘 곳이 없다.
설 땅이 없다. 그것이 싫어 가짜들은 패거리로 진짜를 몰아내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다.
                                               -정민<미쳐야 미친다>中에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 많이 사랑하기를...




- '09年 7月 8日


                  


『메마른 영혼의 하소연』




인문의 인(人)자도 모르는 내가 
인사동 삼화령(三花嶺)이란 찻집에 대해 그저 말로만 듣고도 대번 처절한 벽(癖)의 
분수령(分水嶺)에 섰다고 한다면 믿겨질까.

나는 6.25동란 시절에도 꽁꽁 싸들고 다니며 써 오셨던 아버지의 케케묵은 일기장,
그 유전(遺傳)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1989년까지(結婚하고 1年後) 47권의 일기를 썼다. 
어떤 날엔 하룻밤새에 백페이지 한권의 일기를 단숨에 써 내려간 적도 있고, 
대학시절엔 3박 4일을 먹지도 자지도 않고 뭔가를 글쩍거려 본 적도 자주 있다.  
그리고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수천여통의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지금 읽어보면 완전히 그런 유치빤스도 없다)

초등학교 때는 그림 솜씨도 괜찮았다. 
아버지의 일기장에 삽화로 그려져 있는 그림들 만큼이나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
중학시절의 미술 선생님은 나의 그림 솜씨가 천부적이라고 칭찬 했었다.
노래 역시 잘 불렀다. 
소질이 있다며 테너가수였던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음악으로의 진로 권유도 받았었다.

하지만 글을 쓴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한다는 것은 그저 최소한의 먹을 것 밖에 
줄 수 없는 가난한 직업으로서 치부(置簿)된 나의 어린 시절에
(그러니까 어려서부터 난 똥물이었다는 얘기다)
충분히 개인의 소질을 살려 제 본연(本然)을 갖추는 일은 꿈에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그런 작은 소질들은 중학교 이후 처절하게 단절(斷絶)되었다.
일찌기 대학 진학을 포기시켰던(우리집은 잘 살지 못했다) 아버지의 강력한 권유는 
당시 인기 만발의 공업고등학교로의 진학이었다.
그후 나는 전자(電子)라는 단어만을 지니고 살았다. 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그리고 50이 된 지금까지도 난 공돌이로서 전자와 함께 살고 있고, 실제로 
지금까지 전자만이 나를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더군다나 고등학교 시절 나의 음악 선생님은 내 노래를 처참히 극악 평가하였으며, 
그림 그리기는 중학교 시절 이후 어쨌거나 한번도 접해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정확히 그 이유는 알 수 없는데, 언제부턴가 그림 그리고 노래를 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없는 영혼들의 사치(奢侈)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내게 있어 최근 어느날 누군가를 통해 인사동 삼화령이란 찻집에서 배어나는 
향기(香氣)는 참으로 고약하다 아니할 수 없다.
심한 거역(拒逆), 정말 너무 강한 반항.. 그런 것 같다. 거기에 드나드는 사람들.. 
도무지 나같이 인(人)과는 전혀 무관한 메마른 영혼으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어쩌면 이다지도 이질적(異質的)인 세계란 말인가. 
지금까지 뭔가로 인해 단절 됐으되, 차라리 알지 못하였으므로, 보지 못하였으므로...
다시 말해 무식하기 때문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아니, 아예 가슴과 심장을 빼놓고 살았다는 편이 낫겠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감히 쳐다보거나 훔쳐 볼 수 있는 세계.. 공간..이 아닌, 그런 것이다.

그렇지. 그런 공간이 무서운게 아니다. 그렇다.. 거기에 오는 사람들.. 그들의 영혼과 
어울리는 그 인(人)의 그림자에 완전히 매몰될 내 영혼이 두려운 거겠지.

지금 나는 1989년 이후 日記도 쓰지 않는다. 중학교 이후 그림은 커녕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먹는 일이라는 통념(通念)의 속물(俗物)로써 어울리기 위해 준비한 몇개 18番地 외에 
나는 어떤 노래도 부르지 않거니와 자진해서 노래방 같은 곳에 가는 일이란 결코 없다.
나는 그렇게 건조(乾燥)하게 살아왔고 궂이 말하지면 거역(拒逆)하며 살아왔다.
(삼화령에 앉아 詩에 도취되어 앉아있는 사람(人)들의 얼굴을 보라.. 과연 그들은 
어떤 세계의 인간이란 말인가?)

(그런 내가 사랑을 이야기 한다구? 사람(人)과 사랑을 하겠다구? ... 참 웃기는 얘기다. 
주제를 알라지... 꼴값하구 있네...)

거부하고 살아온 세계.. 그로부터의 이질감(異質感).. 
가슴이 너무 허하다. 
이것이 최근 내 나이 45를 넘기며 맞이한 슬픈 곡절의 하나라고 한다면 혹자는 알까?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09年 7月8日, 서울 仁寺洞 삼화령엔 사람(人)이 있다네.


                  


『시사회는 끝났다』




자,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시사회(試寫會)는 끝났다.
너무 아름다워 행복(幸福)에 겨웠다.

이 영화(映畵), 내가 쓴 것 아니며
내가 고쳐 쓸 것 또한 아니다.

나의 말도 모두 끝났다.
순수유화(純粹油畵)의 속편(續篇)에 내 役도 끝났다.

그저 영화는 계속(繼續)되고
나는 주연(主演)의 그대를 영원(永遠)히 사랑한다.


오늘도 나의 비가 많이 내린다.




-'09年 7月 9日, 네번째 장맛비가 내린 날.
  


                  


『무엇을 바란 사랑인가』




혼자 가는 연습(練習)으로 소주방(燒酒房)을 찾았더니 아련한 조명(照明)이 나를 품지 뭐야.
처음엔 그렇게 두려울 수 있어.
혼자서도 괜찮냐 물었더니 아주 하얗게 웃어 주던데?..

아흔아홉번을 씹어도 결국 사랑은 자학(自虐) 같은 외로운 그리움일 뿐
혼자 가는 길에서 練習은 필요(必要)하지.
넘어질 수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나아질거고 자각(自覺)은 살아 있잖아?..

이제 이 작은 소주잔이 흐릿한 그대 손에 차고 넘치면, 내 가냘픈 사랑도 함께 마셔야 해.
그리움으로 살자. 
사랑은 그저 외롭고 절절한 그리움인거야.

삶이란게 그저 사람들이 혼자 와서.. 혼자 걷다.. 혼자 가는 것처럼..
사랑도 當然히 그래. 
그냥 혼자 가면 되는거야.

말 그대로 추위를 느끼다 심장(心臟)이 얼고, 끝내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狀態의 희열(喜悅)은 
언제고 내게 남잖아..
25年은.. 그거 별 거 아냐.
우연적(友緣的)이면, 뭐 그렇게 죽어도 좋지 않겠어?...




-'09年 7月 10日밤 09時07分, 金川洞 어느 燒酒房에서.


                  


『회색 구름』




밤새 빗소리
어머니 품처럼 따뜻했어요.
그대 손길 부드러워 잘 잤어요.

어둠 채 가시잖은 아침 
그대 그려 창문을 여니 
그대 닮은 구름 저리 빨리 가네요.

저 회색 구름 어디로 가나.
왜 저리 급히도 달려가나.

그대 뜨락에 
내 그리움 싣고 가나.
그여 내 눈물 뿌리러 가나.




-'09年 7月 12日(日) 
 비 오는날 아침운동은 땀도 많이 난다.


                  


『대청호』




폭우(暴雨)속에 달려온 대청호(大淸湖)..
당신은 안달의 내 속만큼
시뻘건 핏물 버럭버럭 토할 줄 알았다.

폭발(爆發)하는 굉음(轟音)에
광란(狂亂)의 소용돌이 휘슬로
그 사랑 받아줄께, 소리질러 주리라 믿었다.

아! 
이 天然덕스럽고.. 평온(平穩)하고,
고즈넉한 대청호여.

당신은 참 야속(野俗)하구나.
미천(微賤)한 속물(俗物)일지라도
이렇게 처참(悽慘)히 짓밟힐 줄 몰랐다.

꼭 다문 당신의 입
당신은 참 세고.. 굳구나.
당신의 포용(包容)-너그러움과 용서(容恕)-
그 과묵(寡默)함까지도.

나의 사랑은 
그저 일상(日常)의 작은 투정일 뿐
여린 부끄럼마저 삼켜버린 대청호여!
그래도
이 사랑 받아주지 않으련?..

이렇게 비 많이 쏟아지는데...




-09年 7月 12日(日) 오후 04時30分
 거센 비 쏟아지는 대청댐에서..


                  


『約束_5』




애벌레 한마리
들어와 죽었다.
여기 왜 왔나- 죽으려 왔나.

검은 구름 발채에
여린 가지 차이고
여름에도 낙엽은 진다.

차일 땐 차이고
죽을 땐 죽는다.

존재(存在)는 허약해도 천부(天賦)의 것..
애벌레도 낙엽도
자각(自覺) 있으면 되었지.

청소(淸掃)할머니
쓸어가 버린다.




-'09年 7月 18日(土)
'자각(自覺)과 광기(狂氣)'


                  


『늦은 오후』




여기 실낱 소리 바람이 인다.
트인 가슴 숨결로
창 밖 개망초는 저리 하얗다.

그대 축 처진 어리광
저녁노을 저버린 하품마저도
다 여기로 와 쉬어라.

탕탕하고 나지막한 
그대 웃음, 하루가 그립도록...



여기 쪽빛 내음 물결이 인다.
여민 가슴 손길로
저 너머 소나무는 저리 푸르다.

그대 미어터진 아픔도
湖畔안개 저버린 友情마저도
다 여기로 와 쉬어라.

탕탕하고 단아한
그대 목소리, 하루가 그립도록...




-'09年 7月 18日(土) 
'브룩스'와 '大淸댐'에서,


                  


『기억에 대하여』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기억(記憶)은 언제나 自作劇'이라 말한다.
우리는 실제 일어난 사실(事實)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사실에 대한 '해석(解釋)과 편집(編輯)'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지탱할 '의미(意味)'를 부여(附與)하며 산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란 현재 우리가 어떤 심리적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種類가 달라지기도 하고,
현재의 직업에 따라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方式도 달라진다고 말한다.
특히 예술가에 있어 그 경향은 더욱 짙다고...

그렇다 치고.. 그러나 나는, 이 시대의 成功作으로서 대변될 출중한 과학자나 의사가 아닌  소시민(小
市民)에 불과하지만, 자연과학을 기저로 하는 공학과 산업사회를 사는 나로서, 그들 예술가들과는  차
마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겠다.

나는 자신의 과거를 일련(一連)의 사건들로 기억(記憶)한다. 
물론 그때 그때의 사건과 즈음해  나름의 '의미(意味) 분석(分析)'과 '연계(連繫) 조명(照明)'은 지니
고 있어도,  불거진 기억(記憶) 사실(事實)의 순수(純粹)를 왜곡하거나 편향하거나, 부식(腐蝕)시키려
들지 않는다. 이를 나는 中學시절부터 성립한 '연(緣)'의 한 연속적 성장(連續的成長)의 일환(一環)으
로 승화한다.

잘못하면 그저 헌신짝 만도 못할 기억된 삶을 통해,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약하면 약한 대로,  創意的
所信과 自救를 부여잡고  삶의 '自覺과 紀行'을 생생히 目擊하며 지키는 일은  매우 '의미(意味)'있는
作態인 것이다. 아프면 아픈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물론 기쁘면 기쁜 대로...

다시 말하지만, 예술의 通俗일지언정.. 아니, 과학의 利己일지언정 학습(學習)의 미명(美名)을 업고라
도 열정(熱情)과 그 뒤의 성취(成就)는 숭고하다.   다만 가슴 아픈 질투(嫉妬)와 시기(猜忌)의 대상,
차라리 슬픈 오만(傲慢)일지라도 천부(天賦)의 것을 놓지 말아야 한다. 절대 존재(絶對存在)는 거기에
연관(聯關)하며, 비록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워 心臟이 얼지라도 궁극적으로 나는, 그 것을 추구(追求)
한다.




-'09年 7月 19日(日), 
 <35年 해묵었어도 '緣'은 옳아... 세상에 不連續이란 없어!
  學習은 成就를 위해 필요하고, 熱情과 사랑(所有 쪽에 가까운)이 있으면 더 좋아..
  그러나 生命은 '緣'的 純粹의 存在로서 平生을 自覺하고 追求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별당아씨』




아! 그래도.. 코흘리개는 아니었고..
그저 네가 징징 울고 다녔던, 35年前 어렸을 적 얘긴 줄 알려므나.

차탄천(車灘川) 맑은 물은 지금도 흐를까..
늦은 밤 사람 눈 피해.. 실개천 논길 따라 네 아픔 달래려 나갔다가
파출소 아저씨 짓궂은 장난에 네랑 나랑 가슴 쓸며 울었던.. 
그 추억(追憶) 넌 기억(記憶)하니?

경원선(京元線) 기차는 지금도 달릴까..
언제나 그 시간 그 곳에서 네 모습 만날 때면, 나도 딴엔 사내라고
네 마음 늘 그 곳에 있어 참 얄밉고도 이뻤는데..
넌 그 추억(追憶) 곧이 믿겠니?

몇年前에 널 만났었지..
歲月의 흐름 만큼이나 바뀌고 달라졌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라던 네 말이 내겐 왜 그리 힘들었나 몰라..
오히려 네에 대해 앎 없이
그리 불쑥 만났던 건 참으로 바보였던 거야.. 그 땐..
그 때도 넌, 네 마음 그 곳에만 두었잖아..

실낱 같은 옛 追憶도.. 이제 자리는 단호한 별당아씨 뿐,
이 땅 한 하늘 아래 살았어도 어쩌면 이리 철저히 다른 색깔로, 
극단적으로 생뚱맞은 차원(次元)으로 살아왔고 살아가는 네 모습에
그저 먼 발치 남의 가슴으로 感歎도 하고.. 부러워 한다.

이게 고작 歲月 보낸 옛 우정(友情)이 하는 소리다.
아! 그래도.. 코흘리갯 때의 일은 아니고..
다만 네가 징징 울고 다녔던 35年前 어렸을 적 얘기다.. 




-'09年 7月 21日,
 高校時節 친구 복희(가명)는 별당아씨가 되었네..
 <그시절 네 얼굴이 어느 순간 한번에 생각난 날>


                  


『죽을 때까지는 끝낼 수 있을까』




나에게 최근 가시같이 돌출(突出)한 이 병마(病魔)는 아마 누구라도 쉽게 단정(斷定)지을 수 있을 지극
히 보편(普遍)한 人間 본위적(本位的) 삶의 무게에 의한 외로움이 그 하나이며, 또 하나는 그것을 빌미
로 교묘(巧妙)하게 파고 든 상투적 자위(自慰)에 숨은,  어쩌면 아주 보잘 것 없고도  참으로 부질하기
짝이 없을 것 같은  - 역설적(逆說的)이게도 이것은 언제나 수반(隨伴)된다-  소유욕(所有慾)의 慣性에
支配 받는 인위적(人爲的) 인연(因緣)의 不連續的 사랑을 말한다.
나는 이 두가지 病魔 모두를 스스로 자각(自覺)하고,  어쨌든 이를 승화(昇華)시키거나 해소(解消)해야
만 한다. 이것이 나의 숙제다.

힘내라고, 화이팅을 외치지만  힘의 원천(源泉)이 찌든 삶의 世態를 흐르며 고갈(枯渴) 되었다면  무슨
所用이 있겠는가. 힘의 源泉 -삶의 源泉- 은 마치 봄볕 地熱을 받아 生命으로 솟아나는 새싹과 같이 純
粹한 천부(天賦)의 것이다. 天賦의 것으로서 자각(自覺)이라는 센서(Sensor)는  人間深淵의 精神世界에
위치(位置)한 존재적(存在的)인 것이며, 人間의 本位的 외로운 삶의 무게는 이 센서의 감도(感度)에 지
극히 연동적(連動的)이다. 
비록 너무 외로워 心臟이 얼어 터지고 가슴이 저리는 痛症을 갖더라도 -아마 죽을 때까지도- 나는 自覺
이라는 센서의 感度 調節을 통해 이를 昇華시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

참으로 아무 짝에도 쓸모 없을 인위(人爲)의 慣性인 所有格 사랑은  공교롭게도 이 本位的 삶의 무게를
틈타 不連續的으로 찾아드는 귀찮고 성가신 기생적(寄生的) 病魔의 하나다. 이는 보다 유연(柔軟)한 포
용(包容)이나 아니면 역설적(逆說的)인 퇴치수단(退治手段)을 통해 자구적(自救的)으로 解消해야 만 한
다.
비록 너무 슬퍼 心臟이 얼어 터지고 가슴이 쓰린 痛症을 갖더라도  -아마 죽을 때까지도-  나는 슬프게
도 혼자서 이를 解消해야만 한다. 이것이 내가 사는 방법이다.




-'09年 7月 22日,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삶의 元氣를 回復하면 내 天賦的 自覺의 타래는 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에 存在할 것이다.
 <61年 만에 한반도 최대의 '개기일식'이 벌어진 날.. X-레이 필름으로 보았는데, 너무 아름답다>


                  


『우의(雨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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