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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는 나를 더 사랑하며 살련다..(열여덟번째 페이지)      "반디의 홈페이지"
    


                  
『4월의 어느 새벽 창가에 서서』




꽃이 봄비에 떨어졌으니
나는 깨닫는다

퇴폐의 시대는 갔음을
내 나이 몇

봄은 왔고
아침이 밝았으니

소리 질러 봤자
울어 봤자


꽃이 내가 되어 흘러가니
옷 줏어 입는다

육욕의 떨림은 끝났다
내 낡은 몸

고목의 밑 발치에서
영면의 끝으로

바람이 불든
철 지나 찬 이슬 퍼붓든




-'18年 4月 7日
<내 몸은 알지. 옳지만 옳지 않음을. 내 살갗, 내 손끝은 느끼지. 따뜻하지만 따뜻하지 않음을>





                  
『내가 너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




떨어져 그것도 멀리 있으니까
만날 수 없으니까

만난다 해도 가까이 할 수 없으니까
가까울 수 없으니까
아니 다르니까

달라서 힘들고
괴롭고
따로 외롭고
결국 안타깝고 나서도

끝내,
영원히 눈물로
나와 너 함께할 수 없으니까




-'18年 4月 27日
<꽃 피는 봄이지만 너는 여전히 멀리 있고 나는 외롭다. ~우리는 언제까지 정치꾼들한테 돌림빵이나 당하며 사는 인생이어야 하는 걸까- >





                  
『무서운 세상』




어쨌든 봄이 되니 후닥닥 산숲 푸르러졌다
그런 중 더러 늙은 나무는
죽었거나 죽겠지만
그건,
보는 사람만 보고
못 보는 사람은
못 본다
아카시아꽃 하얗게
피고
솔숲 잔바람에
일렁이며
장송곡 울어도
보는 사람만 보고
못 보는 사람은,
봄숲에서는 끝까지 못 본다

봄빗속 공원에서 하나하나 둘둘 산책을 한다
그들 대개는 덧없겠고
질리도록 외롭다
그걸,
아는 사람이나 알지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비 젖은 꽃잎들
호수에
보라로 설움
우러나도
아는 사람이나
알지
모르는 사람은,
저들끼리는 죽어도 모른다




-'18年 5月 6日
<비 오는 하늘과 숲의 경계를 보다가 크게 들숨을 쉬다. -외로움은 나이 들어 세상 바뀌는 만큼 빠르게 커 가기만 한다- >





                  
『유월의 산책』




유월의 뜨거운 태양볕 아래 하얀꽃이 피었네
미호천변 들판 가득 하얀꽃이 피었네

그 꽃들판 사이로 걷는 길이 나 있네
나는 그 길을 걷네

바람이 꽃들 물결치게 부네
뒤에서 밀기도 앞에서 받치기도 바람이 부네

나도 꽃들처럼 하얗게 물결치네
길 따라 바람 따라 유월 햇볕에 타네




-'18年 6月 2日
<도시를 관통하는 강변의 바람에는 멀리 달리는 차량의 바큇소리도 들어 있고 그 속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발딛임 소리도 들어 있다. 그 소리 다 들으며, 도시를 통과하는 강변 벌판에는 하얗게 꽃이 핀다. -미호천 강변 산책로에서- >





                  
『나는 진상 유권자』




오늘 산에 오르는 입구에서 어느 시의원 후보자가 선거전단지를 돌리는 거예요. 나는 그에게 “이 전단지를 받으면 내가 이걸 산 어딘가에 버려야 할 것 아니냐? 왜 유권자에게 그런 부담을 지우냐? 이런 거 돌리지 마라”고 했어요.

또 지난 번에는 어느 도의원 여성 후보자가 산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내려오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잡으려 하더라구요. 그래서 나는 “요즘 같은 시대에도 남의 남자 손 함부로 잡냐? 이거 성추행 아니냐? 제발 이런 추태 보이지 말라”고 했죠.

그야말로 나는, 진상 유권자랍니다.




-'18年 6月 9日
<정치 혐오의 끝판이라 할 수 있겠지>





                  
『유월의 산책+』




바람이 낮잠 자는 시간에 우산을 쓰고
나는 뜨건 태양의 거리를
걷는다
민들레 꽃씨는 날아가 버리고
이파리 늘어뜨린 개망초
가득 핀 유월의 들판을 나는
걷는다

걷다가 가다가
나는
팔랑팔랑 날아 다니는 흰나비랑
외롭디 외로이
날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햇살이 회초리처럼 몸에 닿는 들판을
나는 풀섶 모퉁이에 서서
글로 쓴다
머뭇머뭇 강물결 빛
자학하는 새소리
가슴에 까치집 짓듯 나는
글로 쓴다

쓰다가 섰다가
나는
보이다 말다 만 강물보라 위
머언 산풍경마다 설은
나 없는 들판에서
삶의 귀퉁이,
쓰는 나를 돌아본다




-'18年 6月 3日에 쓰고 9日에 고치다.
<유월의 볕을 걷는다. 유월의 볕은 여름 못잖게 뜨겁지만, 피 흐르는 내 몸과 뛰는 내 심장의 나만큼이나 정말 혼자다>
<살아서 뛰는 피와 심장, 땅 속에 묻어야 한다니.. 세상이 그러하니.. 섧고 외롭지 아니한가!..>





                  
『섹스와 자위행위』




섹스는 상대방과의 성감대와 체위 등을 서로 정확히 맞추지 못하면 둘 다 만족할 수 없고, 따라서 완전한 게 아니다. 그러나 자위행위는 어떤 겉도 속도 자신의 몸으로 스스로 터득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제것이다. 그야말로 완전한 성행위인 것이다.

삶도 똑같다.




-'18年 6月 11日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면 빨가벗고 내게로 오라. 그럼 낱낱이 가르쳐 주마>





                  
『쓰잘데기 없는 생각++』




고독이란, 외로움이란 평소 중요한 삶의 하나이지만 결코 아내에게도 알게 할 수 없는 내 자위행위의 수준과 방법의 세계조차 끝내 영원히 누군가와도 함께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육체적 절망감은 아닌 걸까?! 또,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심오하게 느껴지고 날이 갈수록 보다 더 경이로워지는 내 몸의 신비, 내 육체의 아름다움 누군가에게 결국 다 보여주고 다 드러내 보이지 못한 채 죽어 없어져 버릴 것이라는 공포로부터 오는 말초적 본능의 여기 상태는 혹시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18年 6月 12日
<벌써 세 번째 쓰잘데기 없는 생각이다. 과연 나는 변태일까?! -형이하학, 그리고 나- ><우리 몸의 분자, 원자들 조차도 외. 롭. 겠. 지. 그럴진데...>





                  
『이 땅의 남편들에게 고한다』




산을 다니다 보면 때로 어떤 남자는 내게 "왜 아내와 함께 안 오셨어요? 아내와 함께 다니셔야죠!"라고 합니다.
이럴 때 나는 순간 뭐랄까, 형용할 수 없는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의아한 듯, 아니면 내가 뭔가 무심한 남자,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인 듯 쳐다보는 그에게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어물쩍하며 그 상황을 넘기고는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합니다.

생각해 보건대 이런 상황이 아직도 우리 사회가 남성 우월과 남성 위주의 사회상을 나타내는 아주 사소하지만 엄연히 심각한 대표적 예가 아닌가 합니다.
분명히 나도 한때는 아내와 늘 함께 산이든 놀이든, 시장이든 마켓이든 많이도 다녔습니다.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우리 부부 서로의 생각에 문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느 부부 못지 않게 우리 부부는 함께합니다.

다만 그렇습니다.

나는 아직도 남편은 아내를 어디든 '데리고 다녀야 한다', 남자가 필요로 하고, 나아가 어떤 가정의 모양새, 더군다나 치례상 부부간의 돈독한 모양내기를 위해 남편의 자리에 여성인 아내가 당연히 '함께해야 한다', '동반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더는 아내의 자리가 남자인 남편의 밑, 보조자로서의 자리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산을 좋아해 산에 다닌다고 해서 당연히 아내도 산을 좋아해야 하고 같이 산에 다녀야 할 까닭은 전혀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산에 가든 여행을 하든 아내에게 언제나 '같이 갈래요?', '같이 갑시다. 참 좋더라구...'하며 권장은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강요는 하지 않습니다.
아내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따라서 아내의 시간을 뺏으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분명히 아내도 자기만의 인생이 있고 삶이 있고, 따라서 아내도 아내로서의 자기 삶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내는 나를 사랑합니다.
나도 못지 않게 사랑합니다.

나의 이러한 생각과 실천의 원천은 진정한 사랑에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 나이 이제 내년이면 육십에 정녕 사랑이란, 가정에서 우위의 가짐을 지키는데에 있는 게 아니라 아내에 대한 존중과, 또한 버림을 통한 존재적 가치를 분명히 깨닫는 것에 있다는 것을, 그것이야 말로 참 지식임을 샘솟듯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있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실천이 사랑인 것입니다.
그것을 앎입니다.

혹여 아직도 화목한 가정은, 그저 함께 하는 것, 그저 대화를 많이 하는 것 등과 같이 단순히 보이는 것에 집착해 뭔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는 남자, 남편들이 있다면 이제는 부디 그것을 중단하기 바랍니다.
부탁 드립니다.
아내의 삶에 끼어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같이 한다는 것, 함께 한다는 것, 징정함이 아니라면 그저 그냥 아내의 삶, 아내의 패턴을 존중만이라도 해 주세요.
참견 말고, 지켜보아만 주세요.

그리고 그대는 그대 혼자서, 그대 좋아하는 것 하세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아! 그리고 앞으로는 산에서 나를 만나면 더는 내게 "왜 아내와 함께 안 오셨어요? 아내와 함께 다니셔야죠!"라는 충고 아닌 충고는 하지 말기 바랍니다.
나보고 아내를 '집에다 방치(?)'하는 남자로 보지를 말기 바랍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그렇습니다만 이 땅의 남자들이여!
남편들이여! 부디 바뀌시기를 바랍니다.




-'18年 7月 28日
<우리 부부는 일찍부터 '혼자 사는 법'에 대해 서로를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께도 '혼자 사는 법', 더군다나 내일모레가 육십인 분들께는 더욱 강력히 추천 드리는 바입니다>





                  
『귀로(Die Ruckkehr)++』




완벽성과 높은 성(城)으로서의 이미지 굴레에서 초라함과 실없음의 내 본래 색(色)으로의 회귀(回歸)에, 나는 꼭 성공하고 싶다.




-'18年 8月 25日
<나는 완벽하게 우연히 이곳에, 그리고 그대는 완벽하게 우연히 그곳에 있었다네. 우리는 죽어 아무것도 기억 못할까 봐 분노처럼 외롭다네. 삶을 당연히 나와 그대가 詩로써 안다는 것은 불멸의 유치함 속을 걸러낸 격정적 죽음만큼이나 낯선 것이 아니라네만. +>





                  
『2018년 가을하늘을 거닐다가』




파아란 하늘 위 한 점 흰구름 돛 낡은 돛단배 같다
네모 가슴
똑바로 산다 산
내 뒤

꼭 닮았다

훠이!
남이야
가을하늘이 맑고 푸르다네만
날 못 보네만

이 계절 휙 지나 나 품어 더 푸를
겨울하늘
올테니
난 안 운다

그런 거지

그런데
아픈 거지
내 삶 새로이 샛
파아란 하늘 거닐며 조각조각 흰구름 발로 젓는다




-'18년 10월 9일
<아직도 인생은 기다림이라지. 그래서 나는 늘 나여야 하겠지.. 아, 근데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진정 푸르른 하늘은 추운 겨울에나 만날 수 있는 거라구..>





                  
『죽은 피로써 살고 싶다』




사랑이 미움 되는 것처럼
삶이 죽음이 된다
사는 사람들을 보면 죽자고 사는 것 아니라면
죽는다 죽는다 하면서 산다
마치 남의 일처럼
꽃 피면 피는 것 같고
물 흐르면 물처럼 나도 흐를 수는 없는가!
열정을 욕망으로 가역하고
행복을 퇴폐로 치환치 못해서
오줌을 입으로 몸에 뿜고
죽어라 거시기를 칼질로 자학하지 않으면
삶이 온통 민숭민숭해서
죽어라 사는 것 같지 않아서!
어차피 삶이 죽음
그들처럼, 꽃처럼 물처럼
미움도 밉다 보면 한순간 사랑이 되고
죽을 것처럼 못 죽어 미쳐 사는 것과 같이
연거푸 산 너머 산
겨울 가고가도 못 끝낼,
끝내는 시릴
게서 맨날 맴돌 삶
한낱 남의 것으로써 나 살 수는 없는 것인가!




-'18年 10月 10日
<죽어도 나는 나를 못 버릴테지. 죽어도 나는 늘 나여야 한다고 하겠지.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나!>





                  
『가을 나무』




처음엔 식구가
나가라,

나가라 하더니

언젠가부터는 직장이
나 보고
가라,
가라고만 한다

요즈음엔 출근길 라디오도
죽어라,
제발
죽어라 한다




-'18年 11月 7日
<똑바로 살았는데, 하늘만 보고 살았는데 비 오는 가을아침 낙엽 벗은 내 모습이, 참 묘하다. -늙는다는 건 여전히, 죄인 게 맞다- >





                  
『오늘의 단어』




행복




-'18년 11월 21일
<이제는 다 큰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 대한 자부심과, 어렸을 적에 남부럽지 않게 다 받고 큰 것 기억하며 늘 감사함 갖고 산다는 걸 알면서, 오늘 아침 나는 참으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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